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반야 님의 글과 그 전의 댓글에 대해 보충과 해명을 위해 쓴 글이지만, 이북과 디지털 콘텐츠에 관한 기본적인 제 생각을 담았습니다. 일단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아 깁니다. 하지만 스압에는 스압으로! 입니다. ^^;

1.
똑똑샘의 어중간함은 출판 업계와 IT 업계, 정확히는 이북/디지털 콘텐츠 업계 사이의 간극 사이에서 나온 절충안입니다. 애당초 절충은 어정쩡합니다. 이 솔루션은 콘텐츠를 만드는 출판사도 전자펜을 만드는 IT업체도 아닌 PDF 솔루션 업체에서 고안한 것입니다. 사실 PDF 자체가 어정쩡하죠. 문서를 디지털화했지만 양쪽 다 속하는 듯하면서도 속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출판업계에 발을 디밀고 있는 이  PDF 업체는 정밀한 스케치 도구로밖에 쓰이지 않던 전자펜을 이용해 멀티미디어 파일을 구동하는 초보적인 디지털 교과서를 고안했습니다. 정부의 디지털 교과서 사업이 잘 진행됐으면 이것은 아마 저렴한 비용 이외에는 장점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학생에게 태블릿PC는커녕 넷북조차 공급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출판업계가 등돌리고 있는 마당에 IT업체가 디지털 교과서만을 위한 별다른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이것은 그 나름의 돌파구를 찾은 것입니다.

2.
출판업체와 IT업체가 반목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북토피아의 파산입니다. 한국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여기서 터진 것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컨텐츠를 다루는 관점이 두 업체 간에 너무 달랐죠. "10년 전의 음반기획사/제작사"와 다를 바 없는 출판계의 정저지와성 시각을 탓하기에는 종이 책에서 텍스트만 긁으면 이북이 될 거라고 생각한 이북 업체 역시 개구리이긴 매한가지였습니다. 저작권 문제, 수익 정산 문제, 결제 문제, 디바이스 문제 등 숱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에도 둘 다 안이하게 대처했고, 결론은 북토피아의 파산이었습니다. 그 후로 출판계에서는 이북을 백안시하고, 이북 업체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놈들 어디 두고 보자 식으로 일관하고 있죠. 누군가를 이 간극을 좁혀야 할 텐데 별로 하려는 사람 없습니다. 출판계는 더 심합니다. 최근에 책을 낸 모 출판사의 사장조차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언급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신국판이든 사륙배판이든 그 틀 안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못하죠. 출판에 대해서 한목소리하는 이런 이도 이런 마당에 말단 편집자들이 뭔 생각을 하겠습니까? 저조차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게 6개월이 안 됩니다. 강의를 들으며 고민을 시작한 찰라에 저 어정쩡한 솔루션을 접하고선 그나마 생각이 한 발짝이라도 나간 것이죠.

3.
사실 할 만한 이야기는 다 했지만 조금도 끼적거려 봅니다. 마하반야 님과 제가 공유하는 지점은 디바이스 중심의 관점을 피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서로 자리 하는 위치가 달라 발생하는 다소 사소한 차이를 빼놓고 한 가지를 더 말해 보면 플랫폼의 통일, 그리고 저작권의 보호입니다. 디바이스는 표준화할 필요가 없다치더라도 플랫폼은 통일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여타의 포맷을 어느 디바이스에서나 가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이 책은 문서의 코덱스라는 동일한 플랫폼이 존재합니다. 때문에 구입만 하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죠. 디바이스는 마하반야 님의 말처럼 태블릿피시로 하든 이북 리더로 하든 하물며 휴대 전화로 하든 자기 능력껏 편한 대로 하면 될 듯합니다. (물론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쓰는 것은 능력껏 구비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콘텐츠는 어느 디바이스에서 구동이 되어야겠죠. 컬러와 흑백은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어느 장치에서나 읽을 만한 가독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미지도 차이나지 않게 보여야 합니다. 여기에 멀티미디어 파일도 동일하게 재생되어야겟지요. 뭐 이런 부분은 마하반야 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리라 생각합니다.

4.
저작권 보호도 마찬가지일 수 있으나 그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비교할 만한 게 음반 업계일 텐데 디지털 음원의 판매 수익의 배분을 볼 때 출판사 입장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서점 공급가와 비교할 때 음반 내지는 음원 공급가는 터무니없이 낮죠. 또한 동일하게 무한 복제가 가능해 공급가를 상당히 낮출 수 있는 음반과 그렇지 못한 서적을 비교하기도 어렵고요. 북토피아 파산의 실제 문제는 이러한 수익 배분에서 양자가 전혀 합의하지 못했다는 게 결정적입니다. 서적이라는 규정된 형태가 아닌 하나의 콘텐츠로 본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봅니다. 한때 시 한 편을 디지털 음원처럼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야기가 거론되었는데 들은 지 2년이 넘도록 하나 진전되는 게 없습니다. 아예 이야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비슷한 문제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5.
음반 또는 디지털 음원이 언급되어서 한마디 보탭니다. 종이 책과 음반을 비슷하게 보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음반, 정확히는 시디와 디지털 음원은 동일하게 복제가 가능합니다. 덕분에 무단 복제가 판을 쳐 시장을 망가뜨렸죠. 이것은 음악을 이진수 기호의 집합으로 보는 관점이죠. 종이 책에 실린 텍스트와 이미지 이것 역시 이진수 기호의 집합으로 변환이 가능하고 재생산과 무한 복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종이 책에 실린 것과 이북에 실린 것은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질과 장정,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라피가 결합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들 역시 얼마든지 이진수 기호의 집합으로 재현 가능하지만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합니다만, 이는 곧 어떤 디바이스든 그것이 가지고 있는 디스플레이에 걸려 버립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종이 신문은 망하는 지경에 처했지만, 신문의 넓은 조판은 여전히 유용합니다. 개개의 기사를 볼 때에는 인터넷에서 브라우저로 보든 이북 리더로 보든 아무 상관 없습니다. 텍스트의 나열로 구성된 소설 역시 마찬가지이겠죠. 하지만 그런 기사의 집합체로서 신문은 너른 판면에 일정하게 배열된 형태로 보아야 정보의 결합과 재구성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영향력은 쇠퇴하기도 하고 하이퍼링크라는 새로운 재구성에 뒤쳐져 있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라는 게 개개 정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구성되는 방식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편집이겠죠. 제가 예전에 지적했던 것 중 하나가 종이책을 그대로 스캔해 또는 텍스트만 긁어서 이북용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설사 이미지를 추가한다고 해도 새로운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라피 등이 요구되는데, 이거 하는 사람이 국내에는 없습니다. 업체는 필요성도 못 느끼고 이쪽의 비전도 없습니다.

6.
"전자책의 시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 동감합니다. 일종의 시대정신 같은 거겠죠. 이런 마당에 하루 속히 변화를 모색하고 선도하는 출판사가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 한숨만 나옵니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인 출판사가 이토록 만만디 하는 것에는 종이에 대한 여전한 수요를 기대해 보기 때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업무 특성상 종이의 사용량이 많습니다. 그런데 들고 다니며 보기 때문이 아닙니다. 워드나 스프레드시트로 문서 하나를 만들어도 출력해서 보지 않으면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피벗이 되는 모니터로 돌려 보는 사람도 있고, 무조건 출력부터 해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이가 주는 높은 가독성은 이북이 아직은 따라잡기 힘든 모양새입니다. 추천해 주신 동영상을 볼 때 결국은 스크롤을 해야 내용을 보는 장면에 눈길이 멈추더군요. 디스플레이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으니 결국은 손으로 밀고 당기고 해야 하나 봅니다. 뭐 익숙해지면 변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것은 이북 리더의 분발이 필요한 지점일 겁니다. 그리고 종이가 외려 덜 환경파괴적일 수도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 하이브리드 카를 내놓으면서 친환경적이라 떠드니 누군가 한마디 하더군요. "거기 쓰는 배터리는 지구상에서 완전 분해가 불가능하다." 어느 기기를 막론하고 배터리 이거 참 흉물입니다. 오래 쓰지도 못하는 것이 분해는 불가능합니다. 종이는 잘 태우면 완전연소라도 가능하죠. 물론 이산화탄소를 증가시키겠지만, 공장 짓는다 농장/사육장 짓는다고 황폐화시키는 숲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좀 쪼잔한 지적이긴 하지만, 현대인이 간과하는 부분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짧게 이야기한다는 게 꼬치꼬치 시비를 가르는 것 마냥 변해 버렸군요. 이 분야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다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마하반야 님 덕에 정리를 해 보네요. 물론 이게 정리한 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생각을 늘어놓은 것뿐이죠. 마하반야 님께 감사합니다. 사실 디바이스 중심의 사고를 경계하는 아이티 업계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문제 지적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며 이것에 기초해 생각해 볼 단초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Posted by Enits
,
당선되는 비법이 아니라 그저 당선율을 조금 높이는 기술적 요소를 언급한 글입니다. 낚이셨다면 죄송합니다.

----------------------------------------------------

간만에 알라딘 TTB리뷰에 당선됐다. 그런데 간만에 되다 보니 당선축하 적립금이 1/5토막 난 사실에 조금 경악했다. 아낄 것을 아낄 것이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수긍하기란 어렵다. 요즘 같은 시절 적립금 5만원이면 꽤 짭짤하다. 하지만 이젠 꼴랑 1만원이다. 책 한 권 사기도 버거운 금액. 그래도 꽁짜잖아 하는 마음이 반이다. 물론 반은 그래도 원고료라 생각할 만한 건데 5만원은 너무 짜잖아 하는 마음.

이런 거 당선되는 거 보면 신기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껏 24건의 TTB리뷰 중에 이주의 당선작은 5건. 이중에서 모처에서 기사로 써 당선되어도 사양해야 할 것이 5건, 서평단으로 쓴 것이 2건인지라 이것들을 제외하면 17건 중 5건 당선이니 당선율이 1/3을 넘는다. 그리고 이쯤 데이터가 쌓이니 대충 어떤 책들이 당선되는지 얼추 감이 잡힌다. 이를테면 알라딘 담당자가 좋아하는 리뷰라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 마이리뷰로는 당선된 바 없어서 확신은 못하나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막연히 추측한다.

우선 성의 있게 써야 한다. 몇 줄짜리 반토막 감상을 끼적거리는 것으로는 당선, 안 된다. 요구하는 분량을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A4지 반바닥 정도는 써야 할 듯싶다. 물론 그보다 길면 읽다가 짜증 낼 게 분명하다.  그리고 당연스레 인터넷체 같은 인포멀한 말투는 집어던지고 어느 정도 한글맞춤법과 기본 형식은 지켜 줘야 한다. 이것은 당선과 상관없이 글로 인정받는 최소 조건이기도 하다. 글자의 조합은 글이 아니다.

둘, 가급적 근자에 출간되어 소위 잘 팔리거나 서점 직원 입장에서 좀 팔리었으면 하는 책이다. 물론 다소 오래된 책도 당선되기는 하나 당선작 리스트를 죽 보면 최근에 출간되어 세일즈 포인트를 높여 가는 책들이다. 어짜피 TTB리뷰 당선작은 책을 파는 데 뽐뿌질하는 목적으로 뽑는 거다. 알라딘 특성상 인문학/사회과학적 소재를 대중용으로 풀어 쓴 책을 좋아하는 듯. 다만 아주 학술적인 책은 서점의 매출고를 올리는 데 도움되지 않기에 그닥 좋아하지 않는 듯.

셋, 앞의 둘은 너무 빤한 것이니 실제로 쓸 만한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시작은 책과 관련된 개인적 경험을 한 문단 정도로 기재해 주는 것이다. 정색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포멀한 리뷰는 안 읽는 것인지 싫어하는 것인지 담당자에게 별로 인기 없다. 사실 나보고 읽으라고 해도 읽는 둥 마는 둥 할 게다. 앞 부분에서 읽은 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바탕으로 리뷰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글을 읽는 맛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빤한 말이군.

또 빤한 말 한마디 보태면 책의 주요 내용을 압축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 뭐 리뷰라면 응당 그래야 하겠지만 막상 리뷰라고 올라오는 것들 보면 그게 불성실한 게 적잖게 보인다. 자, 이렇게 빤하디빤한 전제 조건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리뷰는 리뷰답게 그리고 읽는 이가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서점을 한가득 메우고 있는 자기계발서 마냥 누구나 다 알 법한 빤한 이야기이지만 그게 세상의 이치인 걸 어쩌겠는가.

Posted by Enits
,
 택배 기사가 박스 하나를 건넨다. 알라딘에서 보낸 택배. 그런데 최근 책을 주문한 적 없는 나로서는 어리둥절하다. 갸우뚱. 혹시 누가 생일선물을 늦게나마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설레는 마음에 택배를 풀어 보니 다소 생뚱맞은 책이다. 그것도 3권이나. 근신-반성-갱생의 시간을 보내는지라 책을 사지 못하는 나로서는 웬 떡이나 싶었다. 그런데 박스 안에 든 송장을 보니 주문자가,

 화이부동 님이다.

 책을 보아 하니 최근 화이부동 님이 관심을 가지시던 건축 분야 책이 한 권 있다. 얼마 전 화이부동 님에게서 책을 선물받은 적이 있기에 실수로 당신 읽을 책을 최근 배송 주소로 보냈나 싶었다. 좋아 말았다는 생각을 0.03초 정도 했지만 그 나름 유쾌한 일이 아니던가. 어짜피 화이부동 님께 책을 보내드릴 예정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바, 그리고 주문하신 책이 안 와 슬쩍 스트레스 받으실지도 몰라 화이부동 님께 문자 메시지를 보내 드렸다. 블로그 방명록보다는 아무래도 문자 메시지가 빠르니까. 잠깐 후에 도착한 답문은 기가 막혔다.

 "자일님께 보내 드린 것 맞습니다."

 어라랏 이게 아닌데. 사실 책을 읽어 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집에서 먼지 뒤집어 쓰며 굴러다니던 책을 마땅히 읽을 분에게 보내 드렸을 뿐인데, 두 번에 걸쳐 새 책을 보내 주시다니. 지난번에 썼다가 오류로 인해 결국 사라져 버린 혼잣말이 반복되었다.

 "이이이건 반칙입니다!"

 책을 공으로 손에 넣은 것은 흐믓한 일이지만 이리 되면 살짝 부담이 된다. 아무리 호혜의 원칙에 따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책을 선물하신 것일 테지만, 사실 무언가를 공짜로 받으면 마음 한 켠은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라는 경구를 속담으로 남기지 않았는가? 그나마 원래 니나노 님과 포로리를 염두에 두고 회사에서 나온 책을 챙겨 두고 있던바, 화이부동 님께 보내드릴 게 없지 않지만 보내는 사람 마음과 받는 사람 마음은 화이부동 님의 선물을 대하는 내 마음을 볼 때 꽤나 다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화이부동 님 고맙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Posted by Enits
,
화이부동 님의 글을 읽고 나서 마침 내게 월러스틴의 책이 몇 권 있기에 보내 드렸다. 본사 왕래하면서 반품 창고에서 언젠가는 건질 만하기도 했거니와 과연 내가 지고 있는다고 해도 그 책들을 언제 읽을까 싶어 마땅히 읽을 만한, 읽어야 할 분에게 드리는 게 책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글에 달린 니나노 님의 "분서갱유할 서적 목록"이라는 말에 화이부동 님에게 무한한 연대(!)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아내들이 남편이 무차별적으로 책 사 들이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것은 구십구 프로 이해하지만 입은 툭 나온다. 책을 수백만 원어치 사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화이부동 님이 "분서하면, 저도 분신을"이라 답글을 단 데 대해 아내는 "분신은 뭐람"이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내 입장에서는 니나노님이 유생을 생매장한다는 뜻인 '갱유'를 언급한 데 대해 맥락은 알지만 지나친 언사라고 투덜거리는데, 아내는 뜻밖에도 그에 맞서는 화이부동님의 나름 저항 행위인 '분신'을 갖고 뭐라 한다. 한술 더 떠 "마누라들도 맞서서 된장물품들을 사제껴야 해."라고도 한다. 흠. 가재는 게 편이 맞나 보다. ^^;

그래서,

남편들이 잃을 것을 용돈뿐, 얻을 것은 책이다. 만국의 남편들이여 단결하라!
Posted by Enits
,
알라딘에서 구매 리스트를 열어 보니 못 보던 버튼이 있었다. 해당 책의 중고 판매분 등록 여부를 알려 주는 버튼인데, 아쉽게도 활성화가 돼 있지 않아 일일이 해당 책의 페이지를 거쳐야만 하지만, 그동안 늘 바라던 기능이기에 훗훗 했다. 그런데 구매 리스트와 보관 리스트 같은 원래 서재에 고정된 리스트에서만 작동하는 듯. 내가 만든 마이 리스트에서는 중고책 재고가 있음에도 그 버튼은 뜨지 않았다. 좀 아쉽긴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인가 싶어 보관 리스트에서만 작동하는 데 만족.

그런데... 알라린 중고샵 자체가 아내가 늘 말하듯 광화문 교보문고 한구석에 헌책방이 들어선 것 같은 모양새인데, 여기에 한술 더떠 진열된 새 책 옆에 중고책이 몇 권 있다고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듯한 모양새가 아이러니하다. 중고책의 현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에 소비자 처지에서는 좋긴 한데, 이 뭔가 어색한 '시츄에이션'을 뭐라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Posted by Enits
,
간만에 안티쿠스에서 메일이 왔다. 고전, 역사, 종교, 신화 등을 주로 실은 괜찮은 인문-교양 잡지였다. 하지만 정기 구독이 끝나고 곧이어 잡지가 사실상 폐간되는 바람에 잊고 살았는데 간만의 소식을 받았다. 혹시 재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감에 메일을 열어 봤는데, 아쉽게도 재간에 대한 소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실망 그 자체의 메일은 아니었다.

안티쿠스는 창간호부터 16호까지 전 권을 웹사이트에서 PDF로 제공한다. "과월호를 찾으시는 분들과 절판된 호의 내용이 궁금하신 회원 여러분을 위해"라는 메일의 문구를 볼 때 실상 폐간했음에도 과월호를 찾는 사람이 꽤 있나 보다. 그렇다고 이것을 다시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안티쿠스는 PDF로 공개했다. 당연스레 무료로. 고해상도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개인용 프린터로 출력해 보는 데에는 큰 무리 없을 듯하다.

발행인이 굴지의 인쇄-출력 업체의 사장 부인이었던 관계로 어느 정도 독자만 붙어 줬더라면 계속 나올 수 있었을 듯한데, 그 '어느 정도'를 채우지 못해 끝내 폐간됐다고 들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협소한 한국의 인문학 시장은 늘 아쉽다. 그래도 혹시나 찾을지 모르는 독자를 위해 선뜻 PDF로 제공해 무료(물론 웹사이트에 회원 가입은 해야 한다)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전 발행인의 결단은 그나마 그것을 메워 준다 싶다. 그런 힘으로 한국의 인문학은 그나마 버티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Enits
,
시사인에 실린 '2009년 인문·사회출판 지형도는?'이라는 기사가 널리 회자된다. 올해 어떤 책, 특히 인문/사회 분야의 책이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은 제법 즐거운 일이다. 도저히 인문/ 사회 분야 전문 출판사라 할 수 없는 출판사가 리스트업되긴 했지만(맛이 갔다고 해도 목록에 빠진 출판사도 있는데...)대체로 올해의 인문/사회 분야 출판 시장의 경향성을 대충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정말 가오 선생 말처럼 저 책들이 2009년에 나올 수 있을까? 바짝 말라 붙다 못해 쩍 갈라진 저수지 밑바닥 같은 인문/사회 분야 출판 시장의 정황상 저 책들의 반이라도 독자의 손에 전해질 수 있을까? 이런 책이야 나오면 나올 수록 좋다지만 그 책들이 경기탓, 정확하게 말하면 독자탓에 사장되어 버리는 것보다 나쁜 건 없다.
Posted by Enits
,
출판사 들어오면 상당히 많은 일본어 비스무리한 용어에 고개를 갸우뚱하기 마련이다. 짬밥이 먹어 가면서 차츰 알아가지만 끝내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모르는 말도 많다. 가령 '누끼'라고 해야 할지, '눗기'라고 해야 할지 긴가민가 하는 것처럼. 게다가 이것의 정확한 뜻은 무엇이며 어원은 무엇인지 뭐라 바꿔 쓰면 좋을지에 이르기까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일은 수도 없이 많다.

팀 선배가 작성한 것을 무단으로 전재해 본다. 선배도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취합해 정리한 것일 텐데, 이런 것이야말로 '편집'이 아니던가? ^^;

소통을 위해서는 이런 일본어식 용어를 써야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왜 쓰이냐, 무엇을 말하느냐일 것이다.



Posted by Enits
,
오래 전에 사두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펼쳐 보지 않았던 헌책을 꺼내 펴 보았다. 면지에 적힌 84년의 기록. 학교, 학과, 학년, 그리고 두 개의 이름(아마도 사 준 이와 받은 이인 듯). 그리고 이어지는 누리끼리한 바랜 종이들...

책은 저자 서문에서부터 밑줄이 한 가득이다. 책을 죽 넘겨 보니 적으면 1/3, 많으면 2/3 정도 밑줄이 그어져 있다. 그것도 모나미 173 볼펜을 자 대고 쭉쭉 그은... 아마 저학년들이 학습을 열심히 하려고 티 낸 흔적이겠지. 이따금 붉은 색 볼펜으로 중요함을 강조한 부분도 있고, 동글뱅이나 연번이 쳐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정도로 밑줄을 그어 놓으면 무엇이 중요한 부분이고 무엇이 덜 중요한 부분인지 어떻게 알까나? 책의 원 소유주의 집요함은 책의 마지막 문단에까지 밑줄을 쳐 놓는다. 밑줄이 안 그어진 속표지와 미주뿐. 차례에도 동글뱅이가 쳐져 있다.

초심자들은 책을 읽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을 때 일단 그어 놓고 본다. 그러다 보면 줄은 한 면을 가득 채우기 일쑤다. 왜냐면 다 모르는 내용이 줄줄이 나오는데 뭐가 중요한지 뭐가 덜 중요한지 알 수 없기 때문. 그리고 나름대로 성심성의를 부린다고 자 대고 밑줄을 긋는다. 초심자들이 그렇다면 중급 이상들은 안 그런다는 말. 한 면에 그치지 않고 길게는 한 챕터를 다 읽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밑줄이 서너 줄을 넘을 것 같으면 밑줄 대신 박스를 친다. 그리고 의문점이나 더 생각해 볼거리가 있으면 여백에 뭐라 적어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다 노트에 옮겨 적는다. 당근 노트는 삼공노트이다. 옮겨 적은 것들은 다른 책을 읽으며 해결한다. 그리고 책을 다시 읽는다.

그런데 그다음 단계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Posted by Enits
,
필자나 역자는 물론 출판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의 결정체인 '책'에게 '50% 세일'이라든지 '7천 원 균일가'라든지 하는 말은 가혹한 세상살이의 징표이다. 엄청난 출판 시장의 불황기에 결국 출판사들은 언 발에 오줌 놓기 형식으로 덤핑을 시작했다. 이미 예견했던 바. 하지만 막상 그리 접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게로 달아 팔아도 시원찮을 책이 있으면, 고이고이 서가에 모셔 두고 틈틈이 꺼내 볼 책도 상존하는 법. 괜찮으나 도무지 안 팔리는 책만 내놓는 모 출판사도 결국 제살 깎아 먹기의 대열에 나섰다. 그 출판사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16만 원짜리 책을 전부터 탐냈는데, 마침 30% 할인으로 나오기에 접수할까 했더니 결제가 전처럼 5% 할인으로 되는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시스템 오류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기다렸더니 아예 5% 할인으로 수정됐다. 헛. 이럴 수가. 거기에서 나오는 적잖은 적립금을 산울림 박스 세트 사는 데 쓰려 했는데... 흑흑.

아무튼 10% 할인해 주는 다른 인터넷 서점이 있어 그쪽에서 주문했다만, 왠지 그 출판사들의 괜찮은 책이 아른거린다. 그 책이 아니면 그 책만큼의 다른 책도 사랑해 줄 텐데... 사실 그 책은 한정판이기는 하지만 16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아무도 쉽게 사려들지 않을 테니 품절되는 일은 생각만큼 일어나지 않을 텐데.

요즘 같은 세상 책 한 권 못 살 형편이라 꼭 필요한 책도 덜덜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실탄으로 싼값에 사 들이는 인간도 있을 게다. 물론 나라고 전자였던 적이 없을까? 대학 시절 지지리 책 안 읽던 데는 어려운 책만 읽어야 할 것 같은(혹은 읽으라고 강요 아닌 강요을 받은) 강박도 강박이었지만, 살 돈도 꽂아 둘 공간도 언제나 넉넉지 않았던 연유가 살포시 숨어 들어 있다.

괜히 안쓰럽다.
Posted by Enits
,

현 직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근무 조건은 도서구입지원비 지급이다. 일정 한도 안에서 도서 구입비의 60%를 지원해 준다. 몇 가지 제한 조건이 있긴 하지만, 책값의 40%만 더 지출하면 책을 꽤 많이 살 수 있다. 입사 초기 팀장은 이것을 설명하면서 자기는 읽든 안 읽든 한도액을 꽉 채워 산다고 했다. 책 지름질을 좋아하는 나로서 마다할 리가 있나? 1월부터 지금까지 한도액을 꽉꽉 채워서 때로는 1-2천 원 정도 초과하면서 책을 사들이고 있다. 물론 지원비가 나온다 하지만 엄연히 40% 만큼의 비용은 지출해야 하는 만큼 아내는 도끼눈을 뜨지만 아내의 책까지 일정 정도 지원비로 사면서 입막음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왠지 이 한도를 안 채우면 손해 볼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다 언제까지 지금 회사를 다닐지 모르지만 서가를 채울 수 있을 때 팍팍 채워 놔야 나중에 놀아야만 할 때 덜 괴로울 듯싶다. ^^;


사는 건 둘째치고 이 책을 다 읽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한 달 내내 꼬박 읽어도 감당하기 힘든 양을 매달 사들이는 통에 사실 만화책을 제외하곤 책은 그저 꼽아 두는 용도로 쓰는 건 사실이다. 특히 알라딘에서 중고샵을 개장하면서 초반에 중고의 특성상 한정 상품이라는 데 혹해 마구잡이로 사들이기도 해 더 문제이다. 이 속도로 가다간 내년에 이사를 가야 할 때 이삿짐센터 사람들로부터 한소리 들을 하지만, 재작년 비로소 처음으로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기까지 그동안 언제라도 거처를 옮길 수 있도록 가능하면 짐을 주려야 했는데다 학비와 생활비를 근근이 조달하느라 책 한 번 제대로 못 사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책은 살 수 있을 때 사 놔야만 할 듯하다. 하지만 원칙은 필요한 법. 에세이 류처럼 한번 툭 읽고 마는 책은 가급적 제외하고 인류사의 고전이나 개념 정리 사전 같은 두고두고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 그리고 일단 꽂아 두면 집안의 품격을 높이는 가오 지향의 책을 주로 사려 한다. 물론 그것은 바람일 뿐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는 책을 사면 서평이라도 쓰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서평을 쓰기는커녕 제대로 읽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매달 두세 편 정도는 꼬박꼬박 서평을 쓰려 노력한다. 비록 쓰지 못하더라도 읽으려 노력하지만, 펴 보기만 하고 끝내 읽지 않은 책이 무척 많다. 그래도 그렇게 책으로 채워져 가는 서가를 보면 위는 굶주려 있어도 배가 부른 듯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가뜩이나 출판가 불황이라는 말이 많은데 책 만드는 사람,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사 줘야 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3개월 된 아이도 나 닮아 책이 좋은지 거처인 안방보다 책 먼지 가득한 서재방을 더 좋아한다.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대견하다. 아마도 점점 내가 읽는 책보다 아이가 읽을 책이 많아지리라. 그리고 아이가 제법 크면 나랑 서로 자기 책을 사겠다고 싸우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거기에 아내도 한몫 거들겠지. 생각만 해도 흐믓하다.



합계를 내 보니 171권을 샀고 그중 2권은 되팔았으니 결과적으로 169권을 산 셈이다. 참 징그럽게도 많이 샀다. 서가가 대번에 포화 상태에 이르었다. 그런데 이중 만화책을 빼면 한 30권쯤 읽었을까? 아니 20권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Enits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젠가 한 후배가 그랬다.

"인터넷서점에서 책 못 사겠어요. 뽁뽁이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요."

생태적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이 그리 내밀화한 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 정도는 가졌던 후배에게 에어캡(일명 뽁뽁이)는 필요하지 않은 거추장스러운 사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야겠다 말했다. 그런 후배에게 인터넷서점의 할인액을 이야기하는 건 아무 의미 없었다. 후배는 이미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반생태적으로 살아선 않아야 함을 이미 내비쳤기 때문이다.

책을 비롯해 시디, 디비디, 커피, 아이 용품 등을 거의 대부분 인터넷쇼핑몰에서 구매하는 내게 에어캡은 친숙하다 못해 내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접하는 물건이다. 상품을 안전하게 내게 가져다준다는 본래의 목적 말고도, 톡톡 터트리는 재미로 스트레스의 극히 일부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물건을 풀어 버리면 처치해야만 하는 쓰레기의 근원이기도 한다. 다른 비닐과 함께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수거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내 곁에서 치우는 것일 뿐,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따금 후배의 말이 머릿속에서 겹쳐져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인터넷쇼핑물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에는 비굴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기도 하다. 잠깐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실제로 불편한 건 나중 문제이다.

주문하는 상품에 따라 여전히 에어캡이나 에어쿠션으로 돌돌 말려 오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알라딘은 "흔들림없는 에이스포장"이라는 이름 아래 거창하게 랩 포장을 한다고 홍보한다. 마침 주문한 상품 가운데 그렇게 포장돼 온 상품이 있어 살펴보니, 책 두 권이 불쌍할 정도로 비닐에 압착돼 판지에 착 달라붙어 있다. 이 정도 상태가 유지된다면 업체 입장에서는 자랑할 만하다. 좀 더 다양한 판형과 두께의 책을 포장한 것을 봐야 확실히 안심하겠지만, 큰 문제가 예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확실히 에어캡이나 에어쿠션보다는 소요되는 비닐의 양은 줄어들었다. 에어캡이든 에이스포장의 비닐이든 실제로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 구매 패턴에 따라 예측되는 누적량을 보건대 확실히 내가 버려야 하는 비닐의 양은 줄어들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후배의 말로부터 10%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지도 않을까?
Posted by Enits
,
한 출판사 편집장이 자기 블로그에 최근 출판가 불황에 대해 자기 회사의 방침에 대해 포스트를 올렸다. "지금보다 생산량(출간 종수)을 두 배로 늘려서, 원활한 자금회전을 도모"하자는 게 회의 결과의 논지인데, 그 편집장은 그것에 대해 "회의를 통해 얻어진 것이라기보다는 회사에서 우리 부서에 내린 오더에 가깝다"라고 말한다. 책의 만듦새나 마케팅 전략을 종종 까던 출판사인데 아예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한마디로 사장에 대해 '이뭐병'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집 없는 사람이 많으니 집을 많이 지어야겠네'라는 말도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이지 않다. (대부분 실용서와 자기계발서겠지만) 팔릴 만한 책만 골라 내겠다는 말이 차라리 낫다 싶다. 책을 고르고 만들고 팔면서 영혼을 괴롭힐지라도 기약도 대가도 없이 야근과 특근을 잔뜩 쳐 바른 막장의 길로는 안 이끌 수 있으니.

사장의 독단적 결정이 아닐지라도, 편집장이 악의적으로 왜곡해 포스팅했다 해도, 공급량을 늘려 금융과 시장을 활성하겠다는 그 어떤 정책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80여 년 전에 공급이 수요를 이끈다는 세이의 법칙은 무용지물이 됐다. 무용지물을 다시 되살리려 했던 레이거노믹스도 파산했고, 그마저도 다시 되살리려 한 신자유주의는 지금의 경제 불황의 근원이 됐다. 왜 이토록 반복되는 기본적인 패턴을 자꾸 망각하는가?
Posted by Enits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등학생 3학년 아들을 둔 한 선배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위기탈출 시리즈나 살아남기 시리즈라 한다. 책 사 주는 데는 인색하지 않지만, 선배는 도대체 왜 아이가 공룡 세계나 곤충 세계에서 살아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한다. 이번에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가 나왔다는데, 앞으로 어떤 데서 살아남아야 하는 책이 나올까? 물론 아이도 그런 데서 살아남으려 읽는 게 아니라 그저 재미있으니까 사달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맘때쯤 여자아이들이 동화책을 읽는다면, 남자 아이들은 대체로 이런 책들 좋아한단다. 그런데 난 그때 어떤 책을 좋아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초등 고학년 즈음에는 추리소설에 빠져들었는데, 중학년 시절은 위인전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나 또한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 나이 때부터 씨잘데기 없는 데 참 관심이 많았던 나이기에 있었다면 분명 좋아했을 게다.
Posted by Enits
,
어제 모 1인출판사 사장과 점심을 함께할 자리가 있었다. 이제 과학/경제 교양 서적 10권 낸 신생 출판사 사장이신데, 얼마 전 모 인터넷서점의 본부장급 사람이 했다는 말을 읊어 주신다.

"인문교양 서적? 그거 사치품이죠."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단순한 텍스트 분석보다는 사장 분이 전해 주는 맥락 아래 해석하면 다음처럼 바꿔 이야기할 수 있다.

"인문교양 서적? 요즘 안 팔려요. 작년의 절반 수준밖에 안 팔려요. 불경기가 촛불 정국이다 사람들이 책을 통 안 사 봐요. 이런 마당에 자기계발서나 실용서가 아닌 인문교양 서적이요? 그런 책은 이제 돈 좀 있고 한가한 사람들이나 사서 읽는 사치품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책 못 읽어요. 이게 우리 현실이에요."

그러면서 사장은 5년 후 위기를 이야기하신다.

"5년 후가 문제예요. 5년 후면 386세대들이 모두 40대가 돼요. 지금의 인문교양 서적의 주 독자층은 30대인데, 그네들이 40대가 되면 책 못 읽어요. 먹고살기 팍팍하죠, 애들 크면 자기 책은 못 사 줘도 애들 책은 사 줘야 하죠."

실질적인 386의 끝 자락인 88학번이 이미 40대가 됐으므로 굳이 5년 후가 아니라 올해 이미 인문교양 서적 시장의 위기는 시작됐다. 불경기와 촛불 정국은 그저 하나의 변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장은 한 가지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되면 달라질 수 있어요. 이 세대들은 386 초기 세대의 자녀들이거든요. 어렸을 적부터 양질의 어린이책을 읽으며 자라난 세대예요. 촛불 시위의 초두에 10대들이 앞장선 거 다 나름 배경이 있는 거죠."

물론 장밋빛 환상일 수 있는 게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됐을 때 지금처럼 경기가 나쁘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악화된 불경기에서는 지금의 20대와 다를 바 없어질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10대와 20대는 질적으로 다른 세대이다. 입시지옥과 멸사봉공의 산업화 시대를 산 20대들의 부모인 70년대 학번과 10대들의 부모 세대인 386세대의 차이만큼이나.

과연 5년 뒤 인문교양 서적 시장은 어떻게 될까?

'책 또는 그 밖의 무언가 > 섭씨 233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패턴, 그리고 망각  (0) 2008.10.09
그때 나는 어떤 책을 좋아했지?  (2) 2008.10.02
한 인터넷서점의 이중점격?  (7) 2008.09.23
'오래된' 책  (0) 2008.09.17
추리소설 이야기  (4) 2008.09.17
Posted by Eni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