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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특별전을 했던 인터넷서점이 맞는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 추천 도서? 대략 난감이다.
그저 불황기에 책 한 권 더 팔아 먹으려고 머리 굴려 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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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H. 월쉬의 <역사철학>이 도착했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역사철학 강의를 듣기 전에 워밍업 차원에서 읽어 봐야 할 것 같은 모종의 불안감 때문에 구입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알뤼르님이 역사철학에 관한 책을 여섯 권이나 주문하시면서 불안감을 팍팍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똑같이 갈굼을 받아도 답변에서 차이가 나면 갈굼의 가중치가 높아질 듯한 불안감에 예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예습이라는 것을 하다니. --; 복습도 안 하는데 말이야. 몇 권 찾아보니 일단 월쉬의 책으로 워밍업 하는 게 낫다 싶어 주문했다.

알라딘의 설명에서는 일단 좀 옛날 책처럼 보였는데, 역시나 그렇다. 표지의 "(수정판)"이라는 문구에서부터 80년대 책에서 주로 볼 수 있던 식자 인쇄한 티가 팍 난다. 본문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글꼴. 촌스러운 듯하지만 정겨운 느낌도 난다.

판권을 찾아봤다. 수정판 7쇄 펴낸날 2006년 11월 30일. 책에 비해 인쇄는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수정판 1쇄의 펴낸날은 1989년 6월 20일. 맙소사 7년 동안 판갈이를 한 번도 안 했단 말이야? 그런데 2판도 아니고 수정판이다. 그렇다면 초판에서 오타 정도만 수정해 다시 찍었다는 말일 텐데, 초판 1쇄 펴낸날은 1979년 8월 5일이다. 거의 내 나이만큼 나이 먹은 책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뒤쪽 책날개를 보다 이번에는 껄껄 웃고 말았다. 자사의 도서목록을 적어 놨는데, 여기에는 "역사철학 W. 월쉬 김정선 6000원"이라고 적혀 있다. 참고로 이 책의 정가는 9,500원이다. 아마 "6000원"은 초판 또는 수정판 1쇄의 가격일 게다. 이런 것도 수정하지 않고 책을 내놓다니. 그것도 작년 연말에 말이다.

공부하려고 산 책인데도 서문이나 차례부터 볼 생각은 안 하고, 외적인 것 가지고 시비 중이다. 책을 만들면서 는 것은 남이 만든 책 흠잡는 법이다. 내가 만드는 책의 오타는 못 잡으면서 남의 책(특히 전 직장) 오타는 기가 막히게 찾지는 못해도 꼭 발견하면 그거 가지고 갈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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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문득 추리소설에 대해 궁금해졌다. 발단은 다른 사람의 책을 찾느라 헌책사랑에 등록된 개인책방을 뒤지던 중 황금가지판 셜록 홈즈 전집을 발견해서였다. 물론 그것은 품절 상태라 구매할 수 없었지만, 인터넷서점에서는 정가보다 30% 할인된 가격으로 팔고 있어, 헌책과 새책의 가격 차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셜록 홈즈 전집을 황금가지에서만 파는 것도 아니고,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전집이나 애거서(아가사가 익숙한데...) 크리스티 전집에도 관심이 갔다. 게다가 그것뿐이겠는가?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전집도 나와 있고, 레이몬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나 엘러리 퀸의 저작도 기억 났다.

고등학교 때는 음악과 라디오, 중학교 때는 피시통신에 꽂혔더라면 초등학생 고학년부터 중1 정도까지 내 관심사는 추리소설이었다. 이웃동네 사는 한 살 많은 육촌형과 나는 틈만 나면 추리소설을 돌려봤다. 생각해 보면 그리 많은 종수를 읽은 것 같지는 않지만, 애거서 크리스티, 모리스 르블랑과 엘러리 퀸의 주요작이나 셜록 홈즈의 단편은 어짓 읽었던 듯싶다. 다른 작가의 작품은 그다지 접하기는 힘든 시대였을 듯싶지만, 그래도 추리소설가를 소개하는 다른 책들을 통해 얼추 지형도 정도는 알고 있었던 듯싶다.

얼마 전 <필름2.0 >을 보는데 까치에서 아르센 뤼팽을 번역해 낸 성귀수의 인터뷰가 실렸었다. 역시나 검색을 해 보니 황금가지판과 까치판을 가지고 인터넷 지식검색에서는 전쟁이었다. 대체로 번역의 퀄리티와 상세한 역자 해설이 실린 까치가 우세하나, 표지 디자인이 예쁘다며 황금가지판을 추천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체로 7:3 정도? 내친 김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도 찾아보니 해문판과 황금가지판이 역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귀가해 두 출판사 중 한 곳에서 일했던 아내에게 물으니 해문판이 낫다는 평을 한다. 물론 크리스티재단에서는 황금가지판을 인정해 주고, 저작권 문제로 해문판은 80권에서 더 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전집이 될 수 없고 베스트선집일 뿐이라는 비판도 검색된다. 내침 김에 브라운 신부와 필립 말로도 검색해 봤는데 그럭저럭 주요작은 한 곳에서 다 출간된 듯싶다. 엘러리 퀸은 여러 군데에서 나와 다소 헛갈리지만...

읽지 않아도 왠지 서가를 채우고 싶은 추리소설의 주요작들. 본디 장르문학은커녕 문학도 잘 읽지 않는데 왠지 추리소설만큼은 어렸을 적 기억 때문인지 눈길이 간다. 그 참에 서가에 있는 단편선을 읽어 봤다. 딱 펴 본 스티븐 킹의 단편 <금연주식회사>. 오우... 으스스하군. 담배 끊길 잘했어. 검색해 보니 할리웃에서는 옴니버스로, 국내에서는 베스트극장에서 단막극으로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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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여전히 살아있나 봅니다'라 는 글을 읽으니 착잡하다. 도서관 확장 계획에 1억 달러를 기부한다는 뉴스는 그렇다 쳐도 clio님이 정리한 뉴욕과 서울의 공공 도서관 실태 비교 자료를 보니 한숨이 다 나온다. 이미지를 퍼 오기는 좀 뭐해 표를 따로 만들었다. clio님에 따르면 이 자료는 "한국 도서관 협회에서 발행한 2006년판 한국도서관연감과 뉴욕 공공 도서관에서 발행한 Fact Sheet 2006 (for FY 2005) 중의 일부를 비교한 것"이라는데, 이 자료에는 별개의 도서관 시스템이라는 퀸즈와 브루클린의 도서관 시스템은 누락된 자료라고 한다.


뉴욕 공공 도서관
서울 공공 도서관
도서관 수
89
54
직원 수
3206
1050
소장 권 수
5060,0000
569,1448
이용자 수
1360,0000
3067,0409
연간 이용비
2854,1862,0000
434,5442,4000

지역 내 도서관 수야 뉴욕과 서울의 규모와 인접 지역 차에 따라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일단 이용자 수는 두 배 - 물론 열람 및 대출 이용자가 아니라 일반열람실 이용자 수가 대부분이겠지만 - 가 넘는데 직원은 반토막도 안 되며, 소장 권 수와 연간 이용비는 당최 비교 자체가 민망하다. --; 거기에 뉴욕은 1억 달러를 기부하는 부자도 있다. 서울은? 답글을 보니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을 제외하곤 갈 만한 도서관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짜증나지만 수긍한다. "10만 권이래야 일반적인 서가 간격으로 학교 교실 두 개 면적이면 다 찹니다"라는데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갑자기 내 사는 동네에 소재한 마포도서관(정식 명칭은 마포평생학습관)은 소장 권 수가 얼마나 되나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아동서 포함 도서만 193,419권이다. 직원은 별정직과 기능직 포함해 41명인데(TO는 42명이며 수영장 등 주민편의시설 직원이 포함돼 있다) 이중 사서는 15명뿐. 그래도 서울 평균인 10,5397권, 19.4명에 비하면 꽤 큰 도서관이다. 하지만... 뉴욕에 비하면... 한숨 나온다. 그래도 마포구는 마포평생학습관과 그곳의 아현분관을 제외하고도 마포구립 서강도서관(어린이도서연구회 위탁 운영)이라도 있으니 1구 1도서관인 구보다는 좀 나을 듯. 구 내 소재 대학인 서강대와 홍익대 도서관이 주민에게 개방됐더라면 좀 더 좋겠지만 뭐 택도 없는 생각이라는 것 안다. 그러고 보니 월드컵공원 부지에 박정희기념관 대신 어린이도서관 만들기 운동이 있었는데, 그게 서강도서관으로 전환된 건가? 모르겠다.

아무튼 뉴욕과 서울의 사례를 비교하니 암담하다. 정말 clio님 말대로 대운하 판다고 삽질할 돈 10%만 공공도서관에 투여한다면 달라져도 많이 달라질 게다. 진보신당이든 민노당이든 이런 부분 좀 신경 써 줬으면 좋겠다. 하다못해 민주당이 관심 가져준다 하면 영혼이라도 팔지 모르겠다. --; 2MB의 한나라당은 절대 이런 데 신경 안 쓸 것이기에 영혼 팔 일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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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달랑 들고 화장실에 갔는데 휴지가 없다. 핸드폰도 두고 와 외부와 연락할 길도 요원하면, 남은 것은 어떻게든 종이를 구해 처리하든지 아니면 자연건조 하는 법뿐. 차라리 신문을 들고 갔으면 괜찮을 터이지만, 하필이면 들고 간 책은 새로 산(정확히는 증정받은) 단행본. 책 좋아하기에 앞서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은 책을 훼손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화장실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1/3쯤 읽은 책을 앞뒤를 들춰 본다. 다행히도 면지가 앞뒤 두 장씩 있다. 항상 책이라는 꼴을 보면서 불필요하다 여겼던 면지. 기껏해야 저자나 역자가 독자에게 사인해 주는 칸 정도로만 인식되는 면지. 그런 이유로 일부러 면지를 두지 않는다 말하는 출판사도 있었다. 이 사족 같던 면지도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이기 마련. 그러나 대부분의 면지는 본문 용지보다 빳빳하다. 그리고 면지 한 장 뜯어 내려다가 본문 용지까지 함께 뜯어져 책 전체의 제본 상태가 흐트러질 수도 있다.

조심스레 면지 한 장을 뜯어 낸다. 최대 4장의 면지 중 그나마 한 장이라도 건지려면 조심스레 뜯어 내야 한다. 앞서 말했듯 다른 종이까지 뜯어지면 안 되니, 천천히 조심스레 뜯는다. 한 장의 노랗고 빳빳한 면지가 몸체에서 유탈했다. 다음은 휴지 대용으로 사용하도록 종이의 빳빳함을 없애야 한다. 옛적 신문지를 구기던 시절을 회상하며 뜯어 낸 면지를 구긴다. 종이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구기되 절대 찢어져서는 안 된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은 언제나 힘든 법이다. 종이를 구길 때도 마찬가지.

조심스레 구기고 구긴 끝에 좀 전의 빳빳하기 그지없던 면지는 사라지고 신문지 정도의 경도만 남은 한 장의 휴지가 나타났다. 아, 한 장 아니 두 장을 더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최대치인 4장을 만들어야 하나? 책으로서 애초에 지닌 의미를 살려야 할까? 지금 필요한 만큼 변용을 해야 하나? 잠시 짧은 선택의 순간이 화장실을 스쳐 간다. 결론은...

책은 본디 읽히려 만들어진다. 하지만 책은 베개로도, 냄비 받침으로 쓰이며, 또한 얼마든지 무기로도 쓸 수 있다. 어찌 됐든 책은 그것의 독창적인 꼴로 세상에 나타남으로써 모종의 구실을 수행한다. 하지만 가장 비참한 용도는 이렇듯 화장실에서 뜯어짐과 구겨짐, 그리고 휴지통 속으로 사라짐으로서 자신의 생을 다하는 것이리라. 뜯겨 나간 책의 한 부분 면지에게 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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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 편집자인 아내가 일거리를 받아와 열심히 교정을 본다. 세계의 명화를 소개하는 책인데 나름 꽤나 번역 좀 하신 분이 하신 거란다. 하지만 출판사 담당자에게 화가의 이름은 다 찾아봤으니 안 찾아봐도 될 거라 했던 번역자의 말은 Murillo를 '무리요'가 아닌 '무릴로'라 한 데서 이미 뻥임이 드러났다. 에스파냐에서 모음 앞에 오는 'll'은 'ㄹㄹ' 아니라 반모음 [y]라는 건 에스파냐어를 배우지 않은 나도 아는 외래어표기법이며, '무릴로'가 아닌 '무리요'라는 화가의 이름은 이제 겨우 미술사 책을 뒤져 보기 시작한 나도 아는 이름이다.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무리요'에 관한 건 일을 막 시작할 때 발견한 사안이니 얼마나 더 많은 문제점이 발견될지 알 수 없다는 우려는 금세 또 증명됐다. Immaculate Conception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원죄 없는(무원죄) 잉태' '무염 시태' '동정녀 잉태' '성모 수태' 정도로 번역해 쓰이는 말로, 가톨릭에서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려 뜻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처녀로써 잉태했음을 일컫는 종교 용어이다. 기독교가 사회 전체에 깊숙히 뿌리 내린 서구 사회에서는 상당히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기에 미술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번역자는 conception이라는 말에 경도된 나머지 '순결 개념'이라 번역했다. Immaculate Conception은 위키피디어에도 등재된 단어이며, 필리핀에는 Immaculate Conception 대학교도 있다. 한마디로 번역자는 미술에 대한, 기독교 혹은 종교에 대한 기본적 소양이 없는 사람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해 보니 72건이 나온다. 대부분 국내 유수의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작이다. 게다가 어린이용 영어 교재도 쓰는 사람이다. 아내 말로는 영어를 번역한 문장의 질은 높다 한다. 즉 딱 전문 번역가이다. 하지만 그는 미술 책을 번역할 만한 사람은 못 된다. 앞서 말했듯 영어 이외의 외국어에 대해서는 확인하고 수정하려는 노력이 불성실하며, 미술과 종교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문외한이다. 이런 번역자의 원고를 대하는 편집자, 그것도 외주 편집자의 심정은 미치고 환장하겠다 정도 되겠다. 아내는 차라리 문장 번역의 수준은 낮아도 미술 전공자가 한 게 훨 낫겠다 한다. 어법도 말도 안 되는 문장 뜯어고치는 일 역시 미치고 환장할 일인데, 차라리 그게 낫다 하니 할 말 다했다.


아무래도 앞으로 책을 살 때에는 반드시 번역자의 이름을 확인할 듯싶다. 문장의 오역도 큰 문제이지만 인명이나 지명 같은 고유명사가 틀린 책을 사 봤다 나중에 알면 나 역시 미치고 환장할 테니까.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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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인터넷서점에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석유의 진실》 이라는 책을 사면 추첨해 주유상품권을 준다는 이벤트가 떴다. 최근 유가 폭등으로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종말을 예견하는 말이 많은지라 그러한 선상에서 나온 책인 줄로만 알고, '아니 석유시대의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왠 주유상품권?'이라며 투덜거렸다.

막상 책에 대한 소개를 보니 정반대의 내용이다. 한마디로 "늘어가는 석유 소비와 이슬람 지역의 불안으로 인해 석유 위기가 끊임없이 거론되지만, 석유 부족이나 석유 위기는 없다고 말한다."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석유 담론과는 정반대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석유가 부족하지도 않을 거며 위기도 없다는지 궁금해 책 소개를 좀 더 읽어 봤지만, 출판사에서 제공한 보도자료를 편집했을 거라 보이는 책 소개에는 "이 책에는 석유 위기가 오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를, 지금까지의 석유의 역사를 근거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게 증명하고 있다." 같은 말보다 상세하게 설명한 글은 없다. 다만 내용의 일부를 공개한 '책속에서'에서 "제1차 석듀파동에 이른 연쇄 사건은 석유 부족 때문에 시작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예측한 전쟁 관련 석유 위기 상황과는 반대로, 그날 원유 가격은 배럴당 30불에서 20불로 곤두박질 쳤다."라는 구절 정도만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오일피크(석유 생산 한계점)이 거론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기는 번번히 늦춰졌다. 그 이유는 자본은 끊임없이 석유를 다른 데서 새로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극지방이나 심해처럼 그동안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곳에서 석유를 채굴하거나, 그동안 생산성이 낮아 채굴하지 않았던 모래가 가득 섞인 유전에서 채굴하는 식으로, 자본은 부족한 만큼 석유를 계속 채굴했기에 오일피크는 점점 늦춰졌다. 하지만 그러면서 인간이 손길이 미치지 못해 지켜졌던 곳마저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도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이 책은 오일피크가 점점 늦춰지는 것을 두고 이야기를 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책의 내용이 궁금하기도 한데, 책 소개는 앞서 말했듯 현재의 위기감은 조작된 거라 말할 뿐이다. 정작 책을 사든 빌려 보는 직접 읽지 않으면 그 내용은 더 알 길이 없다. 그것을 출판사가 의도한 것인가? 별로 그래 보이진 않는다. 낚시를 하려고 하면 낚시 바늘에 미끼만 잘 끼운다 되는 게 아니다. 밑밥도 두둑이 뿌려야 하는데, 출판사는 내용을 살짝 흘리다 마는 식의 밑밥 뿌리기를 하지 않았다. 고작 하는 것이 주유상품권을 준다는 이벤트뿐. 저자의 위기는 뻥일 뿐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책의 판매량을 좌우하는 고급 비밀이던가? 아니다, 그저 밑밥일 뿐이다. 그거 하나 책 소개로 안다 해도 책 전체를 읽는 것과는 다르다. 한마디로 보도자료를 잘못 만들어 배포했다. 거기에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식의 현혹하는 문구만 달아 놨다. 이건 형광색 낚시 바늘 정도 된다 싶다. 그러고도 책이 잘 팔리기를 바라면 살짝 도둑놈 심뽀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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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로부터 사상 검증 결과 저는 아무 문제 없음으로 밝혀졌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으로 분류한 책 23권 중 한 권도 가지고 있지 않은 건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단 한 권도 안 읽었거든요. 이건 좀... ^^;
 
그런데 저 목록 작성한 국방부 관계자들은 저 책들 들춰보긴 제대로 들춰봤을까요? 알라딘의 로쟈가 작성한 마이리스트를 보면 절판되거나 품절된 책도 꽤 되거든요. 뭐 베스트셀러와 문광부 우수도서가 들어간 건 패스하겠습니다.

알라딘에서는 이런 이벤트도 진행하네요. 읽은 책이 없어 참여하지 못합니다. 에휴...

북한찬양 분야 불온서적:
<북한의 미사일 전략>, <북한의 우리식 문화>, <지상에 숟가락 하나>,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 <통일 우리 민족의 마지막 블루오션>, <벗>,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대학시절>, <핵과 한반도>

반정부.반미 분야 불온서적:
<미군 범죄와 SOFA>, <소금 꽃나무>, <꽃 속에 피가 흐른다>,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우리 역사 이야기>, <나쁜 사마리안인들>, <김남주 평전>, <21세기 철학이야기>, <대한민국사>, <우리들의 하느님>

반자본주의 분야 불온서적:
<세계화의 덫>,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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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향신문에서 이 기사를 읽고 난 후, 그리고 그 기사와 연루된 포스트와 그와 또 연루된 다른 포스트를 읽으면서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는 무한한 책임의식, 그리고 그것의 실제 구현 형태인 돌 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널까 말까 하는 꼼꼼한 검증이 무척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단순히 하나의 글을 가르고 묶은 뒤 문장을 교열하는 정도로는 책은 세상을 채울 텍스트의 집적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언제든 수정 가능한, 그리고 언제든 오류가 발생한 사실을 알려 주면서 상호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매체와 다르다. 그러기에 책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교과서를 만든다 하는 나로서는 가슴에 철필로 아로새겨야 할 교훈이다.

P.S.#1. 그나저나 문학과지성사는 대단한 위기상황에 봉착했다. 마치 가래로 막아야 할 것을 호미로 막다가 밭을 절단 낸 출판계의 농심(생쥐깡을 기억하시라)이 된 모양새이다. 어떻게 대처하려나? 기사나 나귀님의 포스트대로라면 갖은 비난이 쏟아질 텐데, 그러기엔 이 프로젝트는 애당초 덩치가 너무 큰 공룡이다.
P.S.#2. 문제의 해제를 쓴 이익성 교수는 아무래도 제자에게 원고를 쓰라 하고 검토도 안 한 채 출판사에 송고한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제자들에게 대필시키는 기존 학계의 문제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 내 억측이라고 한다.)
P.S.#3. 알라딘 나귀님이 지적했듯 '순수문학'의 장르문학에 대한 폄하하는 듯한 말 또한 두고 두고 회자될 것이다. 다음달 <판타스틱>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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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라딘에 중고샵이 개장된 후 2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현재까지 알라딘과 개별 구매자에게 책 16권을 팔았고, 8권의 책과 11장의 음반을 구입했다. (그중 한 권은 대폭 할인가에 충동적으로 사서 한번 들춰 보고 실망했는데 구매가보다 비싼 가격에 알라딘에 되팔았다.^^;) 어짜피 읽지 않은 채 서가만 차지하고 있는 책을 필요한 사람에게 팔고, 내가 원하는 책이나 음반을 비록 신품은 아니더라도 싼값에 그리고 안정성 높고 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좋게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고 거래, 특히 온라인 서점에서 이루어지는 중고 거래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문제가 많다.

중고란 물품은 싸게 살 수 있는 반면, 수량이 극히 한정돼 구매욕을 높이기 마련이다. 이제껏 중고 음반을 향뮤직이나 피그피쉬에서 중고로 구입했으나, 중고 책은 이따금 헌책방을 들러 무작위로 살 만한 책을 사거나, 필요하나 절판된 책을 온라인에서 뒤지는 정도로밖에 이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중고샵을 여니 중고 음반을 살 때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이를테면 중독이다. 희소성 때문에 관심 가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는 품목을 검색하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배송비 여부 때문에 해당 판매자의 다른 책을 들여다 보고, 살까 말까 고민하다 차일피일 미루면 누가 먼저 채 가고, 그러면 괜히 내 것을 빼앗긴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다. 그리고 조바심만 생겨 사지 않아도 될 책에 욕심이 생겨 일단 지르고 보는 반복적인 패턴이 일어난다. 덕분에 월 도서구매액의 절반 가까이 중고 책 사는 데 소비했다. 에휴...

중고로 나오는 책을 보면 대부분 베스트셀러였던 자기계발서나 실용서 그리고 문학이다. 아무래도 휙 한번 들춰 보고 던져 버리는 책이 다시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꼴이다. 모든 책을 서가에 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그러한 쉽고 읽고 쉽게 버려지는 패턴은 조금 안쓰럽다. 그리고 왜곡된 베스트셀러 위주의 시장 구조도 한눈에 보인다. 잘하면 쓸 데 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베스트셀러 진영의 재구조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조금 요원해 보인다. 또한 그동안 어린이책에는 아직 관심이 없어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가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하다 알게 된 것인데, 중고로 나오는 품목에는 어린이책의 비중이 은근히 높다는 것이다. 성인 책과 달리 쉽게 읽히고 쉽게 관심에서 멀어지는(아이는 쑥쑥 자란다) 어린이책을 무작정 보관하기보다는 내놓게 되는 게 아무래도 인지상정일 듯싶다. 어린이책 시장이 과포화된 상태에서 이런 중고 물품이 대량으로 나온다면, 이 나라 출판 시장의 한 근간인 어린이책 분야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특히나 이제껏 내가 거쳐 온 데는 대부분 어린이책으로 먹고사는데 말이다. 게다가 출판사나, 저자, 번역자가 자기가 공들여 만든 책이 중고책에서 거래되는 모습을 본다면 속이 뒤집어질 게다.

아내와 이야기하다가 조금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알라딘이라는 인터넷서점에서 중고샵을 운영한다는 것은 광화문 교보문고의 한켠에 헌책방을 들인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물론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다르니 이런 비교는 억측이라 해도, 세계 최대의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도 중고샵을 운영한다고 따지면 나로서는 더 할 말은 없다. 다만 그 모양새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기고 때로는 안쓰럽다는 것이다.

싸고 편하고 안전하게 책이나 음반을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은 분명 알라딘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하지만, 점점 중고샵을 빤질나게 드나들면서 점점 부정적 모습을 보게 된다. 당분간 구매는 줄이겠지만 언제든 중고샵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캐는 내 모습은 익숙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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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마 전 알라딘에서 중고샵 베타 테스트를 하더니 오늘 정식으로 열었나 보다. 알라딘에서 매집하는 책은 정가의 25%라는 상당히 박한 가격이지만, 이 정도는 일반 헌책방의 매입가에 비하면 나쁘진 않다. 낫배드. 재미있는 건 헌책사랑의 개인 책방처럼 개인이 판매자로 등록해 팔 수도 있는데, 이른바 오픈마켓. 이때는 가격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면 된다. 물론 40%라는 기준율은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고 물품 리스트가 펼쳐져도 일반 상품과 달리 저자 표기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보고 알거나 클릭해 물품의 세부사항을 읽어야 한다. 특히 음반 같은 경우에는 뮤지션이 누군지 한눈에 알 수 없다. 그리고 보관함에 넣거나 마이리스트로 정리할 때 판매자가 노출되거나 분류할 수 있는 항목이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아무래도 배송비나 규모 있는 구입가 설정 때문에 한 판매자로부터 복수의 책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다. 실제로 나부터 그러고 있다.

대 충 올라오는 중고 책/시디/디비디를 보니 실용서/자기계발서나 에세이류가 많다. 아무래도 한번 찍 보고 말거나 자신이 읽기보다는 남에게 선물하는 요즘 독서 풍토의 탓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책은 아무래도 소장하기보다는 한번 읽고 말거나 아니면 그저 책장에서 자리만 차지할 테니 말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읽을 사람에게 주거나 아니면 헌책으로도 파는 게 나으려나? 그것에 대해선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하지만 거꾸로 이를 이용하면 (내 기준에서) 제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까운 책을 저렴한 값에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숨책 같은 헌책방을 뒤비거나 헌책사랑의 개인 헌책방에서 이따금씩 책을 샀는데, 아마도 이제는 알라딘 중고샵을 종종 애용하게 될 듯하다. 혹시 아나 주인 잘못 만난 대박을 만나게 될지. 지금도 몇 가지가 눈에 띄지만 이달 구매 예정액을 초과해 섣불리 구매하기가 난감하다. 젠장, 중고는 언제 누가 먼저 채갈지 몰라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트랙백 : http://blog.aladdin.co.kr/trackback/usedshop/192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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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선생의 <옥중서한> 출간이 늦어지자 재발간하기로 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게시판에 누가 문의했다. 언제 나오냐고... 다음은 그에 대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답변이다.

먼저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작년 가을부터 여태 기다리고 있다오.

옥중서한 마무리작업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 원래 지난해 12월에 나온다 했다.

이달 중으로 완료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중입니다.
=> 이달 중에는 안 나온다는 이야기다. --; 오늘이 1월 31일인데 인터넷 서점에 신간으로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야간비행 측으로 부터 관련 파일을 전혀 건네받지 못한데다가 추가되는 내용이 있어서 작업이 늦어지는 점 양해부탁드리겠습니다.
=> K모씨에게 육두문자가 튀어나가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모르므로 일단 판단은 접어 둔다. 하지만 저자가 절판의 강수를 두게 만든 데는 아직도 삐쳐 있다. 덕분에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무척 애쓴다. 설마 저 두툼한 책을 가득 채운 텍스트를 일일이 손으로 옮겨 치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그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아무튼 봄이 되기 전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오는 게 어디냐 싶은 게 본 마음이다. 다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기에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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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두고 뒤를 돌아보면 책이 한가득 쌓여 있다. 얼추 오육백 권 정도? 그보다 더 될지도 모르고, 아직 ALURRE님이 친정집에 쌓여 있는 책을 아직 가져오지 않았기에 가뿐히 내 예상치를 넘을 게다. 120cm짜리 책장 세 개를 주루룩 이어붙여도, 그래서 80cm짜리 책장 두 개를 긴급히 주문했어도 아마 이 책들을 다 꽂아 넣기란 불가능할 듯싶다. 책 위에 쌓아 놓고 앞에도 꽂아 두고 하면서 아니면 박스에 넣어 구석에 쳐박아 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걸 언제다 정리해 두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분야별 크기별로 분류해 꽂아 두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 책들을 묶어 놓은 노끈이나 과연 풀 수 있을까? 기획 때문에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필요해서, 책세상 문고판과 비슷한 사이즈라 함께 묶어 놓은 비디오테이프를 찾느냐 책더미를 뒤져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창 걸렸다. 이 마당에 읽을 책을 고르기란 서울 바닥에서 이 서방 찾은 일과 뭐가 다를까 싶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었느냐 하는 질문에 나도 ALURRE님도 답하지 못한다. 이래저래 사 모으고 선물받았던 책이 쌓이다 보니 어느덧 수백 권의 더미로 남았을 뿐이다. 그래도 신기한 건 생각보다 겹치는 책, 즉 둘 다 가지고 있는 책이 그닥 많지 않다는 게다. 대략 20권 정도. 이 정도 책 규모에 이 정도 권수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서재를 결혼시키지 않다는 입장 앞에서, 공부하는 데 관련된 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당에, 복수의 책은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쉽게 자신의 책을 남에게 내놓지도 못할 듯싶다.

한편 더미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시디와 디비디... 과연 얘네들까지 정리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들을 모두 정리하다 보면 아마 올해 중에는 집들이는 꿈에도 못 꿀지 모른다. 문제라면 더 문제는 책, 시디, 디비디의 증식 속도는 전보다 더디긴 해도 절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는 것. 다음 이사 때는 100% 포장이사를 해야 할 판이다. 안 그래도 이번에 이사하면서 전체 짐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책을 4층집 두 곳에서 가지고 내려와야 하다 보니 사람을 한 명 더 써야 했다. 그리고 뭔 책이 이렇게 많아, 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그래도 한가득 쌓여 있는 책을 보면 희뭇한 웃음이 입가에 머금는다. 기획을 하고 글을 쓰고 할 때 어떻게든 도움이 될 테니, 정 할 것 없을 때 위로해 주고 벗이 되어 줄 테니. 십여 년을 떠돌고 더부살이 할 때는 책을 가지고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는데, 배따지가 불렀다 싶을 정도로 책을 쌓아 두고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짐을 풀고 분야와 크기에 맞도록 분류해 두지 않으면 종이뭉치에 불과할 테니 하루 속히 정리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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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책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중학교 사회과부도로 한글을 깨우쳤다, 라고 말하면 조금 오바이긴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책은 그림책이 아니라 사회과부도였다. 즉 지도책이다. 그만틈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지도책을 좋아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 지도책을 보고 세계 각국의 나라와 수도를 다 외워 주위로부터는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내 머리는 지도에만 특화됐는지 다른 분야에서는 통 신기를 발휘하지 못하는 반쪽짜리였다.
 
내 지도에 대한 사랑은 나이가 먹어 가도 여전했다. 나는 늘 사회과부도와 전국지도책을 좋아했다. 그냥 지도책을 보고 있으면 즐겁다. 하는 일 없을 때 지도책을 보며 뜬금없이 지하철 노선을 짜기도 하고, 이 지역은 뭐가 있을까 궁금해한다. 그러다 보니 서울의 3단계와 대전의 지하철노선 계획을 대부분 예측하기도 했다. 요새도 지도책을 보며 신분당선과 신안산선이 서울 도심을 어떻게 통과할지 따져보곤 한다.
 
그렇게 어렸을 적부터 지도를 봐 왔기에 나는 처음 가는 곳을 갔다 오면 반드시 지도로 오간 길을 복기한다. 요새야 인터넷으로 제법 정확한 지도를 제공하기에, 게다가 버스노선까지 지도에 표시되기에 어렵지 않게 나는 돌아다닌 길을 제법 정확히 복기한다. 이는 방향감각이 다소 둔함에도 내가 길치가 아닌 길을 잘 찾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실 지도와 지리는 다르다. 지도에 대한 관심은 지리의 대한 관심으로 100% 전이되지 못했다. 아마 전이가 제대로 됐으면 나는 아마 지리교육과나 지리학과로 진학했을 게다. 그렇다면 아마도 지금은 지리교사나 지리정보원 연구원 등으로 일하고 있겠지. 물론 백수로 놀거나 다른 일을 택할 확률이 더 높다. 왜냐하면 교사는 성격상 내키지 않는 직업이었으며, 지리학과는 별로 없었다.
 
부동산과 교통 문제로 전국지도책은 잘 나오나 세계지도책은 쓸 만한 게 나오지 않는다. 아마 고등학교 지리부도가 가장 좋은 세계지도책일지도 모른다. 세계지도책 하나 장만해야 하는데... 그래서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가 땡긴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지도가 아닌 과거의 지도다. 물론 과거의 지도 또한 몹시 매력적이다. <로마인이야기>를 보며 당시 지리적 현황을 지도에 복기해 보고 싶지만 쓸 만한 지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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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는 본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교 이후로는 책을 즐겨 읽지 않았다. 그러나 난 지금 책 만드는 일을 한다. 그것도 매달 한 권씩. 흔히 생각되는 일간지 혹은 주간지 기자와 달리 월간지 기자는 Reporter라는 말 대신 Editor라는 말을 쓴다. 자기가 직접 쓰기보다는 남의 글을 편집하는 일이 더 많다. 그렇게 나는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단행본을 만드는 일을 할지는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점점 더 책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닥 벗어 날 생각이 없다는 것 또한 깨닫고 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나는 책과 친해져야 할 사명을 부여받는다. 아니 받고 있다. 그리고 받았다. 아직 블로거 친구분들에 비하면 택도 없는 독서량이지만 한계독서량의 곡선은 덜 가파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독서량이 늘고 있다. 물론 독서량보다는 구매량이 더 높은 수치로 높아지는 게 문제라면 문제. 그래도 슬슬 독서량이 늘면서 이전에는 없던 책 읽는 즐거음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역설적으로 고민을 주고 있느니 바로 점점 좁아지는 방이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짐(짐이라고 해 봐야 옷가지를 제외하면 책과 시디다)을 한데 모으니 책장 하나가 필요해 주문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책장은 금세 거의 가득찼고 조만간 포화상태를 넘어 겹쳐 꽂아야 할 듯. 책장이야 하나 더 사면 된다. 문제는 책장 하나 더 들어올 때마다 좁아지는 방이다. 원래 혼자 살 생각으로 얻었던 집을 처음 생각과 달리 친구랑 동거하기로 했으니 내 짐을 둘 공간은 결국 내 방밖에는 없다. 막상 짐을 들여다 놓으니 좁아 침대를 포기해야 했는데, 책장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내 방이 좁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친구 보고 들어오지 말라곤 할 수 없는 법. 뭐, 그냥 좁으면 좁은 대로 살다가 친구가 먼저 나가거나 아니면 계약기간을 1년을 채우고 다른 데로 이사 가는 방법밖에 없다. 책장을 좀 더 내다보고 넓은 것으로 사야 할까, 아니면 덜 좁아 보이는 좁은 것으로 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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