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말이 있다.

"울지 않는 것은 기타가 아니다."

잡다한 설명일랑 집우치우고 우선 이 말을 증명할 법한 열 곡을 골라 봤다.


01. Roy Buchanan - The Messiah Will Come Again

http://www.youtube.com/watch?v=deeBQZ8Aklc

'우는 기타' 아니 '울부짖는 기타' 연주의 정석. 보컬 따위는 필요 없고, 밴드는 저 뒤만치에서 서성거리라 하면서 절망, 고독, 두려움, 그리고 실낱 같은 희망을 기타로 표현한다.


02. Led Zeppelin - Since I've Been Loving You

http://www.youtube.com/watch?v=Bkjv9SscotY

로버트 플랜트의 악마 같은 목소리는 이 곡에 한해서는 양날의 검. 지미 페이지의 기타 연주를 극대화하는가 하면 거추장스럽게 보이게도 한다. 그만큼 기타 연주는 환상 그 자체.


03. Jeff Beck - 'Cause We've Ended As Lover 

http://www.youtube.com/watch?v=JDgjBl86vq8

입을 꽉 다문 듯 억지로 참지만 금세라도 입을 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극도로 정제된 슬픔.


04. Camel - Ice

http://www.youtube.com/watch?v=GlUkOopLUK4

상실, 허무, 고독. 얼어붙은 호수 위에 서서 가슴 아픈 오랜 기억을 반추하며 쓸쓸히 저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연주. 기억은 그 자체로 고통.


05. Cozy Powell - Living A LIe

http://www.youtube.com/watch?v=zvuIT2VORUk

카레이서 드러머의 솔로 앨범에서 피어난 한 떨기 우는 기타. 주인장인 드러머를 잠시 잊게 한다.


06. Pink Floyd - Shine On Your Crazy Diamond 

http://www.youtube.com/watch?v=TdAEmX0OpMk

아아,  시드는 갔지만 나는 시드를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70년대 영국에도 애이불비의 정서가 있었나 보다.


07. Jethro Tull - Elegy 

http://www.youtube.com/watch?v=1hMmMpZ64mQ

슬프게만 아프게만 우는 것만이 우는 게 아니다. 기품 있게 절도 있게 우아하게 아름답게 울 수도 있다.


08. Genesis - Firth of Fifth 

http://www.youtube.com/watch?v=SD5engyVXe0

한 소절 기타를 울리기 위해 스티브 해킷은 349초를 기다리게 했나 보다.


09. Cusco - Apurimac II 

http://www.youtube.com/watch?v=yedAlTF-Ego

피사로와 그 일당들의 칼에 쓰러진 잉카인들에 대한 진혼곡.


10. Gary Moore - Parisienne Walkaways 

http://www.youtube.com/watch?v=qyTHJ40pasM

이래도 안 울래 하는 협박성 짙은 울음.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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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토요일, 오후에 업무상 일이 있었다. 요즘 분위기상 대충 6시면 끝날 듯했지만 오잔나 공연을 가지 않았다. 아내가 몸살기가 있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오잔나는 땡기지 않았다. 그들의 앨범을 두 장 가지고 있지만 일전에 말했듯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 시디를 꺼내 들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오리지널 멤버도 한 명인가 두 명인가. 150장밖에 안 팔렸다는 읍소가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공연장으로 끝내 이끌지 못했다. 카페나 블로그에서 후기를 보지만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으로 한국 땅에서 아트락 공연은 이제 끝일지도 모른다. T.T

2.
일요일에는 아내의 몸살기가 호전되기도 했고 날도 좋아 외출했다. 첫 행선지는 경복궁 옆 대림미술관. 예스 등의 아트락 밴드의 앨범 커버를 거의 도맡아했던 로저 딘의 회고전이 있기 때문. 대림미술관을 찾는 데 조금 헤매었지만 막상 가 보니 좋았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시디에 들어 있는 커버 이미지를 보는 것보다 엘피의 커버 이미지, 그것보다 더 클 수도 있는 원화를 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아내의 말대로 '간지'를 추구하는 로저 딘의 그림은 엘피 사이즈마저도 좁아 보이게 한다. 아내가 면박했지만 도록도 구매했다. 앞으로도 엘피를 사 모으지 못할 테니 도록으로나마 로저 딘의 그림을 종종 보고 싶었다. 그런데 띄어쓰기가 눈에 걸린다. 흑. 도록 만든다고 할 때 교정 자원할 걸 그랬나. ㅎㅎ

3.
요즘 들어 포스트락이나 슈게이징 밴드에 귀가 많이 돌아가긴 하지만 아무래도 아트락이라는 장르는 "고독한 인텔리인 척"하는 내게 딱인 장르이다. 요즘은 앨범 하나 구하기 힘들지만 그런 만큼 공들여 앨범 한 장 사서 들으면 꽤 뿌듯하다. 잘 몰랐거나 안 들린다고 내버려 두었던 이들의 음악을 다시 듣고 감탄하면 그것은 두 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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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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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질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나 보다.

제프 버클리 사전[각주:1]이라니 이런 거 나는 생각도 못 했는데...

모종의 경외심에 링크를 모아 본다.

이것 이외에도 제프 버클리에 관한 자료가 꽤 많다.

Jeff Buckley A to Z (1)

Jeff Buckley A to Z (2)

Jeff Buckley A to Z (3)

Jeff Buckley A to Z (4)

공식 데뷔 이전에 Gods And Monsters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시기에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 게리 루카스와 협연한 앨범을 듣는다. 에디트 피아프의 원곡을 음산하기 짝이 없게 편곡한 Hymme A L'Amour가 주는 마력은 제프 버클리에게 선천적으로 잠내해 있던 어둠의 마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1. 정확히는 관련 용어집 정도이겠지만 사전이라고 해서 틀릴 것도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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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피트 햄, 크로노스 쿼텟과 캐멀에 빠져 허우적댔는데 이번달은 제프 버클리와 안토니 앤 더 존슨즈에 홀라당 빠져 버렸다. 없는 돈을 털어 제프 버클리의 라이브 모음집 한 장, 게리 루카스와의 듀엣(?) 한 장, 그리고 안토니~의 작년 신보를 샀는데, 이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은 업무를 방해한다. 사실 지난달에 비하면 방해될 만큼 덜 바빠서 그렇기도 하지만...

[수입] Mystery White Boy - 10점
Jeff Buckley/소니뮤직(SonyMusic)
제프 버클리야 그동안 숱하게 언급했지만 그의 라이브 앨범을 한 장 한 장 들을 때마다 그가 펼치는 마법의 굿판에 흠뻑 빠져든다. 요절한 뮤지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그마저 요절했다는 가십거리로 유명세를 탄 그이지만, 천재적인 보컬은 그를 신화 속 주인공으로 만드는 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게 한다. 그렇다, 고작 정규 앨범 한 장 낸 그는 짐 모리슨이나 커트 코베인 같은 레전드의 지위에 오를 수 없게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 신화의 인물이 되었다. 인생, 한방에 훅 가는 법. 일전에는 익숙한 멜로디의 리메이크 3종 세트(Hallelujah, Lilac Wine, Calling You)에 쏠렸는데, 이제는 그의 오리지널리티인 그래서 그의 번뜩이는 실력이 확연히 드러나는 Last Goodbye, Mojo Pin, Eternal Life에 끌린다. 신화의 주인공인 만큼 앨범 하나 가지고 몇 번이나 우려 먹는 못난 놈들 덕에 몇 장의 에디션을 더 사야겠지만, 그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현존하는 그의 모든 음악을 듣고 싶은 것은 욕망의 발현이 아니라 경외의 표현이다.

[수입] Antony and the Johnsons - The Crying Light - 10점
안토니 앤 더 존슨스 (Antony And The Johnsons) 노래/Secretly Canadian
안토니 앤 더 존슨즈는 과거 엠블 시절에는 몇 번 포스팅한 적 있는데, 리더인 안토니 헤가티의 여리고 섬세한 보컬을 앞세운 챔버 팝 밴드이다. 그도 사실 트랜스젠더인 것으로 사료되는 외모/성별과 괴리된 섬세한 목소리와 창법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그러한 불일치는 그에게서 굉장한 음악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남성의 신체에 갖힌 한 여성의 울부짖음 같은 그의 목소리는 절망의 절벽 위에서 맞바람에 맞서며 토로하는 흐느낌을 연상케 한다. 유럽 차트에서 1위를 했음에도 국내에는 제대로 수입조차 안 되는 <Crying Light>는 이전 작 같은 킬러 트랙은 눈에 띄지 않지만, 슬픔이 차곡차곡 쌓여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 짐더미 같다. 하늘을 어깨에 맨 아틀라스처럼 그 짐을 짊어진 채 세상에 노래하는 안토니 헤가티의 목소리.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운명에 맞서야 했던 제프 버클리의 울부짖음과 생면 다르지만 그것의 임팩트는 하나 다를 게 없다.

이에 비하면 덤으로 산 스타세일러의 <Love Is Here>는 무슨 자장가 같다. 하지만 나는 제임스 월시의 보컬을 아주 좋아한다. 다만 구입 시기가 안 좋았을 뿐. 제프 버클리와 안토니 헤가티와 대적하기에는 제임스 월시는 너무 불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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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동안 한국을 다녀간 New Trolls, P.F.M., Latte E Miele에 비하면 Osanna는 사실 내게도 그다지 인기 없는 밴드이다. 그들의 앨범을 두 장 가지고 있긴 하지만, L'uomo와 Conzone(There Will Be Time)을 제외하면 내 귀에 꽂힌 곡은 없다. 뭐 3집 이후는 제대로 들어본 적 없긴 하지만.

들리는 말에 따르면 내한공연을 2주 앞두고 좌석이 겨우 150장 팔렸단다. 700석 규모의 마포아트센트에서 말이다. 그 덕분에 공연을 기획한 이들은 똥줄이 타는 모양. 사실 오잔나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그동안 공연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내가 다 걱정이 든다. 뉴트롤즈 같은 이들이야 아트락 매니아가 아니더라고 어느 정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다지만, 오잔나 같은 그럭저럭 인지도가 있는 뮤지션의 공연이 대참패 하면 앞으로 아트락 공연은 끝이다. 뉴트롤즈가 다시 온다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이쯤 되니 관심 없었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도 오잔나 공연에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하지만 일정이야 그렇다 쳐도 티켓 값이 만만치 않다. 평소 같으면 그 돈이면 시디 대여섯 장을 사고 말지, 라고 할 텐데 이제는 섣불리 그리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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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래된 여인숙이라는 블로그에 Camel의 전 곡[각주:1]이 올라오길래 링크를 모아 보았다. 그런데 명색이 캐멀의 팬이라고 하면서 남의 블로그를 링크만 옮겨 붙이는 것이 다소 찜찜해 앨범에 대해 (리뷰는 능력이 안 되기에) 짤막한 멘트라도 달아놓을까 싶다. 그래도 정주행 한번 하면서 멘트를 다니 이것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이미지나 볼드 처리된 앨범 타이틀을 클릭하면 전 곡을 들을 수 있는 포스트가 뜬다.



 Camel(1973)
캐멀의 데뷔 앨범으로, 눈물 흘리며 질주하는 낙타 열차(?)를 담은 커버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내 취향상 처음 들을 때에는 캐멀 특유의 서정성이 담긴 Mystic Queen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큰 인상을 남기는 앨범은 아니었다. 하지만 후일 발매된 라이브 앨범 <Never Let Go>를 듣고 난 뒤에는 Never Let Go 같은 그루브감 넘치는 곡도 서서히 관심을 끌게 되었지만 거장의 데뷔 작 정도로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추천 곡: Mystic Queen, Never Let Go



  Mirage(1974)
캐멀 골수 팬들에게 캐멀 하면 대개 이 앨범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나 또한 이 앨범의 이미지를 넷상에서 나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종종 쓰고 있다. 앨범 전체적으로 애잔한 느낌의 서정적인 연주와 함께 그루브 감 넘치는 박력 있는 연주가 종횡하는데,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이 많이 보인다. 이 앨범의 백미이자 절정인 3부작 조곡 Lady Fantasy 역시 갈라드리엘을 노래한다고 한다.

추천 곡: Supertwister, Lady Fantasy



 Music Inspired By The Snow Goose(1975)
폴 갤리코의 동화 <Snow Goose>를 음악으로 표현한 토털 컨셉 앨범으로, 동화에 대한 사운드 트랙이라 할 수 있다. 캐멀을 동명의 담배 회사 소속 밴드로 오해한 폴 갤리코가 저작권 사용 승인을 해 주지 않아 제목을 저렇게 지어야 했고, 가사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됭케르크 철수를 역사적 배경으로 한 외톨이와 소녀의 우정 그리고 그 둘을 이어 준 흰기러기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동화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보컬 없이 연주만으로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추천 곡: Rhayader, Snow Goose



  Moonmadness(1976)
캐멀 서정 미학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앨범이지만, 결성 시부터 이어 온 앤드류 레이티머(V, G, Flute), 피터 바덴즈(K), 앤디 워드(D), 덕 퍼거슨(B)으로 구성된 탄탄한 쿼텟은 이 앨범으로 종결을 맞이한다. 그만큼 이 앨범은 밴드의 최절정이자 화룡점정이 아닐까 한다. Song Within Song, Spirit Of The Water, Air Born, Lunar Sea로 이어지는 곡들은 커버 이미지만큼 아름다우며, 다른 곡에서도 마찬가지로 짠한 멜로디를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모든 곡에 애정이 가는 유일한 앨범이다.

추천 곡:  Song Within Song, Spirit Of The Water, Air Born, Lunar Sea
       


 Rain Dances(1977년)
<Moonmadness>를 끝으로 탈퇴한 베이시스트 덕 퍼거슨 대신에 캐러번 출신의 리처드 싱클레어와 킹크림슨 출신의 멜 콜린스(Sax.)가 가세하면서 사운드는 좀 더 재지해졌다. 숫제 One Of These Days I'll Get An Early Night는 재즈 밴드의 곡이라 해도 속을 정도. 하지만 Tell Me 같은 곡에서는 여전히 캐멀 특유의 서정성을 내비친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캐멀은 분열과 변화의 시기인 중기에 접어든다.

추천 곡: Tell Me, Elke, Raindance



 Breathless(1978)
개인적으로 <Single Factor>와 함께 캐멀의 앨범 중에서 가장 정이 안 가는 작품으로 정규 앨범 중에서는 품절로 구입이 힘들었던 <A Nod And A Wink>를 제외하곤 가장 나중에 구입했다. Echoes에서는 재즈 어프로치가 강한 초기 사운드를 느낄 수 있으나, 동명 타이틀 곡을 비롯해 대체로 앨범 전체적인 구성, 특히 보컬 파트는 이전에 비해 상당히 파퓰러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변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밴드의 양대 기둥 중 하나인 피터 바덴즈가 녹음 도중 탈퇴하고 캐러번 출신의 데이빗 싱클레어가 그 자리를 메우면서 이후 캐러멜(캐멀+캐러반)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마지막 수록 곡인 Rainbow's End는 그나마 남은 서정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으나 파퓰러하기는 매한가지다.

추천 곡: Echoes, Rainbow's End



I Can See Your House From Here(1979)
초입부터 연이어 터지는 파퓰러한 두 곡과 베스트 앨범에서 들은 뉴웨이브 스타일의 Remote Romance 덕분에, 아마 라이브로 먼저 들은 Ice가 아니었으면 이 앨범 역시 어정쩡한 팝 앨범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진지하면서도 실험적인 프로그레시브 열풍이 잦아들고 반대급부로 펑크와 디스코가 대세이던 70년대 후반에 밴드의 생존 방책은 파퓰러한 사운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재지한 사운드 변화의 주동자인 싱클레어 들이 퇴장하면서 캐멀은 다시금 짠한 멜로디를 바탕으로 하는 서정성을 여전히 앨범 속에 녹여 내었다. 다만 그것이 앨범의 기조라 하기엔 부족해 보이지만, 다시 돌아온 대곡 Who We Are와 Ice는 현존하는 캐멀의 기초적인 모델로 남는 듯하다.
   
추천 곡: Eye Of The Storm, Who We Are, Hym To Her, Ice



 Nude(1981)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 섬에 고립되었던 일본군 패잔병[각주:2]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두 번째 토털 컨셉 앨범이다. 밴드의 기조가 점차 파퓰러해지는 가운데 토털 컨셉 앨범을 추구했다는 점은 캐멀이 적어도 평범하게 팝 음악을 하지 않는 아티스트적 면모를 유지하려 노력했다고 보인다. 잇따른 멤버 교체와 다양한 세션 참여 등으로 약간은 산만한 느낌이 들지만, 실화를 소재로 한 토털 컨셉 앨범인 만큼 인물과 상황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극적이면서도 짜임새 있는 연주로 펼쳐지는 수작이다. 개인적으로 캐멀의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인 Drafted가 수록되었다.

추천 곡: Drafted, Landscape, Lies
   


The Single Factor(1982)
마지막 남은 원년 멤버 앤디 워드마저 약물 중독과 손목 부상으로 밴드를 떠나게 된다. 앤드류 레이티머는 그 죽일 놈의 계약 때문에 왕년 멤버 피터 바덴스와 멜 콜린스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세션을 모아 앨범을 내놓는다. 홀로 남은 레이티머를 상징하는 앨범 타이틀과 커버 이미지는 더 이상 레이티머가 밴드의 리더가 아닌 밴드 그 자체임을 의미하는 듯하다. 밴드의 급작스런 변화기에 나온 작품이다 보니, 캐멀 특유의 서정적 분위기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Heores 같은 곡에서는 갑자기 앨런 파슨즈 프로젝트가 연상되며, You Are the One은 이게 캐멀 맞아 하는 소리가 나오는 등 앨범은 전체적으로 다소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덕분에 <Breathless>와 함께 꽤 늦게 사게 되는 앨범이 되었는데, 그나마 마지막을 장식하는 접속곡 A Heart Desire/End Peace가 그래도 캐멀임을 증명해 준다.

추천 곡: Selva, A Heart Desire, End Peace



 Stationary Traveller(1984)
개인적으로 엠블 시절 블로그 이름을 가져다 쓰기도 했으며, 히트 곡인 Long Goodbye 덕에 우리나라에 캐멀을 알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앨범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Ice와 쌍벽을 이루며 캐멀의 서정성을 극대화하는 타이틀 곡 Stationary Traveller로 기억되는 앨범이다. 분단된 도시 베를린을 소재로 한 토털 컨셉 앨범이지만, 전 매니저와의 법정 공방 때문인지 이전의 토털 컨셉 앨범 두 종에 비하면 구성력이 떨어져 '토털'의 느낌은 그리 크지 않다. 또한 커버 이미지에서도 보이듯 앨범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 지배하지만 그 톤은 대체로 고르지 못한 편이라 앨범만 놓고 보면 <Mirage>, <Moonmadness>, <Nude>에 미치지 못하는 다소 아쉬운 앨범이다.

추천 곡: Pressure Points, Vopos, Stationary Traveller


이후 법정 공방과 미국 이주, 레코드 사의 냉대로 인한 7년간의 침묵 끝에 앤드류 레이티머가 독자적인 레이블인 Camel Production에서 내놓은 후기 앨범들, <Dust And Dream>(1991), <Harbour of Tears>(1996), <Rajaz>(1999), <A Nod and a Wink>(2002)[각주:3]는 노발리스 님이 포스팅을 하지 않은 관계로 내가 직접 음원을 올려 놓거나 음원 없이 설명해야 할 듯. 그리고 라이브 앨범인 <God Of Light '73-'75>(2000), <A Live Record>(1978), <Never Leg Go>(1993), <Coming Of Age>(1998)[각주:4] 정도는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아무래도 글을 쪼개야 할 듯하다. 그리고 이 참에 컴필레이션을 만들고픈 욕망이 생겼다.

  1. 현재 스튜디오 앨범 10장만 전 곡을 들을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후 작품과 라이브 앨범을 올릴 계획이 없는 듯하다. [본문으로]
  2. 아무래도 오노다 히로인 듯한데, 이런 인물이 생각보다 많다. 이 앨범의 스토리는 오노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수전 후버가 창작한 것인지, 아니면 '누데'라고 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는지 모르겠다. 가장 유명한 괌에서 발견된 요코이 쇼이치는 일단 아니다. [본문으로]
  3. 앤드류 레이티머의 건강이 호전되어 공연도 재개했다고 하지만, 나이와 건강 상태로 보건대 이 앨범은 캐멀의 마지막 앨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본문으로]
  4. On The Road 시리즈는 Official이라고 해도 결국 Bootleg이라 소개하기가 거시기하며, [Pressure Point]와 [Paris Collection]은 소유하지도 들어보지도 못해 뭐라 할 말이 없다. [본문으로]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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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Badfinger의 Without you를 포스팅한 적 있다. 일단 크게 울고 보면 장땡이라는 듯 속절없이 엉엉 우는 듯한 머라이어 캐리의 커버와 달리 터져 나올 듯한 눈물을 꾸꾹 참으며 목울대만 겨우 적시게 하는 배드핑거스의 오리지널에 아무래도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설사 아랜비빠라서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공연 중에 "배드핑거는 가라! 우린 비틀즈를 원한다"라는 팬들의 야유에 충격받고서 자살을 택한 피트 햄의 가려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무래도 이쪽에 정이 가기 마련.

피트 햄은 생전에 솔로 앨범을 내지 못하고 사후에 데모를 편집한 유작만 2종 내놓았는데, 그중 <Golders Green>에 그의 이름을 팝 음악사에 남긴 걸작 Without You의 다른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흔히 알려진 Without You는 1970년에 나온 <No Dice>에 수록된 곡인데, 이 곡은 Without You의 백미인 후렴구 부분이 원곡(?)과 아예 다르다. 그 덕에 아예 분위기도 통으로 다르다. 배드핑거 버전의 정서가 슬픔 또는 괴로움이라면, 피트 햄 솔로 버전은 안타까움 또는 아련함이다. 원곡(?)의 절절함은 느낄 수 없지만 이것 역시 매력이 있다. 실제로 연인과 이별하면 징징 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저 홀로 쓸쓸해하는 척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이 곡은 후자의 정서를 반영한 게 아닐까?

앨범에 실린 곡들이 대부분 피트 햄이 혼자 작곡하고 녹음하던 데모가 출전인지라 아무래도 이 곡이 원 곡이고, 배드핑거의 일원으로써 녹음하는 과정에서 좀 더 절절하게 가사를 바꾸고 편곡한 게 아닐까 싶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톰 이번스가 공동 작곡자인 것으로 보아선 후렴구는 톰 이번스의 작품이 아닐까 추측만 해 본다.



Golders Green(1999)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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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돈을 쳐 발랐음에도 징하게 망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천년을 흐르는 사랑(The Fountain)"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클린트 맨셀도 크로노스 쿼텟도 몰랐을 것이고, 모과이도 그저 Take Me Somewhere Nice를 연주한 이들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물론 휴 잭맨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울버린 그 자체이었을 것이다.

천 년의 시간 동안 멕시코 마야 유적지, 미국의 어딘가, 그리고 시발라 성운을 오가는 이 복잡하고 난해한 영화에 집중하게 한 것은, 휴 잭맨과 레이철 와이즈의 연기도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연출도 아닌, 클린트 맨셀이 크로노스 쿼텟과 모과이를 동원해 만든 사운드트랙이었다. 사실 컴퓨터그래픽을 쓰지 않고 아날로그 작업으로 일일이 찍어 냈다고 하는 영상도 죽였지만, 그리고 두 배우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이 일품이었지만, 결코 음악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소위 포스트락을 한다는 밴드 모과이는 일찍이 접해 보기는 한 밴드였지만, 크로노스 쿼텟은 처음 듣는 밴드(?)였다. 찾아보니 클래식쪽에서 주로 현대 음악이나 다른 장르의 음악을 재해석해 연주하는 현악 4중주단. 묵직하면서도 음산하고 다소 신경질적인 그들의 연주는 바이얼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모과이나 다를 바 없다. 특히 영화의 엔딩신에 삽입된 곡인 Death Is The Road To Awe에서 모과이와 함께 보여 준, 막다른 절벽을 향해 무한질주하는 알렉스의 드라이빙 같은 파괴적이면서 애잔한 연주는 압권이었다.



하나에 꽂히면 그 대상에 대해 물자체 탐구를 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법. 내한공연도 했지만 크로노스 쿼텟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자료가 없었다. 음반도 별로. 게다가 영화 음악에서 다소 난해한 접근법을 보여 준 이들인지라 섣불리 음반을 사기도 모호.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전작 <Requiem For A Dream>에서 역시 클린트 맨셀의 지휘로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일찌감치 음반은 품절되어 있었고, 결성 10주년 기념 10장짜리 박스세트를 알라딘에서 초염가에 팔았음에도 그 사실을 늦게 알아 품절 문구만 본 덕에 한동안 절망한 채로 관심을 끊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음반을 구해서 들으니 역시 아싸라비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운드트랙이 어느 정도 기승전결을 갖춘 곡보다는 주로 짧은 스코어를 묶어서 편성한데다, 클린트 맨셀의 일렉트로닉 음악이나 실험적인 음악이 곳곳에 자리 잡은지라, 크로노스 쿼텟은 <천년을 흐르는 사랑>만큼의 드라마틱한 연주는 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곡에서는 테마를 변주해 특유의 음산하면서도 신경질적인 연주를 제대로 들려준다. 사실 영화는 판타지인 <천년을 흐르는 사랑>보다 더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 군상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 준다는데, 종종 반복되는 크로노스 쿼텟의 비오는 날 손톱으로 긁는 듯한 스트링 연주만으로도 영화를 다 보여 주는 느낌이다. '너무' 제대로 보여 줘 외려 영화를 절대 보고 싶지 않게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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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프 벡 내한공연이 3월 20일로 잡혔다. 마음 같아서는 아내와 손 붙잡고 보고프지만 막 세살된 아이가 걸린다. 처가 등에 맡기고 보러 갈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그게 할 짓인가 싶기도 하다.

2.
가오 선생은 30년 동안의 로망이 실현된다며 이를 계기로 모든 이를 용서하겠단다. 그러고 보니 15년 로망이었던 PFM과 뉴트롤스의 내한공연에도 나는 아무도 용서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소인배?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만약 핑크플로이드가 온다면 이명박과 전두환도 용서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전두환은 안 된다며 펄쩍 뛰지만, 릭 라이트의 타계로 핑크플로이드의 내한공연은 이제 없다. ㅋㅋ

3.
아내는 알이엠과 레드 제플린이 온다면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간다는데 레드 제플린이야 현존하지 않는, 재현이 불가능한 밴드라 치지지만 알이엠은 존속만 된다면 언젠가 한번은 올 듯싶다. 그 말에 나도 보고픈 밴드를 꼽아 보니 대번에 나오는 것은 캐멀. 듣자 하니 앤드류 레이티머의 건강이 호전되어 공연을 준비한다는데, 과연 한국에 올까? 만약 온다면 회사를 그만두고서라도 콜! 모과이나 틴더스틱스, 방코 같은 이들도 땡기는데 과연 올까나?

4.
또 누가 오면 좋을까? 그리고 설사 성사된다면 나는 누구를 용서할 수 있을까? 말은 그랬지만 전두환만큼은 무조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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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에서 투발루 대표가 우리 죽는다고 외치는 목소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삼한사온이라는 말은 고대적 사어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일주일 내내 살을 깎아 내도록 지속되던 한파가 좀 사그라지자,

김두수의 서늘함, 닉 드레이크의 공허함, 제프 버클리의 불안감이
나를 감싼다.

이런 날씨 또 누가 생각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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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톤과 달리 칙칙하고 코믹한 뮤직비디오


그나마 훨 나은 공연 실황

칙칙하고 쌀쌀한 늦가을-초겨울에 잘 어울리는 곡, Procol Harum 하면 떠오르는 명곡 A Whiter Shade Of Pale. 킹크림슨과 함께 전문 작사가를 밴드에 두었는데, 둘 다 좀처럼 알 수 없는 관용 표현을 엄청나게 사용해 가사를 쓰는 바람에 난해하기 그지없다.

가사는 난해할지라도 바흐의 멜로디를 차용한 장중한 오르간 연주 하나만으로도 불멸의 히트곡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이 곡을 무수히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했는데, 그중 데이빗 랜츠가 리메이크한 곡에서는 원곡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던 매튜 피셔가 오르간을 연주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눈이 내리는 계절에는 데이빗 버전의 연주가 좀 더 어울린다 싶다.


데이빗 랜츠의 뮤직 비디오

며칠 동안 지속된 날씨 때문에 문득 생각나 아쉬운 대로 인터넷을 검색해 들으려 하니 뜬금없는 뉴스가 검색된다. 오르간 연주자 매튜 피셔가 Procol Harum의 리더 게리 브루커와 작사가 키스 레이드뿐만 아니라 자기에게도 저작권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 애초에 피셔는 바흐의 칸타타 '눈뜨라, 부르는 소리가 있어관현악 모음곡 3번 D장조 2악장, 일명 'G선상의 아리아'의 멜로디를 차용해 게리 브루커와 키스 레이드가 이미 만들어 놓은 A Whiter Shade Of Pale에 오르간 전주를 덧붙여 새로 녹음했기에 자신에게도 저작권이 있다고 주장했단다. 사실 이 곡은 그 오르간 전주 하나만으로 이미 팝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곡인지라 피셔의 공로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영국 법원은 피셔의 공로를 일부 인정하는 것으로 판결했다.


매튜 피셔도 함께한 실황인 Live at the Union Cha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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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의 스튜디오 앨범은 다 가지고 있는데, 이중에서 굳이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The Dark Side Of The Moon>도 <The Wall>도 아닌, 아마도 가장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1994년작 <The Division Bell>을 고르지 않을까 싶다. 이 앨범은 실제로 가장 처음 들은, 그리고 가장 처음 산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이다. 물론 라디오에서 이전에도 핑크 플로이드의 대표 곡들을 몇 번 듣기는 했지만, 앨범을 온전히 통으로 들은 것은 <The Division Bell>이 최초였다. 무척 오랜만에 핑크 플로이드의 정규 앨범이 나온지라 앨범 발매 당시 팝 음악을 다루는 라디오 방송이나 잡지에서는 <The Division Bell>에 대해 전성기 시절의 핑크 플로이드를 재현했다느니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시일이 지나니 로저 워터스의 부재를 언급하거나 기대만 못하다, 전성기는 지난 지 오래됐다, 라는 혹평도 쏟아져 나왔지만, 모아이 석상을 차용한 앨범 커버 이미지와 Cluster One라는 첫 곡만으로도 나는 핑크 플로이드에 흠뻑 빠져들었고, 그 후 없는 돈을 털어 가며 십수 년 동안 그들의 앨범을 한 장 한 장 사 모았다.

연주곡인 첫 곡부터 앨범과 뮤지션에 빠져들게 했던 <The Division Bell>에서 내가 좋아하는 곡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곡이었다. 방송에서는 Take It Back이나 Keep Talking이 주로 흘러나왔지만 뉴트롤스의 Adagio나 킹크림슨의 In The Court Of Crimson King처럼 단번에 나를 사로잡은 곡은 묘한 울림을 주는 종소리로 시작하는, 그리고 그것으로 끝을 맺는 High Hopes였다. 물론 우리네 종과 달리 중후한 멋도 없고, 대성당의 종처럼 묵직한 맛도 없는 고작 망치(?)로 때려 소리 내는 종소리였지만 빈 공간을 메우는 그 소리가 피아노 소리와 엮어질 때 들었던 그 느낌만으로 이미 게임은 끝났었다. 그다음 이어 나오는 핑크 플로이드의 연주와 특히 데이빗 길모어의 목소리는 실상 그 종소리를 거들 뿐. 비록 "거들 뿐'이라고 했지만 점점 고조되어 가는, 오케스트라를 가미한 핑크 플로이드의 연주는 듣는 내내 끝을 알 수 없는 스릴러 영화처럼 등골을 오싹하게 하며 내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했다. 그러다 끝나갈 때 다시 흘러나오는 종소리. 오호라 완벽한 수미쌍관이다.

유튜브에서 본, 2003년도에 발매된 <Meltdown Concert> DVD에 실린 데이빗 길모어의 연주. 샘 브라운을 위시한 무려 아홉 명의 코러스를 쓰긴 했지만, 오랜 친구들(릭 라이트, 밥 겔도프, 로버트 와이어트, 마이클 케이먼, 딕 페리)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주축된 9명의 세션과 벌인 실내악스러운 공연은 빈약(?)한 규모 탓에 허전한 듯하게 들리는 감도 있지만,  대체로 데이빗의 목소리와 첼로 연주는 그 허전한 규모가 주는 빈약함을 사사삭삭 메워 버린다. 아니 이 곡에는 당최 빈틈이라고는 없게 설계된 곡일지도 모른다. 설사 순간순간 조그마한 빈틈이라도 생길라 치면 그의 밴드가 그것마저 메워 버린다. 덕분에 중반부터 나오는 코러스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정도. 그네들이 없었어도 데이빗과 그의 친구들은 완벽한 무실점 경기를 펼쳤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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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파스텔 뮤직에서 나온 <Siamese Flower>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산 적 있다. 대체로 아내가 싫어하는 음악들로 채워진 이 앨범은 파스텔 뮤직과 로봇이라는 영국의 인디 레이블에서 활동하는 여덟 밴드의 음악을 두 곡씩 모은 것인데, 보너스 시디까지 들어 있는 이 앨범은 현재 품절 중이다. (씨익.) 젠장, 혹시나 해서 다시 검색해 보니 재출시되었나 보다.

간드러지는 미스티 블루는 나 역시 별로이나, 국내 인디 뮤지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티어라이너나 해파리소년(Jelly Boy)가 함께 수록되었는 데, 로봇 출신의 뮤지션 중에서는 Tuco라고 하는 듣보잡 밴드에 귀를 뺐기었다. 뭔가 프로그레시브한 느낌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얼터네이티브한 면모도 좀 있고, 브릿스런 피시앤칩스 냄새도 살포시 나는데, 앨범에 포함된 부클릿을 보니 역시나 영국 밴드이다.

이 앨범에서는 그들의 앨범 <The Shrinking Process>(2005)에서 Meckanikal Dialling과 Can't Tell (the Cood From The Bed)이 실렸는데, 특히 앞의 곡이 무척 마음에 든다. 퉁탕 거리는 드럼 비트나 일렉트릭 기타의 디스토션 음의 배합도 좋고, 뭔가 왕 삐친 듯한 보컬의 목소리도 마음에 든다. 뒷 곡의 나른한 보컬도 왠지 정감이 간다.

투코라 하면 세르지오 레오네의 걸작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 나오는 '추한 놈' 투코와 남미에 사는 설치류의 한 종인 투코-투코, 신촌에 있는 케밥집 이외에는 별 다른 검색 결과가 없을 정도로 한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밴드이다. 향뮤직에도 앨범 입고 사실이 없는데, 이 앨범으로 인해 땡 잡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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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음악이 죽은 날' 하면 돈 매클린의 American Pie에 나오듯 버디 할리가 비행기 사고사로 죽은 1959년 2월 3일을 말하기도 하고, 존 레논이 팬이 쏜 총에 맞아 죽은 1980년 12월 8일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음악이 죽은 날'이라 하면 오늘 11월 1일이 아닐까 싶다. 이유는 1987년 11월 1일에 유재하가 교통사고로 죽은 데 이어 정확히 3년 후 그의 좋은 술친구였던 김현식이 간경화로 죽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비범했던 두 뮤지션이, 그것도 함께 밴드 하며 곧잘 술을 퍼 마시던 둘이 3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같은 날에 세상을 뜬 것은 우연 아닌 우연일 것이다.

이쯤에서 뭘 틀까? 비록 유재하가 앨범 녹음에는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채 탈퇴하긴 했지만 이 둘이 밴드를 함께했던 1986년에 나온 김현식의 3집에 실린 '가리워진 길'이 어떨지. 마침 유재하가 딱 자기 스타일대로 만들고, 김현식과 유재하가 따로 자신의 앨범에 실은 곡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이유로 유재하의 곡보다는 김현식에 곡에 좀 더 끌린다.



사실 음악을 듣자마자 프로그레시브에 빠진 인간인지라 80년대 가요에 관심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김현식도 유재하도 그렇게 좋아해 본 적 없다. 개나 소나 다 아는 히트곡 한두 곡 빼고는 뭘 들어봤어야지. 얼마 전 구입한 박준흠의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을>을 읽다가 이 기묘한 이야기에 관심이 갔는데 마침 11월 1일이 되었다. 더분에 김현식과 유재하의 음악을 찾아 듣는데 진작에 듣지 못했던 게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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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 짓을 하고 살아야 하나 울컥할 때
나를 진정시키는 곡
Egberto Gismonti의 And Zero.
이름을 보아하니 이태리 사람.
어느 블로그에서는 브라질이 고향이라고 하는데,
팻 메스니의 'Letter From Home'을 연상케 하는 첫 소절.
왠지 벨기에나 알사스 아니면 슬로베니아의 느낌이 나는 건반의 투명함.
탁 트인 호수 좀 있고, 우거진 숲도 좀 있고, 너른 초원도 있고... 그런...
식상하기 짝이 없는 목가적이니, 전원적이니 하는 수식어도 뭐 어색하지 않다.



젠장 다운 받은 wma 파일을 올린답시고 mp3로 바꾸었더니 지글지글 사글사글.
맛이 팍팍 떨어진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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