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 년 동안 구매한 시디는 모두 36장. 사은품으로 받은 것도 있고 중고가 절반 가까이지만 따지자면 매달 여섯 장씩 시디를 샀다는 것인데 내 주제에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빠듯한 용돈 탈탈 털어 쏟아붓고, 적립금 마일리지 쿠폰 싸그리 긁어 모으고, 아내도 좋아할 만한 앨범은 슬쩍 책 사면서 한 장 끼워 넣고...  이리 해도 장난 아닌 금액이다.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 내 스스로 감당할 깜냥만큼 시디를 사지만, 책보다 더 쉬이 품절되고 정작 품절되면 언제 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게 시디이다 보니 막상 뒤졌을 때 시디가 나타나면 안 사고는 못 배긴다. 그나마 아내가 무서워 회사에 수백 장 쌓아 두면서 가뭄에 콩 나듯 집에 들여가는 친구 놈 이야기를 들으면 그 정도가 아닌 게 다행이다 싶다.

시디가 아닌 디지털 앨범을 사고선 새 음반 샀다고 말하는 후배의 말에 깜짝 놀란 게 삼사 년 전 일이다. 시간의 지나는 것과 반비례로 시디는 더욱 안 팔리고 디지털 앨범 또는 싱글이 팔리거나 여전히 MP3 파일이 넷 세계를 헤엄쳐 다니는 시대이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은 여전히 시디를 사 대고 있다. 옛 뮤지션의 몰랐던 곡, 못 샀던 앨범을 어쩌다 접하면 시디를, 아니 시디로 꼭 사야 할 것만 같은 강박 관념이 생긴다. 그리고 구할 수 없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아니지만, 설사 그러기라도 하면 몹시 짜증 내며 "시디는 안 사고 불법 다운만 받는 이 더러운 세상!"이라며 혼자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러다 중고가 나오거나 수입이라도 되면 낼름 구매해 놓고선 혼자서 킥킥 거린다.

좀 웃기다. 그 자체로 폼 나는 엘피도 아니고 고작 12인치 쌔고 쌘 시디 따위를 사 대는지. 좋은 오디오로 듣는 게 아니라 기껏 컴퓨터로 재생하거나 심지어 리핑해 싸구려 이어폰으로 듣는 주제에 굳이 시디를 사 대는지. 이삿짐을 쌀 때마다 혹여 케이스가 깨질까, 아이가 시디를 집어던지기라도 하면 흠집이 나진 않았을까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왜 굳이 시디를 사 대는지. 살림살이에 털끝만큼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 돈 버는 것도, 용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면서 어찌 시디를 계속 사 대는지. 나만큼이나 음악 듣는 거 좋아하는 아내도 선뜻 이런 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시디로 음악을 들어야 듣는 것 같은데, 시디를 사지 않으면 누군가 채 갈 것 같아 사촌이 땅 사는 것만큼 배가 아픈데.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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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3 HOURS TOO LONG  from Sonny Boy Williamson and The Yardbirds
2. OUT ON THE WATER COAST  from Sonny Boy Williamson and The Yardbirds
3. FIVE LONG YEARS  from Five Live Yardbirds
4. I AIN'T GOT YOU  from single
5. GOOD MORNING LITTLE SCHOOLGIRL  from single
6. LITTLE RED ROOSTER (REHEARSAL)  from The London Howlin' Wolf Sessions (no Yardbirds)
7. LITTLE RED ROOSTER from The London Howlin' Wolf Sessions (no Yardbirds)
8. HIGHWAY from The London Howlin' Wolf Sessions (no Yardbirds)
9. WANG-DANG-DOODLE from The London Howlin' Wolf Sessions (no Yardbirds)
10. I'M A MAN  from Five Live Yardbirds
11. THE TRAIN KEPT A ROLLING  from demo/alternate take of "The Nazz Are Blue"
12. JEEF'S BLUES  from demo/alternate take of "The Nazz Are Blue" without vocals
13. STEELED BLUES  from demo/alternate take of "The Nazz Are Blue"
14. NEW YORK CITY BLUES  from demo/alternate take of "The Nazz Are Blue"
15. IT'S A BLOODY LIFE  from Sonny Boy Williamson backed by Jimmy Page (no Yardbirds)
16. I SEE A MAN DOWNSTAIRD  from Sonny Boy Williamson backed by Jimmy Page (no Yardbirds)

Eric Clapton, Jeff Beck, Jimmy Page의 "Blue Eyed Blues"라는 앨범이 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이들은 사실 Yardbirds라는 같은 밴드 출신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3대 기타리스트'로 묶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3대 기타리스트이 아니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기타 연주를 숱한 앨범에 선보였다. 잡설로 이 셋 중 누가 우위냐고 할 때 나는 제프 벡, 아내는 지미 페이지를 골랐는데, 막상 크림 시절 에릭 클랩튼의 연주를 들어 보면서 논쟁을 중단했다. 그렇다고 에릭 클랩튼이 끝판왕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논쟁만 안 할 뿐.
          
1992년에 'Charly Blues Masterworks' 시리즈의 일환으로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Blue Eyed Blues"는 세 기타리스트가 폼 잡고 나온 커버 이미지[각주:1]와 달리, 세 명이 실제로 협연한 앨범이 아니라 각자 따로 놀았던 야드버즈 시절의 곡을 모아 놓은 편집한 것이다.[각주:2] 앨범에 실린 곡도 셋에게 균일하게 배분된 것도 아닌, 에릭 클랩튼이 10곡, 제프 벡이 4곡, 지미 페이지가 2곡씩 연주한 것을 모아 놓은 앨범이다. 여기에 소니 보이 윌리엄슨과 협연한 앨범에 수록된 곡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백밴드로 연주한 곡을 비롯해, 공식적으로 에릭 클랩튼이 야드버즈를 탈퇴한 뒤에 하울링 울프의 라이브 앨범에 참여한 곡도 포함돼 있는 등, 야드버즈의 앨범이라 하기 민망하다. 그때문인지 위키피디어 야드버즈의 디스코그래피 항목에 이 앨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앨범 제목인 'Blue Eyed Blues'는 푸른 눈을 지닌 서구 백인의 블루스라는 뜻이다. 이것은 두 가지를 함축하는데, 하나는 For Your Love 같은 대중적으로 히트한 곡이 아니라 블루스 곡을 담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흑인들의 음악인 블루스를 백인들이 재현했다는 점이다. 미시시피 강 하류에 살던 흑인들의 음악 블루스는 미국 전역에 퍼진 것으로 모자라 바다 건너 영국에 전해졌고, 로큰롤과 함께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로큰롤 밴드로 알고 있는 롤링스톤즈도,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거장 핑크 플로이드도 모두 블루스 밴드로 시작했을 만큼 음악 좀 해 보겠다는 영국의 젊은이들은 꽤 블루스를 연주했고, 그중 하나가 야드버즈이다. 물론 성공에 목 마른 나머지 대중에 영합하는 곡을 연주하거나 사이키델릭 음악이나 하드록으로 변화해 갔지만, 블루스는 록 음악 자체의 뿌리였다. 오죽하면 팝이 아니라 블루스를 하고 싶다고 에릭 클랩튼은 야드버즈를 뛰쳐나갔고, 제프 벡은 여러 가지 실험을 했을까? 그리고 지미 페이지는 모두 떠난 밴드에 홀로 남아 결국 레드 제플린을 만들었다.

재차 말하면 이 앨범은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가 야드버즈라는 이름으로 백인들의 블루스를 시도한 몇몇 곡을 모아 놓은 앨범이다.미국 블루스의 거장 소니 보이 윌리엄슨이나 하울링 울프의 곡이 주를 이루다 보니 역설적으로 오리지널 블루스에 더 가까운 연주를 들려 준다. 거기에 밴드 곡도 아직은 일렉트릭 기타가 왕왕 울어대는 축축한 블루스가 아닌 오리지널 블루스의 냄새가 풍기는 끈적한 블루스가 당대 유행하던 로큰롤이 뒤섞인 어중띤 모습(이게 리듬 앤 블루스인가?)으로 흘러나온다. 좋게 말하면 로큰롤으로 변모해 가는 블루스라고나 할까. 그 때문에 이 세 기타리스트의 야드버즈 이후 시절의 록 음악을 생각했다간 앨범 집어던지기 십상이다. 아무튼 미국 흑인의 전유물인 블루스가 어떻게 바다 건너 백인들에게 전해졌는지, 그 중간 과정을 대강 알 수 있게 하는 자료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나이가 먹었는지 이런 블루스 음악도 이제는 제법 들을 만하다.

  1. 역시 생긴 것만으로 보면 에릭 클랩튼이 한 수 위. 그런데 제프 벡보다 지미 페이지가 더 이상하게 나왔다. [본문으로]
  2. http://www.allmusic.com/cg/amg.dll?p=amg&sql=10:0bftxql5ldfe 에서 각 트랙의 일부분을 조금씩 들을 수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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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ssion>, <Once Upon A Time In America>, <Cinema Paradiso>, <Love Affairs>.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언제나 가슴 저미는 선율, 하지만 섬세하거나 장중하다기보다는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익숙한 단조로운 패턴의 선율로 수놓아져 있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가슴 저미는 선율은 웬만해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

그중에서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담당한 영화 중에서 최고 걸작은 아무래도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Once Upon A Time In West>일 것이다. 미국의 서부에서 무법자들의 종말을 드라마틱하게 보여 주는 영화도 영화지만, 엔니오 모리코네의 빼어난 선율을 다각적으로 변주한 테마는 영화를 뛰어넘는다. 성스러움, 한탄스러움, 아련함, 희망, 아쉬움, 쓸쓸함 등 영화에서 표현되는 그 어떤 정서와도 잘 조화되는 <Once Upon A Time In West>의 테마야말로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부활의 2집 <Remeber>의 대미를 장식하는 Jill's Theme, 메인 테마의 변주 중 하나인 질의 테마를 듣다가 예전에 쓴 이 글이 생각나 수정해 본다.




호기심에 인터넷을 뒤지니 꽤 많은 뮤지션이 이 곡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연주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은 듯. 그렇게 찾은 곡 가운데 가장 절절했던 곡은 노르웨이의 바이얼리니스트 Arve Tellefsen의 연주. 바이얼린이라는 악기의 특성상 마치 날카로운 비수가 심장을 서서히 파고드는 듯한 절절함이 살아 있는 곡인 듯싶다. 칼이 스며들어간 상처 자욱에서 흘러 내리는 선홍색 피. 하지만 그런 장면조차 아름답도록 보이게 만드는 영화는 수없지 않은가? 그런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Arve Tellefsen - <Intermezzo>(2002)


다음 곡은 영화에 마지막 엔딩신에 실린(실은 영화를 언제 봤는지조차 기억이 안나는 - 혹시 안 봤을지도 모르는 - 정확히는 모르나 이런 음악은 대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흐른다)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의 Finale. 스트링의 조화 속에서 여성 스캣 코러스과 이따금 흐르는 하프시코드가 살짝 얹혀져 아르베 텔레프센의 곡에 비해 한껏 아련함이 느껴진다. 아마 영화의 Finale로 쓰여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르베 텔레프센이 지금 겪고 있는 절절한 아픔이라면, 원곡은 먼 옛날의 아픔을 회상하는 느낌을 전해 준다.

Ennio Morricone -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OST>(1972)


그리고 다음은 클래식 대중화의 전도사인 클래식 계의 히딩크라 불리우는 앙드레 류가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와 전 세계를 돌며 협연했던 곡. 원곡보다는 좀 더 장중한 느낌의 오케스트라에 아득한 느낌을 주는 소프라노의 코러스가 다소 위압적이게 들린다. 텔레프센의 절절함이나 원곡의 아득함을 느끼기는 힘드나 좀 더 강렬한 느낌을 전해 준다.

Andre Rieu - <Special Tour Edition>(2004)


이어지는 곡은 엔니오 모리꼬네와 파두 현대화의 선두 주자(?) 둘체 폰테스가 함께한 앨범 <Focus>에 실린 버전이다. 얼핏 듣기에는 셀린느 디옹이 아닌가 했는데 둘체 폰테스란다(나 보고 목소리를 구별하라는 것은 이명박의 주둥아리를 꼬매는 것보다 조금 쉬운 행위이다). 대개 파두에서 느낄 수 있던 애조띤 정서보다는 꾹꾹 눌러 담아 놨던 슬픔을 터뜨린 채 엉엉 우는 듯한 힘 있는 보컬이 또 다른 면에서 숙연하게 만든다.

Ennio Morricone & Dulce Pontes - <Focus>(2003)


앞서 말했듯 부활 2집에는 'Jill's Theme'이라는 이름으로 록 스타일의 연주곡이 수록되었다. 김태원의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이 곡은 일렉트릭 기타의 울부짖음으로 원곡의 스캣을 절묘하게 카피하고 있다. 아무래도 록 밴드의 연주이다 보니 다른 연주보다 다소 격하게 느껴지지만 애당초 엔니오 모리코네가 추구한 정서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앨범 수록 이후 부활의 공연에서는 자주 연주되는 듯한데, 이승철이 다시 합류한 후 가진 관현악단과 함께한 공연 실황을 올려 본다.

마지막으로 마크 노플러가 이끌었던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연주한 곡을 올려 본다. 원곡과는 제목만 같을 뿐이다. ^^;

Dire Straits - <Communique>(1979)

* 엠블 시절 작성한 글을 아주 조금 고치고 보탠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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