'석양의 무법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24 내 인생의 영화? 4
  2. 2008.08.21 한 '선한' 병사(들)의 노래 5

얼마 전 알라딘 중고샵에 <석양의 무법자 CE>가 나왔길래 적립금과 쿠폰을 탈탈 털어 구매했다. 180분짜리 풀 버전을 극장에서 본 마당에 142분짜리 일반 버전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현재 DVD가 유통되는 것은 풀 버전과 다양한 서플먼트가 담긴 CE(컬렉터스 에디션)이 아니라 헐값에, 심지어 다른 영화와 세트로 묶인 일반판이었다. 서플먼트는 전무하고 화질도 조악할 것이 뻔했다. 한국의 초열악한 DVD 시장을 보건대 재출시될 확률은 극히 적은데다, 곧 블루레이 버전이 출시되니 이때가 아니면 언제 구하나 싶어 반성 주간임에도 덜컥 구매해 버렸다. 그래도 현금 지출은 1000원 대이니.

무엇보다 이 영화를 굳이 구매한 이유는 내 인생의 영화 5편 중에 하나로 꼽을 만한 내가 인정하는 걸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의 DVD를 안 갖추고 있다는 것은 그 영화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물론 세르지오 레오네의 걸작을 꼽으라면 내 스스로도 <옛날 옛적 서부에서>를 더 쳐 주지만, 거기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징글맞은 찡그린 표정을 볼 수 없다. 레오네의 연출과 이스트우드의 연기가 최고로 잘 배합된 영화는 아무래도 <석양의 무법자>, 즉 영화 '놈놈놈'의 이름을 제공했던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다. 이런 마당에 어찌 안 사고 배기겠는가. 게다가 좀체 구할 수 없는 레어템이 되어 가는데.


이쯤에서 '내 인생의 영화 5편'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듯하다. 후훗. 자뻑일까?

내가 고른 '내 인생의 영화 5편'은 다음과 같다. 선정의 기준은 딱히 없다. DVD로 소장해서 이따금 보고 싶어 해야 한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이다. 절대로 자주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국 영화는 따로 뽑으려 한다[각주:1].



무간도
감독 맥조휘, 유위강 (2002 / 홍콩)
출연 양조위, 유덕화, 여문락, 정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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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가 나온다기에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영화인데 막상 보고 나서 대박이다 싶었던 영화다. 사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1위로 삼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도중 황 국장의 죽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양조위의 표정[각주:2], 도저히 잊혀지지 않았다. 내게 이랬던 영화는 별로 없다. http://gile.egloos.com/3232325 참조


석양의 무법자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1966 / 스페인, 이탈리아)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엘리 월러치, 리 반 클리프, 알도 주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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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궁합이 최적화된 영화이다. 180분짜리 풀 버전은 자못 지루한 감이 없지 않으나 마지막 3인의 결투신은 그 지루함을 잊게 했다. http://camelian.tistory.com/50 참조


랜드 앤 프리덤
감독 켄 로치 (1995 / 스페인)
출연 이안 허트, 로잔나 파스터, 프레드릭 피에롯, 톰 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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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높았던 이상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짓이겨져 버렸을 때의 참담함. 켄 로치는 그것을 아주 낭만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http://gile.egloos.com/3231493 참조


천국의 나날들
감독 테렌스 맬릭 (1978 / 미국)
출연 리처드 기어, 브룩 아담스, 티모시 스콧, 밥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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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아워[각주:3] 대에만 골라 가며 찍은 환상적인 화면이 죽인다. 이전까지 탄탄한 내러티브나 세밀한 심리/감정 묘사에만 천착하던 영화 보는 기준을 송두리째 바꾼 영화. http://camelian.tistory.com/175 참조


타인의 삶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 독일)
출연 울리히 뮈헤, 마르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 울리히 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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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면서도 가슴 찡한 엔딩 신은 잘 차려진 음식에 황금 소스를 살포시 얹은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http://gile.egloos.com/3232548 참조


사실 좋은 영화가 수십 편 수백 편 있는데 달랑 5편만 고르는 것은 어폐가 있다. 적어도 내가 본 영화 중에서 '내 인생의 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을 더 소개해 본다.






  1. 즉 한국 영화 관련 글을 따로 쓴다는 것. 물론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요새 일요일에도 출근할 정도로 좀 바쁘다. [본문으로]
  2. 이 장면의 스틸컷은 알라딘의 내 서재에서 쓰고 있다. [본문으로]
  3. 일출, 일몰 전후 30분을 말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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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gles are calling from prairie to shore,
"Sign up" and "Fall In" and march off to war.
Blue grass and cotton, burnt and forgotten
All hope seems gone so soldier march on to die.
Bugles are calling from prairie to shore,
"Sign up" and "Fall In" and march off to war.
There in the distance a flag I can see,
Scorched and in ribbons but whose can it be,
How ends the story, whose is the glory
Ask if we dare, our comrades out there who sleep.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966)


노 예 해방이라는 인도적 의지로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남북전쟁은 실제로는 무산프롤레타리아가 필요한 북부의 산업자본가 계급이 남부의 농업자본가로부터 노동력, 즉 흑인 노예를 빼앗으려 일으켰다. 그렇기에 전쟁의 성과물은 해방된 흑인 노예가 아닌 산업자본가들에게 전유됐고, 그 대가는 북군이든 남군이든 군인으로 징집된 기층 대중과 포화 속에서 자신의 사유재산을 날려먹은 중하층 '국민'들이 전담해야 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웨스턴의 걸작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 나오는 The Good인 블론디는 실제로 착한 놈이 아니다. 다만 '착한 놈'처럼 행사하는 '추한 놈'이자 '나쁜 놈'이다. 우리는 노예를 해방시킨 북군을 The Good으로, 노예를 부려먹은 남군은 The Bad라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 북군은 The Ugly이다. 진정 The Good은 연방 정부(북군)이든 남부연합 정부이든 정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어 죽으라면 죽고 죽이라면 죽이는, 하지만 그러하면서도 괴로워 죽으려 하는 XX 대위를 비롯한 남군과 북군의 장병들, 그리고 포화 속에서 착취당하고 죽임당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이다. 선하지만 몽매한, 선하기에 몽매한 그들 말이다.

그렇다, 이 노래는 그러한 이들의 노래이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구슬프다. 비단 이 노래가 연주되는 동안 동료가 고문받는 것을 알면서도 명령에 따라 연주해야만 하기에 구슬픈 게 아니다. 이는 힘 있는 소수에게 희생당하는 힘 없는 다수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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