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책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중학교 사회과부도로 한글을 깨우쳤다, 라고 말하면 조금 오바이긴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책은 그림책이 아니라 사회과부도였다. 즉 지도책이다. 그만틈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지도책을 좋아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 지도책을 보고 세계 각국의 나라와 수도를 다 외워 주위로부터는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내 머리는 지도에만 특화됐는지 다른 분야에서는 통 신기를 발휘하지 못하는 반쪽짜리였다.
 
내 지도에 대한 사랑은 나이가 먹어 가도 여전했다. 나는 늘 사회과부도와 전국지도책을 좋아했다. 그냥 지도책을 보고 있으면 즐겁다. 하는 일 없을 때 지도책을 보며 뜬금없이 지하철 노선을 짜기도 하고, 이 지역은 뭐가 있을까 궁금해한다. 그러다 보니 서울의 3단계와 대전의 지하철노선 계획을 대부분 예측하기도 했다. 요새도 지도책을 보며 신분당선과 신안산선이 서울 도심을 어떻게 통과할지 따져보곤 한다.
 
그렇게 어렸을 적부터 지도를 봐 왔기에 나는 처음 가는 곳을 갔다 오면 반드시 지도로 오간 길을 복기한다. 요새야 인터넷으로 제법 정확한 지도를 제공하기에, 게다가 버스노선까지 지도에 표시되기에 어렵지 않게 나는 돌아다닌 길을 제법 정확히 복기한다. 이는 방향감각이 다소 둔함에도 내가 길치가 아닌 길을 잘 찾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실 지도와 지리는 다르다. 지도에 대한 관심은 지리의 대한 관심으로 100% 전이되지 못했다. 아마 전이가 제대로 됐으면 나는 아마 지리교육과나 지리학과로 진학했을 게다. 그렇다면 아마도 지금은 지리교사나 지리정보원 연구원 등으로 일하고 있겠지. 물론 백수로 놀거나 다른 일을 택할 확률이 더 높다. 왜냐하면 교사는 성격상 내키지 않는 직업이었으며, 지리학과는 별로 없었다.
 
부동산과 교통 문제로 전국지도책은 잘 나오나 세계지도책은 쓸 만한 게 나오지 않는다. 아마 고등학교 지리부도가 가장 좋은 세계지도책일지도 모른다. 세계지도책 하나 장만해야 하는데... 그래서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가 땡긴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지도가 아닌 과거의 지도다. 물론 과거의 지도 또한 몹시 매력적이다. <로마인이야기>를 보며 당시 지리적 현황을 지도에 복기해 보고 싶지만 쓸 만한 지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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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는 본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교 이후로는 책을 즐겨 읽지 않았다. 그러나 난 지금 책 만드는 일을 한다. 그것도 매달 한 권씩. 흔히 생각되는 일간지 혹은 주간지 기자와 달리 월간지 기자는 Reporter라는 말 대신 Editor라는 말을 쓴다. 자기가 직접 쓰기보다는 남의 글을 편집하는 일이 더 많다. 그렇게 나는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단행본을 만드는 일을 할지는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점점 더 책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닥 벗어 날 생각이 없다는 것 또한 깨닫고 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나는 책과 친해져야 할 사명을 부여받는다. 아니 받고 있다. 그리고 받았다. 아직 블로거 친구분들에 비하면 택도 없는 독서량이지만 한계독서량의 곡선은 덜 가파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독서량이 늘고 있다. 물론 독서량보다는 구매량이 더 높은 수치로 높아지는 게 문제라면 문제. 그래도 슬슬 독서량이 늘면서 이전에는 없던 책 읽는 즐거음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역설적으로 고민을 주고 있느니 바로 점점 좁아지는 방이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짐(짐이라고 해 봐야 옷가지를 제외하면 책과 시디다)을 한데 모으니 책장 하나가 필요해 주문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책장은 금세 거의 가득찼고 조만간 포화상태를 넘어 겹쳐 꽂아야 할 듯. 책장이야 하나 더 사면 된다. 문제는 책장 하나 더 들어올 때마다 좁아지는 방이다. 원래 혼자 살 생각으로 얻었던 집을 처음 생각과 달리 친구랑 동거하기로 했으니 내 짐을 둘 공간은 결국 내 방밖에는 없다. 막상 짐을 들여다 놓으니 좁아 침대를 포기해야 했는데, 책장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내 방이 좁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친구 보고 들어오지 말라곤 할 수 없는 법. 뭐, 그냥 좁으면 좁은 대로 살다가 친구가 먼저 나가거나 아니면 계약기간을 1년을 채우고 다른 데로 이사 가는 방법밖에 없다. 책장을 좀 더 내다보고 넓은 것으로 사야 할까, 아니면 덜 좁아 보이는 좁은 것으로 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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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비다님 블로그에서 괜히 땡땡 이야기를 꺼냈나 보다. 문뜩 땡땡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든 생각.
 
'아, xx가 땡땡 펴낸 출판사에 있지.'
 
메신저로 xx에게 직원가로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그런 책을 사 보는 사람도 있군 하던 xx도 내가 살 의향을 보이자 적극적으로 나온다. 담당자로부터 xx% 할인을 해 주겠다는 말을 전한다. 하지만 땡땡 전질이 24권이다 보니 도합 20만원이 넘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직원가로 산다고 해도 만만치 않다. 그때 문뜩 든 생각.
 
'아, 만화책 좋아하는 '누'를 꼬시자.'
 
간악한 자일 씨는 거북이 티를 찬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반땡 하기로 하고 지불액의 절반을 '누'에게 넘겨 버렸다. 흐흐...
(*참고로 '누'는 동아리 후배이자 직장 후배이다.)
 
어제 주문하자 마자 오늘 책이 턱 하고 도착했다. 간악하긴 하지만 착한 속눈썹의 자일 씨는 선택권을 '누'에게 넘기는 아량을 베풀었다는데...
 
그런데... 반땡 12권도 집에 가져가기엔 너무 무겁다. ^^;
그리고... 어제 커피드리핑세트에 이어... 더위 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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