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책'이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면서 이제까지 트위터에서 끼적였던 '이상한 책'에 대한 트윗을 모아 본다. 정리 과정에서 조금 더 맥락을 추가한 경우도 있다.


"운명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자서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작자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스스로 짓거나, 남에게 구술하여 쓰게 한 전기."

그런데 인터넷 서점의 책에 대한 정보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고인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등과 각종 인터뷰 및 구술 기록을 토대로 출생부터 서거까지를 일목요연하게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일관된 문체로 정리하는 작업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았다. 또 퇴임 후 서거 직전의 미완성 회고록 노트를 기본으로 문체를 통일하는 작업을 거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짓지도' 않고 남에게 구술하여 '적게 한' 것도 아닌데, 이것을 '자서전'이라 할 수 있을까?

/ 2010-04-19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개정2판

출간된 지 8년 동안 개정판이 두 번 나왔다. 변화하는 정치 상황에 대한 수용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러한 변화를 누적하지 않으면서 섣불리 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글을 훼손하는 행태는 책 팔아먹기의 다른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저자도 책도 존경하지만 책의 속성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듯해 안타깝다. 더 이상 개정판이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2010-06-09


"바다생물 이름 풀이사전"

다 읽고선 우연히 책날개를 펴니 "이 책은 방일영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술 출판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책날개를 뜯을까 하다가 그냥 처분해 버렸다.

/ 2010-06-17


"비평고원10"

'블룩'이든 '카페북'이든 결국은 '책'일 뿐이다. 괜한 수식어 달아 놓고 새로운 척, 잰체, 하지 말자.

/ 2010-07-01


"절대지식 세계고전"

'절대'라는 수식어를 쓰는 책 치고, 제대로 된 책이 몇 권이나 되던가. 심지어 광고 카피는 '품격'을 운운한다.

/ 2010-07-05


감정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으려는 제자를 공저자로 넣었다. 제자를 공으로 부리지 않는 '착한' 교수로 보인다. 하지만 제자의 유명세를 판매에 이용하는 '악랄(?)한 교수라는 의혹은 여전히 존재한다.

/ 2010-07-05


"삼성을 생각한다 2"

뜻 하지 않게 대박친 "삼성을 생각한다"의 후속 도서임을 표방하지만 저자는 김용철 씨가 아니라 출판사 사람들이다. 정확한 제목은 "삼성을 생각한다를 생각한다"일 것이다. 말이 이상하면 "삼성을 생각한다 이렇게 만들었다/팔았다"라고 하면 될 것을 후속 도서라 우기고 있다. 생각지 않은 대박은 돈독을 야기하는 법이다.

/ 2010-07-07


"Atlas of the World 아틀라스 오브 더 월드"

"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지도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1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본문 내용은 영문으로 구성되었으며, 다루는 모든 지명은 The Times의 입장이다."라고 하는데 그렇게 번역하기가 싫었단 말인가? 그럼 책은 왜 내? 얼마든지 외서 사서 볼 수 있는 시대인데.

/ 2010-07-20


'사용법'을 제목에 단 책들 일반

요즘 참 '사용법'이라는 문구를 제목에 넣은 책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별걸 다 사용하려 든다.

/ 2010-07-21


"축구를 망친 50인"

축 구, 정확히는 잉글랜드 축구를 망친 50인에 대한 책.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서 제공하는 설명을 보면 굳이 책을 안 사 봐도 될 법하다. 지나치게 자세하다. 보도자료 만든 편집자는 자기의 선한 의도로 책을 못 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선한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 2010-07-27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원래는 웅진씽크빅의 임프린트인 프레시안북에서 '자유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는데 절판되고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재출간되었다. 원제를 살린 제목이긴 한데 임프린트를 정리하는 수순으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책들이 많이 품절이다.

/ 2010-11-26


"한국 대표 시인 초간본 총서"

"초간본 모습 그대로 편집되어 출간됐다"라고 해놓고선 "표기는 원칙적으로 현행 맞춤법에 맞추었"다고 한다. 초간본 총서라는 이름값 하려면 초간본 그대로 내야 하는 게 순리이다.

/ 2010-11-26


"문교의 조선" 세트

정가 1032만 원. 인터넷 서점에서 정가의 5% 주는 마일리지만 무려 46만 4400포인트이다. 알라딘 MD 말로는 알라딘에서 파는 가장 비싼 책이라는데 주문 들어오면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팔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 가격이면 실제로 파는 책이라기보다는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과 몇 군데 대형 도서관에 납본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책으로 보인다. 실제로 후덜덜한 가격을 달고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만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 20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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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지 오래된, 그런데 최근에 재쇄를 찍은 책의 경우 읽다 보면 낯선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대부분 타이포의 문제인데 컴퓨터에 만들어진 서체가 아닌 예전 활판에서 찍어 나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책을 손가락 끝으로 만져 보면 활판 인쇄 특유의 요철감은 없이 밋밋하다. 따라서 활판 인쇄에 대한 향수에 왜 그런 요철감이 없냐고 출판사에 항의 전화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한다.

현재 출판단지에 있는 활판 공방을 제외하곤 국내에서 활판 인쇄하는 곳은 없다. 즉 요철감을 느끼는 인쇄는 그러한 느낌을 구현할 수 있는 인쇄기를 사용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며, 그런 인쇄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왜 그런 활판 인쇄 느낌의 타이포로 인쇄되었냐 하면, 옛날 책을 촬영해 새로 인쇄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쿽익스프레스이든 인디자인이든 컴퓨터로 책을 조판하기 전에는 전산조판이라는 입력기를 쓰던 때도 있었고, 아예 활판 인쇄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의 자료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호환이 되지 않는다. 즉 예전 책을 다시 찍으려면 직원이든 알바이든 책의 텍스트를 타이핑한 뒤 북디자이너가 새로 레이아웃을 잡은 뒤에 조판해야 한다. 즉 오래된 책 새로 만드려면 생고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옛날 책을 촬영하거나 스캔해 디지털 파일을 만들고 이것을 바탕으로 정해진 판형에 그냥 앉히는 작업을 거쳐 책을 인쇄한다. 따라서 예전의 타이포가 느껴지는데 요철감은 없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경우 오타 수정이 곤란하다. 최대한 예전 타이포의 느낌을 살리는 서체를 고르고 장평과 자간도 그에 맞게 조절해 수정자를 만들고 그것을 사진이나 필름에 덧붙여야 한다. 이거 역시 생고생이다. 따라서 생산자의 윤리 따위는 눈 찔금 감고 독자의 원성 따위는 휴지통에 구겨 넣고 그냥 배째라 인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표지 정도만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 개정판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 양심적이면 판형이라도 교체하는데, 이 경우 여백의 미를 좀 더 살리거나 사진을 약간 확대하면 된다. 뭐 양심적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외려 더 사기치는 느낌이 든다.

범우사에서 나온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011년 개정판. 판형은 조금 커졌는데 쪽수는 93년 초판과 일치한다. 여태까지 말한 것에 의해 새로 인쇄된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 관계자에게는 새로 교정 봤다고 하는데... 글쎄... 과연 그 생고생을 했을까? 뭐 품절된 채로 있는 것보단 그래도 이게 낫다. 이게 현실이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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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엠블에 Hayden의 Bass Song을 포스팅하면서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에 애비로드[각주:1] 창가에 앉아 담배 반 갑을 연거푸 피우며 잭다니엘 서너 잔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듯한 느낌이라 한 적이 있다. 이에 사람들은 여름에 들었다면 죽여 줬을 것 같다거나 맥주 한 잔 당긴다고 응수했다. 느낌이야 어쨌든 주관적인 것이니까 옳고 그름은 없지만 이 생경한 반응이 좀 묘했다.

아무튼 그 곡에 반해 버린 나머지 수록된 헤이든의 네 번째 앨범 Skyscraper National Park를 사려 했으나 좀체 구할 수 없었고, 다만 그 전작인 The Closer I Get를 구할 수 있었다. 동명의 타이틀 곡은 Bass Song이 전해 준 묵직한 맛에 비하면 딱히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소 무게감 없고 심심했다. 덕분에 손이 잘 안 간 채로 가끔 먼지나 털어 주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다 Skyscraper National Park를 드디어 구할 수 있었고, 덤으로 The Closer I Get도 복습을. 음악이라는 게 귀를 타기도 하고 시일을 타기도 하는지라 다시 들으니 꽤나 괜찮았다. Hayden의 세 번째와 네 번째 앨범을 차지하는 두 장을 듣고 나니 그의 다른 앨범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알라딘이 요상스레 Hayden을 Franz Joseph Haydn, 즉 하이든의 작품으로 등록[각주:2]해 버린지라 앨범 찾기도 참 ㅈㄹ 같다가 겨우 그들의 오래전에 품절된 두 번째와 다섯 번째 앨범을 중고로 구매할 수 있었다. 

먼저 순서대로 두 번째 앨범 Everything I Long For를 들었다. 위키피디어에도 헤이든의 장르를 어쿠스틱 락으로 분류하던데, 딱 그런 느낌. In September에서처럼 줄이 끊어져라 기타를 후려치면서 걸걸하게 외쳐대는 그의 목소리는 커트 코베인의 느낌을 지닌 닐 영을 오버랩하게 하지만 거기에는 묘하게 톰 웨이츠와 레너드 코헨의 느낌이 버무려져 있다. 대체로 멜로디가 예쁘게 뽑아져 나와 있지 않아 당장 또 듣고 싶은 마음을 일구지는 못했지만, We Don't Mind나 Tragedy 같은 어둑축축한 곡 덕택에 조만간 다시 또 들어봐야지 하는 숙제 같은 느낌만 남겨 버리는 기묘한 앨범. 다섯 번째 앨범인 Elk-Lake Serenade는 앨범 제목부터 전작을 연상케 하고 정서도 많이 비슷하다. 초반부는 초기의 격정 때로는 절망에 찬 이글거림은 휘발되어 버리고 애잔함, 먹먹함, 피곤함이 역시나 늦가을 낙엽 밟는 느낌을 전해 준다. 전형적인 방구석 음악. 첫 곡 Wide Eyes는 아예 톰 웨이츠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중반부에는 Hollywood Ending 같은 경쾌한 업템포 곡도 다수 배치되어 있지만, 뭐 발라드 가수의 앨범에 이따금 들어 있는 댄시블한 곡 정도. 무엇보다 이 앨범의 정수는 두 번째 앨범에서도 그랬다시피 짧디짧은 소품 위주로 구성된 앨범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11분 54초의 대곡 Looking Back To Me[각주:3].

hayden으로 검색하면 결과는 대부분 미드 주인공 헤이든 파네티어나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의 헤이든 크리스텐센으로 나올 만큼 인지도는 바닥 수준이다. 뭐 장재인을 비주류라고 하는 나라에서 캐나다 출신의 포크 지향의 뮤지션을 곡을 몇 사람이나 듣겠나. 첫 번째 앨범을 자주 제작인 듯하여 그렇다치더라도 최근 앨범 두 종은 주요 음반몰에 리스트업도 안 되고 다른 앨범도 중고를 찾아야 겨우 들을 수 있는 것을 보면 갑갑하다. 이런 암울한 시디 시장을 보면 차라리 디지털 음원 시장이 답인 듯하지만 달빛요정만루홈런의 비극을 보면 그래도 시디가 뮤지션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더 많겠지 싶다.



  1. 주인이 바뀌면서 맛탱이 갔다가 지금은 아예 사라져 버린 극동방송국 옆에 있던 뮤직바. 여기 창가에서 클럽 골목의 야밤 천태망상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본문으로]
  2. Hayden으로 검색하면 Charlie Haden이 나오는 건 그나마 발음이라도 같으니까 양호. [본문으로]
  3. 앨범 끝자락의 대곡답게 실은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은 채로 3-4분 흘러간다. 그리고 유튜브에도 동영상이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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