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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1 자유론 번역본 중 무엇이 좋을까? 2
  2. 2008.08.28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아내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원제가 On Liberty이기에 '자유에 관하여'가 적합한 번역 같다.)을 읽고 싶어 하기에 검색을 해 보니 유명한 책답게 번역본이 여러 종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자유론'으로 검색하니 20종이 검색된다. 여기서 논술용 서적과 절판된 판본을 제외하고 출판사의 지명도를 놓고 보니 대충 4종이 추려진다. 최근 출간순으로 기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팔린 판본은 위너스초이스에서 나온 논술용 서적이다.

박홍규가 번역한 문예출판사 본(2009. 3. 신국판 320쪽)
가장 최근에 번역된 판본으로 "<자유론> 출간 150주년을 맞아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비판적 해설을 곁들여 번역했다."라고 한다. 고전의 번역에 머물지 않고 한국 사회의 주요 문제를 파고들었다고 한다. 해설 덕에 320쪽으로 가장 두꺼우나 가격은 1만원으로 착한 편이다.

김형철이 번역한 서광사 개정판 본(2008. 5. 신국판 302쪽)
김형철 연세대 교수가 번역한 판본으로 1992년에 나온 활판본을 손질해 양장본으로 나왔다. 양장본인 탓에 1.8만원으로 가장 비싸다. 교수신문 기획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선정 판본이다.

이주명이 옮긴 필맥 본(2008. 3. 문고판 변형 236쪽)
필맥 사장이 직접 번역한 필맥 본은 유일하게 'On Liberty'라는 제목을 살렸다. 236쪽(7천원)으로 가장 얄팍하다. 번역의 질은 다른 판본에 비해 잘 모르겠으나 필맥이 이제까지 내 놓은 책을 볼 때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표지가 마음에 든다.

서병훈이 옮긴 책세상 본(2005. 1. 문고판 변형 254쪽)
책세상문고답게 254쪽에 6.9천원으로 가장 싸고 작다. 필맥 본보다 두꺼운 이유는 역자의 해제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가 번역했는데, 역자 중 유일하게 정치사상 전공자이다. 김형철 본과 마찬가지로 교수신문 선정작이며, 네 종 중 가장 많이 팔렸다.

교수신문이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라는 기획을 추진하고 이것을 책으로 펴 냈을 때 추천받은 판본은 김형철(서광사) 본과 서병훈(책세상) 본이다. 하지만 책이 나온 게 2006년이니 이후에 나온 필맥 본이나 문예출판사 본은 검토되지 않았다.

원제를 최대로 살린 '자유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긴 하나 아무래도 이주명 본은 가장 먼저 탈락하게 될 듯하다. 번역의 질이 차이가 나지 않는 선에서는 고전 번역본은 아무래도 해제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비싼 양장본인 김형철 본도 탈락할 확률이 높다. 책장에 꽂아 둘 가오용이 아닌 담에야 고전은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며, 사실 <자유론>은 팸플릿 수준의 얄팍한 책이기에 양장본이라는 외피가 적절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박홍규 본과 서병훈 본인데, 아무래도 아내가 직접 판단하는 게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난은 두울 다아!'라고 말하고 싶다. [2009-06-19]

업무상 자유론의 한 대목을 쓸 일이 있어 일전에 구입한 박홍규 역본을 봤는데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 그래서 서병훈 역본을 구해 비교해 보니 딱딱하고 건조한 게 이것은 무슨 바윗덩어리 같았다. 원문의 의도를 온전히 파악하는 데에는 차라리 딱딱한 게 나으나 떠듬떠듬 읽기란 힘겨운 일이다. 그렇다고 명상을 해야 하는 글을 읽는 것이 쉽지도 않고. 이에 구글을 뒤져 영문 원본을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한눈에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의도는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기에 일단 서병훈 역본을 참고해 꽤 윤문하는 것으로 결론내었다. 하지만 박홍규 역본의 장점은 박홍규의 시의적절(?)한 해제이다. 자유론이 인류사에서 가지는 위치에 기반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유가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논파한 글은 재미도 있고 의도도 깊다. 이것만으로도 살 만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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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죽인 책들교과서가 죽인 책들 - 8점
로버트 다운스 지음, 곽재성.정지운 옮김/예지(Wisdom)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로버트 다운스가 쓴 <교과서가 죽인 책들>은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옮긴이는 이 책에 실린 책들이 "교과서에 몇 줄로 축약되면서 원래의 책이 갖는 의미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막았다"고 지적한다. 교과서를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다소 뜨끔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Books That Changed the World, 즉 '세상을 바꾼 책들'이라는 원제를 그딴 식으로 바꿔 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교과서는 애당초 아주 제한된 분량 안에 교육과정에 언급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내용을 균형감 있으면서도 미학적으로 잘 버무려 담아야 하는 특수한 책이다. 물론 분량이나 표현 수준에서 제약이 있고, 어느 정도 수정, 발췌가 용인되는 교과서라고 해서 앞뒤 잘라먹거나 저자의 의도를 제멋대로 훼손해 싣는 것은 응당 부적절하나, 그렇다고 책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사실 우리가 '고전'을 대하는 태도부터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흔히 고전은 마크 트웨인이 "고전이란 누구나 읽었기를 바라지만 읽기는 싫은 책"이라 나름 내린 고전의 정의를 떠올려 보자. 이 말은 '누구나 내용에 대해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책'이라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차례를 읽으며 <교과서가 죽인 책들>에서 거론하는 책을 살펴보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뒤쎄이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 등. 우리는 교과서이든 다른 책에서든 이 책들을 숱하게 듣는다. 하지만 이 책은 교과서로 배우는 초중고등학생 시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모름지기 고전은 그것을 읽을 만한 소양이 있어야 온전히 읽을 수 있다. 그런 소양을 미처 갖추기 힘든 학생 시절에는 일단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핵심이라도 잘 파악하고 있는 게 장땡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대학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에게 <군주론>이나 <꿈의 해석>을 발췌한 제시문을 가지고 논술문을 쓰라 하는 파렴치한 출제 경향이 외려 고전을 죽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물론 고전을 고전답게 제대로 설명해야 함을 역설하는 옮긴이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를 주장하는 데 지나쳐 '오바'했다 싶다. 다시 이 책의 원제를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세상을 바꾼 책'이다. 저자 로버트 다운스는 인류의 역사(물론 이 책은 서구의 역사를 빛낸 고전만 거론했다.)를 통틀어 획기적인 전환점 내지는 시사점을 던진 책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앞서 말했듯 대입 논술고사를 비롯한 시험을 공부하면서 대부분 고전을 접한다. 이렇게 읽으면 고전이 아닌 화석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고전을 읽을 바에는 차라리 당대의 현상만을 잘라 이야기하는 일부 사회과학 서적이나 감성적인 에세이를 읽는 게 낫다.

우리는 종종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종종 간과한다. 한마디로 고전은 그 시대와 당대의 지성의 결합체이다. 따라서 고전을 읽으려면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이 고전들이 쓰였는지, 시대와 고전이 어떻게 호흡했는지를 읽어 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좋게 말하면 '엑기스'만 낼름 잡숴 왔다. 그리고 고전을 읽으려 하는 사람을 책벌레나 공부벌레 정도로 취급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세계사를 바꾼 책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고전을 접해야 하는 이유를 대략적으로 이야기한다.

한편 책의 저자가 고전(학) 전문가가 아닌 도서관학 전문가라는 점이 눈에 띈다. 고전 전문가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저자는 도서관학을 전공하면서 접한 고전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다시 자리 매김 한다. 어떻게 보면 해당 고전에 정통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도서관(학) 전문가가 질과 양으로 방대한 고전을 대중에게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고전에 관한 짤막한 맛보기의 묶음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고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고전을 찾아 읽게 하는 데는 괜찮은 책이다. 다만 이 책 한 권 읽고 수많은 고전을 읽은 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알라딘 TTB리뷰 9월 첫째 주 당선

http://camelian.tistory.com2008-08-28T07:41:12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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