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전 직장에 들렀다가 두 권의 책을 선물받았다. 그중 한 권은 선물이라기보다는 신간소개에 넣어 달라는 청탁 아닌 청탁이지만, 다른 한 권은 어린이책/그림책이다 보니 말 그대로 선물이다.
 
처음에는 그냥 크레파스(색연필인가)를 사용한 그림들로 채워졌구나 싶었는데, 그림체라든가 구성방식이든가 호기심이 끌렸다. 그리고 제목에 들어가는 '분홍돌고래'. 아마존강에 서식한다는, 길을 일고 강으로 흘러들어왔다가 민물에 사는 돌고래. 왈터 살레스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는 분홍돌고래에 관한 전설이 언급된다. 분홍돌고래의 유혹에 넘어가 '교미'한 남자는 빠지지 않아 결국 죽고만다는... ^^;
 
아, 책 소개가 늦었다. 김한민이 그리고 쓴 <웅고와 분홍돌고래>라는 그림책이다. 웅고라는 이름의 노랑머리 흑인아이, 개로 추측되는 하마라는 이름의 동물, 그리고 녹색 악어가 주인공이다. 이 셋은 숲속에서 분홍돌고래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분홍돌고래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림체가 어디서 낯이 익다 했더니 재작년에 신간소갯글을 썼던 <유리피데스에게>를 그리고 쓴 김한민의 작품이었다. 예술 본연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세태에 한껏 우울해진 가면쟁이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낸 이 책은 그림체라든지 주제라든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그가 새로 책을 낸 것이다. 그것도 앞서 말한 '친정'에서...
 
이번 책에서도 말하는 내용은 비슷하다. 부질없는 기다림, 근거 없는 희망, 소외된 인간에 대한 씁쓸한 주제의식은 귀여운 인물들의 모습과 달리 몹시 생경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서 보시라. ^^; 신간소개를 찾아보니 4-7세용이라고 한 매체도 있는데... 글쎄... 내가 보기엔 성인용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읽어 주면 아이들은 딱 그 나이 수준으로 이해할 테고, 어른은 어른의 수준으로 읽을... 그런 책이다.
Posted by Enits
,

중국의 소설가 류진운의 쓴 중편 <一地鷄毛:닭털 같은 나날><官人:관리들 만세><溫故一九四二:1942년을 생각하다>을 모은 책이다.
류진운은 중국의 관료제와 소시민의 일상을 예리한 블랙유머로 풀곤 한다. 그는 중국 [평론전선]에서 '20세기 20대 작가'로, [도서일보]에서 <一地鷄毛>가 '20세기 100대 세계 명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중국에선 유명한 작가이다.
<一地鷄毛:닭털 같은 나날>은 틀에 박힌 관료제 속에서 예전엔 지성인이라고 불렸던 소시민이 비루한 일상 속에서 얼마나 쪼잔해질 수 있는 지를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한탄스럽게 풀어간다.

닭털, 닭털로 만든 파카도 있지만, 아무래도 오리털보다는 못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비루함을 닭털은 우리에게 던져 준다. 그런데 '닭털 같은 나날'이라니.. 일상 또한 닭털 만큼이나 비루하다는 뜻인데, 임씨와 그의 부인의 일상은 그야말로 비루하기 짝이 없다.
상한 두부 한 모를 가지고 티격태격하고, 수도 검침원은 물도둑질한다고 그러고, 아내의 이직을 위해 뇌물을 바치려다 면박이나 당하고, 고향한테 온 손님에게 푸대접을 하고, 딸아이는 겨우 고급 유치원에 보내 놨더니 이웃집 아이의 수행원 노릇을 해야 한다. 대학까지 나와서 중앙 부처에서 관리로 일하는 부부의 행색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비루하다 못해 쪼잔하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구질구질함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은 가정부를 내보내고, 아이를 고급 유치원에 보내고, 그들도 청탁을 받을 위치에 서지만, 그 동시에 체면 집어 던지고 오리 장사 알바를 하고, 배정된 이유가 배배 꼬이지만 통근버스를 좋다고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일상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네 일상은 임씨 부부의 것과 뭐가 다를까? 병원비 아까워 병원 안 가고, 안경 새로 맞추기 싫어 안 쓰고 다니고, 택시비가 아까워 찜질방에서 자고.. 단지 구질구질, 비루, 쪼잔의 정도와 스타일 차이일뿐이다. 결국 나도 우리도 모두 닭털 위에서 뒹굴고 있다. 임씨 부부가 안타까워 보이는 건, 공산당 치하 틀에 박힌 관료제와 어설픈 시장 경제가 뒤섞인 오늘의 중국은 너무 복잡하고 피곤하다는 것이다.
Posted by Enits
,
간디 학교의 행복 찾기 - 8점
여태전 지음/우리교육

간디학교에서 학생들은 정말 행복할까
- 《간디학교의 행복찾기》, 여태전 | 우리교육

#1
간디학교는 비록 특성화고등학교와 자율학교 시범학교라는 정부가 붙인 딱지를 붙이고 있지만 그 본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안학교이다. 점점 대안학교를 표방하는 학교가 늘어나면서, 간디학교 사태를 통해 대중들에게 대안학교 내지는 대안교육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일상화된 하나의 교육담론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 대안이 도대체 무엇에 관한 대안이냐?" 하고 물어오면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렵다. 종종 이런 말을 받고 나름대로 설명하긴 하지만, 왠지 뒷맛은 개운치가 않다. 그 까닭은 '대안'이라는 말이 '어떤 것을 대신하는 다른 방법'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육'이라는 말 앞에 붙은 까닭에 더욱더 쉽게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18p).
사실 대안학교라는 말 앞에는 기존의 학교가 대신해야할 무언가가 있는, 깨놓고 말하면 문제 학교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말을 꺼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문제 학교는 어떤 학교를 말하는가? 저자는 간디학교의 창립자인 양희규 선생의 입을 빌려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은 악몽 같았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중략) 학교를 '수용소'라고 생각했고, (중략) 양희규 선생은 잘못된 교육제도 때문에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이 상처 입는 꼴을 견딜 수가 없었다(59p).
양희규 선생은 왜 자신이 다닌 학교를 '수용소'라고 고백했을까? 저자는 그에 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 사회의 일류병과 학력주의는 온 국민의 생활 전반을 '식민화'하고 있다. 일류병은 필연적으로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패배의식과 열등의식을 갖고 하고 나아가 '들러리 인생'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억압한다. 이 같은 교육 상황을 사회 구조악(구조화된 악)으로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그 대안을 찾고자 간디학교를 연 것이다(67p).
양희규 선생을 비롯한 대한민국이라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아니 다녀야만 하는 학교를 양희규 선생은 '사회 구조악'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이자 근원이 '입시 위주의 교육'이며 이는 "학부모, 교사, 교육 관료, 정치가 모두가 공모자가 되어 '입시 위주의 교육 체제'라는 철옹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74p)"이라고 주장한다. 거칠게 말하면 기존의 학교는 앞에서 말한 '문제 학교'이자 '불행한 학교'라는 것이다.
좀 더 나은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입시 위주의 교육 체제'를 부정하거나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교육 체제를 구성하는 지금의 학교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학교라는 존재가 근대 교육의 산물이자 공교육의 전형이다 보니, 그것의 효용성과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그것들을 위협할 수 있는 부메랑으로 작용될 수 있을까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경쟁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사이비 교육인 사교육의 입김이 점점 세지는 상황에선 더욱더 위험한 행동으로 생각되고, 또한 그렇게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학교를 바라보는 서너 가지의 생각이 들어난다. 하나는 '학교'란 공간 자체를 부정하며 '배움'의 공간을 학교에 한정시켜선 안 된다는 이른바 '탈학교론'이며, 다른 하나는 그런 학교의 문제점을 인정하지만, 공교육의 전형이며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선 학교란 공간은 불가피하게 존재한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엔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우리 사회를 좀 더 행복한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도 있다. 양희규 선생은 그런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간디학교를 만들게 된 것이다.

#2
그렇다면 현직 일반학교 교사인 저자는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세상에 관해, 교육에 관해, 내 삶에 관해 서서히 체념과 냉소에 젖어들 무렵 간디학교를 만났다. 간디학교는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여전히 교육에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흔들리던 나는 간디학교를 만나면서 다시 곧추서게 되었다(19p).
간디학교를 좋아하니깐 책을 썼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저자는 간디학교를 통해 '행복한 학교'가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음을 책 전반에서 담담히 고백한다. 그리고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학교의 '행복한 학교' 만들기 실험이 계속되면 일반 학교도 언젠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이 책에서 간디학교의 탄생에서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존의 학교가 '행복한 학교'로 변모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그것을 통해 오늘날 공교육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한다.

저자는 왜 간디학교를,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대안학교를 기존의 학교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했을까? 저자는 간디학교의 교육철학을 설명하면서 그것에 대한 이유를 간접적으로 밝힌다. 간디학교 교육철학의 핵심은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이다.
간디학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서로에 대한 믿음, 서로의 행복과 기쁨을 비는 순수한 마음, 그것을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사랑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적절한 교육과 습관과 노력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중략) '자발성'의 원리는 모든 가르침과 배움은 자발성을 가질 때만 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강제로 혹은 타의로 마지못해 이루어지는 가르침이나 배움은 결코 기쁨을 주지 못라며 오히려 불행과 고통을 초래한다고 본다(72p).
간디학교는 이런 교육철학과 함께 추구하는 학교의 모습을 '행복한 학교'라고, 그것의 교육목표를 '전인적인 인간, 공동체적인 인간, 자연과 조화된 인간'이라고 정의내린다. 그런데 이런 교육목표는 일반학교에서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이러한 말들이 교과서 안에만 있을 뿐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 있다. 아무리 좋은 이념과 교육목표라고 하더라도 현장의 실천 원리로써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한낱 구호로만 그치는 것은 문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안교육은 이 같은 이념과 현실의 불일치를 어떻게 하면 더 일치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 데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중략) 지난 반세기 동안 유지되어 온 공교육 체제는 이와 같은 이념과 교육목표를 실천하기에는 처음부터 그 시스템이 잘못 짜여졌다고 볼 수 있다. (중략) 게다가 '물질적 근대화(또는 압축 근대화)'가 낳은 우리 사회의 갖가지 사회병리현상 특히 교육 영역에서만 본다면 우리 사회의 학력주의와 과잉 교육열 속에서 전인적인 인간을 육성한다는 것은 말뿐인 구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안학교는 바로 이러한 근대화 과정이 낳은 '구호뿐인 어두운 그늘'을 걷어 내고자 하는 의지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78∼79p).
#3
대안학교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지만 간디학교를 일반학교의 '대안'이라 생각하는 것은 섣부르다. 저자 또한 "간디학교는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 진행형'이다"라며 밝히고 있으며, 간디학교의 아쉬운 점과 문제점을 솔직히 지적하고 있다.
간디학교가 처한 가장 큰 문제점은 아마 기존의 공교육 체제와의 갈등과 긴장이 아닐까 한다. 기존의 미인가 학교에서 특성화고교로 인정받고 자율학교 시범학교 지정 받으면서,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지정된 교육과정 이수 요구 등을 받아들여야 함은 자유와 자발성을 추구하는 대안학교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재정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공교육의 위기 상황 속에서 이를 극복할 새로운 교육을 열어 보자는 뜻에서 제도권으로 들어온 것이다(68p).
하지만 2000년 경남교육청이 간디중학교 해산 명령을 내렸던 것처럼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름에서 기인하는 수많은 난관을 맞닥뜨려야 했다. 교육청의 양희창 교장에 대한 고발과 학교-학부모-시민단체의 연대 투쟁의 대결 구도 속에 간디학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대안교육에 관한 담론을 생성시켰지만, 결과적으로 중학교 과정을 타지로 옮기면서 사실상 교육 당국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만다.
아직도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기관은 중도 탈락자들을 위한 대안교육 기관은 허용하면서도 간디중학교와 같이 새로운 교육철학과 교육방법을 주장하는 대안학교는 공교육 체제로 들어오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반면에 자립형 사립학교의 형태로 운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현실이다(147p).
저자가 말한 것처럼 교육 당국은 부적응아를 위한 대안학교는 골칫덩어리를 대신 맡아줄 기관으로 인식하지만, 대안적 가치와 체제를 지향하는 대안학교는 그들이 구축한 시스템을 거부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이단아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학교가 국가의 일관된 시스템과 철학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는 것인가, 특히 교육이 의무이자 권리라는 점에서 의무교육을 단순하게 '의무취학'으로만 해석할 것인가 같은 문제이다. 알다시피 근대 교육의 핵심은 국가에 의해 통제된 공교육 체제이다. 공교육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를 이야기해 보기도 전에 국가(정부)는 교육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보편성과 공공성만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다양성이 전제되지 않는 보편성과 공공성의 추구는 자유 없는 평등을 추구하는 왜곡된 사회주의와 다를 없다(220p)"라며 다양성과 보편성의 두 축이 조화와 상생의 원리로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4
저자는 5장과 6장에 거쳐 간디학교 내부, 특히 교사와 학교 공동체가 어떠한 문제점에 직면해 있는지를 설명한다. 간디학교의 교사는 좁게는 기존의 학교라는 공간이 가진 구조악을, 넓게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한계에 대한 불복종과 도전을 위해 모인 집단이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공동체를 지향하며 '자발적인 가난'을 통한 청빈한 삶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이상과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의 간극은 크다. 특히 '잘 가르쳐야 한다'라는 사명을 갖고 학생들을 만나가는 대안학교의 교사들에게 그 간극은 더더욱 크다. 그렇다면 간디학교가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일까?
간디학교는 작은학교를 지양한다. 그들이 추구하고자하는 교육과정은 다양하게 특성화되고 세분화되어 있다. (중략) 교육과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한 교사가 두세 개 교과를 맡거나, 아니면 교과별로 교사를 모두 채용해야 한다. (중략)
간디학교는 정부의 재정결함보조금으로 임금을 받는 '발령 교사' 집단과 학교법인이 필요에 따라 자체적으로 채용한 '미발령 교사' 집단으로 나누어졌다. (중략) 외형적으로 볼 때 그들 교사 공동체 내에서는 발령과 미발령의 차이는 없다. (중략) 교사 공동체 내규에 따라서 월급은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고 하지만, 미발령 교사는 일반학교 교사가 누리는 각종 사회복지 정책의 혜택을 누릴 수가 없다. (중략) 무엇보다도 미발령 교사는 사회적으로 교사로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심리적 상실감을 가지는 듯하다. (중략)
또 하나, 간디학교 교사의 임용구조의 현실에서 주목되는 것은 교사들의 '잦은 이직 문제'이다. (중략) 간디학교의 정체성을 놓고 논쟁하다가 교사 여섯 명이 떠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교사들이 간디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개개인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보통 경제적인 이유, 교사 공동체 내의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157∼159p).
간디학교의 교사 조직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민주적인 토론문화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긍정적으로 평가되던 그들의 회의나 연수도 간디학교 사태 이후 '소진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하는 교사도 있다. (중략) 전체 교사가 공유하지 못하는 일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회의 풍토는 염려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장차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도 전통적인 학교 조직의 특징처럼 '관료제화'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략) 이런 염려 속에서 간디학교 교사들도 갈수록 교직 사회 특유의 '개인주의적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164∼165p).
대안학교 만큼이나 대안적인 교사 공동체를 꿈꾸었던 간디학교의 교사 공동체도 이상과 현실의 간극 속에서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 게다가 간디학교 사태 이후 교사들은 갈수록 교육 외적인 일로 바빠져서 쉽게 피로해지고, 정작 '아이들에게 민감한 교사'로서 자기 정체성을 찾기 못했던 것이다.
한편, 이런 교사 공동체의 문제와 함께 간디학교를 어렵게 한 것은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조차 대학 입시와 수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졸업장조차 별 관심 없었던 학부모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 입시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관해 학교철학을 위협하는 언행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 또한 그런 욕구를 내보였고, 학교는 교육철학의 기본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범위 안에서 자발적인 보충수업을 실시하기 이르렀다. 물론 일반학교처럼 대학 입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아닌 데다, 양희규 선생부터 "대안학교와 대학 입시를 반대 관계로 봐서는 곤란하다. 전인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을 고수하면서 학생들이 원하고 얼마든지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대학진학이라고 판단되면, 열심히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것은 대안교육의 개념에 전혀 배치가 되지 않는다(169p)"라며 대학 입시에 대한 분명한 관점과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양희규 선생은 물론 저자조차 대학 사회에 대한 불신감을 내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 없이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 지도에서 스스로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5
저자는 간디학교가 최종적으로 꿈꾸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자유인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핵심 교육이념인 자유와 자발성 문제는 아직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현재 간디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자유의 첫 단계인 해방의 단계까지는 나아가지만, 그 다음 단계인 선택과 책임의 단계로는 나아가지 못한다는 지적들이 번번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장인의 삶에 기초한 자유인을 기르자고 하는 그들의 교육 이상을 현실로 바꿔 놓기에는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174p).
자유와 자발성의 문제 앞에선 교사 또한 마찬가지다. "교사들에게 자유와 자율권이 지나치게 허용되다 보니, 교사들은 일체의 교육활동에 대해서 동료 장학이나, 지도·감독의 시스템이 조금도 없다"라는 일부 교사의 말과 함께 저자는 배성근 서기관의 "대안학교는 아이들의 자유를 위한 곳인가요, 교사의 자율을 위한 곳인가요?"라는 말(183p)을 통해 교사들이 자신의 영역 안에서 전문성과 탁월성을 갖춰 나가야 함을 지적한다. 이런 자성적 비판을 통해 삶과 교육이 일치하는 대안적 삶을 살아야 하며, 그를 통해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간디학교는 그들의 공동체를 '사랑의 공동체'로 이해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교육철학인 '사랑과 자발성'을 바탕으로 그들이 꾸려가는 공동체의 특성을 표현한 것이다. 간디학교는 이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관용' '이해' '배려' '신뢰' '정의' '용기' '성실'의 일곱 가지 덕목을 제시하면서 이것들을 생활화하는 실천을 강조한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학생들은 "사랑 받고 사랑하며 사는 사랑의 공동체는 물질적으로 윤택한 생활과 쾌적한 교육환경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188p)"는 것을 깨달아 왔다.
한편 교사들은 "결국 사랑의 능력을 가르쳐야 할 개개인의 교사들부터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사는 일이 일상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아이들과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겠느냐(192p)"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이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교사들조차 "일반학교 교직문화의 특성인 개인주의적 특성이 그대로 영속화되는 것(193p)"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간디학교 사태를 겪으면서 소진된 '토론 문화' 같은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으며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점차 나아진다고 하지만, 거꾸로 간디학교가 안정화되면서 찾아오는 안주하려는 욕구 속에서 이 문제는 다시 불거지지 않을까 한다.

양희규 선생은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도록 안내해 주는 교육, '자기발견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을 추구하고자 했다. 저자는 본질적의 교육의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을 왜 새삼스레 강조할까?
오늘날 우리의 공교육(일반학교) 체제는 그 원리를 실천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구조화된 악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195p).
사람들은 대부분 열등의식, 패배의식, 또는 냉소주의로 흘러들어 또 다른 불안과 초조를 확대재생산 한다. (중략) 서서히 꿈과 희망을 접으면서 일상성에 깊이 매몰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소외는 바로 여기서부터 싹이 튼다. 이렇듯 자기발견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행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개개인으로 하여금 진정한 자기발견을 통해 행복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196p)
간디학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발견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간디학교라고 해서 이러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 완벽할 수는 없다.
실제 운영상에서 자잘한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으며, 아직 그 교육적 효과를 검증할 수 없는 실험 단계에 있다(198p).
그동안 교육과정의 운영에서 인성 교육에 중점을 두다 보니 상대적으로 지식 교과를 소홀하게 다루었으며, 거기에 따라서 지적 탁월성을 이끌어 내는 데는 부족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199p).
현재 우리나라의 대안교육 운동은 기존의 주지주의적 교육 전통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했던 경험주의나 진보주의 교육이 지녔던 한계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한계를 갖는다. 교육과정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들 중의 하나로서만 위치하게 될 뿐, 기존 교육의 정당한 대안으로서 작동하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된다(최도연, 200p).
간디학교에서조차도 "아이들의 학습 요구는 외면하고 교사의 의도대로 주입하고 가르치려는 전통적인 공립학교식의 수업 방식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배성근, 203p)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간디학교와 교사들은 내부에서부터 그 진단과 처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거듭나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을 넘어서 앞으로 그들이 만든 교육과정을 통해 어떻게 '탁월한 개인'을 키워내느냐라는 실천적인 모습이 요구된다. 또한 대안 찾기 과정에서 무엇을 '단절'시키고 무엇을 '연속'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6
저자는 간디학교를 통해 우리의 교육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보려고 했다며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는 '바로 이것이 대안교육이요, 대안학교다'라며 말하지 못하며, 간디학교 또한 아직도 문제가 많은 학교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간디학교가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를 우리 교육을 살리는 희망과 꿈, 우리 교육의 어둠을 밝히는 '예광탄'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학교는 대안학교로 거듭나야 한다"라는 간디학교 교사들의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그는 이 말과 함께 "모든 학교가 간디학교를 닮을 이유도 없고, 현실적으로도 그럴 수 없다"라며 우리가 선 위치에서 우리 여견에 맞게 '방향전환'을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학생 수로 비교한다면, 시골 대안학교 열 곳보다는 도회지의 일반학교 한 곳이 제대로 '돌아서기' 또는 '정상화'만 된다면, 우리는 시름에 빠진 아이들을 짧은 시간에 더 많이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221p).
결국 저자도 간디학교를 세운 양희규 선생도 교육을 통해 '사회 구조악으로부터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간디학교가 지난한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견디어 온 이유이며,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모든 학교가 대안학교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Posted by Enits
,
오늘 경향신문에서 이 기사를 읽고 난 후, 그리고 그 기사와 연루된 포스트와 그와 또 연루된 다른 포스트를 읽으면서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는 무한한 책임의식, 그리고 그것의 실제 구현 형태인 돌 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널까 말까 하는 꼼꼼한 검증이 무척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단순히 하나의 글을 가르고 묶은 뒤 문장을 교열하는 정도로는 책은 세상을 채울 텍스트의 집적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언제든 수정 가능한, 그리고 언제든 오류가 발생한 사실을 알려 주면서 상호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매체와 다르다. 그러기에 책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교과서를 만든다 하는 나로서는 가슴에 철필로 아로새겨야 할 교훈이다.

P.S.#1. 그나저나 문학과지성사는 대단한 위기상황에 봉착했다. 마치 가래로 막아야 할 것을 호미로 막다가 밭을 절단 낸 출판계의 농심(생쥐깡을 기억하시라)이 된 모양새이다. 어떻게 대처하려나? 기사나 나귀님의 포스트대로라면 갖은 비난이 쏟아질 텐데, 그러기엔 이 프로젝트는 애당초 덩치가 너무 큰 공룡이다.
P.S.#2. 문제의 해제를 쓴 이익성 교수는 아무래도 제자에게 원고를 쓰라 하고 검토도 안 한 채 출판사에 송고한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제자들에게 대필시키는 기존 학계의 문제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 내 억측이라고 한다.)
P.S.#3. 알라딘 나귀님이 지적했듯 '순수문학'의 장르문학에 대한 폄하하는 듯한 말 또한 두고 두고 회자될 것이다. 다음달 <판타스틱>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Posted by Enits
,

알 라딘에 중고샵이 개장된 후 2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현재까지 알라딘과 개별 구매자에게 책 16권을 팔았고, 8권의 책과 11장의 음반을 구입했다. (그중 한 권은 대폭 할인가에 충동적으로 사서 한번 들춰 보고 실망했는데 구매가보다 비싼 가격에 알라딘에 되팔았다.^^;) 어짜피 읽지 않은 채 서가만 차지하고 있는 책을 필요한 사람에게 팔고, 내가 원하는 책이나 음반을 비록 신품은 아니더라도 싼값에 그리고 안정성 높고 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좋게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고 거래, 특히 온라인 서점에서 이루어지는 중고 거래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문제가 많다.

중고란 물품은 싸게 살 수 있는 반면, 수량이 극히 한정돼 구매욕을 높이기 마련이다. 이제껏 중고 음반을 향뮤직이나 피그피쉬에서 중고로 구입했으나, 중고 책은 이따금 헌책방을 들러 무작위로 살 만한 책을 사거나, 필요하나 절판된 책을 온라인에서 뒤지는 정도로밖에 이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중고샵을 여니 중고 음반을 살 때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이를테면 중독이다. 희소성 때문에 관심 가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는 품목을 검색하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배송비 여부 때문에 해당 판매자의 다른 책을 들여다 보고, 살까 말까 고민하다 차일피일 미루면 누가 먼저 채 가고, 그러면 괜히 내 것을 빼앗긴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다. 그리고 조바심만 생겨 사지 않아도 될 책에 욕심이 생겨 일단 지르고 보는 반복적인 패턴이 일어난다. 덕분에 월 도서구매액의 절반 가까이 중고 책 사는 데 소비했다. 에휴...

중고로 나오는 책을 보면 대부분 베스트셀러였던 자기계발서나 실용서 그리고 문학이다. 아무래도 휙 한번 들춰 보고 던져 버리는 책이 다시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꼴이다. 모든 책을 서가에 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그러한 쉽고 읽고 쉽게 버려지는 패턴은 조금 안쓰럽다. 그리고 왜곡된 베스트셀러 위주의 시장 구조도 한눈에 보인다. 잘하면 쓸 데 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베스트셀러 진영의 재구조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조금 요원해 보인다. 또한 그동안 어린이책에는 아직 관심이 없어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가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하다 알게 된 것인데, 중고로 나오는 품목에는 어린이책의 비중이 은근히 높다는 것이다. 성인 책과 달리 쉽게 읽히고 쉽게 관심에서 멀어지는(아이는 쑥쑥 자란다) 어린이책을 무작정 보관하기보다는 내놓게 되는 게 아무래도 인지상정일 듯싶다. 어린이책 시장이 과포화된 상태에서 이런 중고 물품이 대량으로 나온다면, 이 나라 출판 시장의 한 근간인 어린이책 분야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특히나 이제껏 내가 거쳐 온 데는 대부분 어린이책으로 먹고사는데 말이다. 게다가 출판사나, 저자, 번역자가 자기가 공들여 만든 책이 중고책에서 거래되는 모습을 본다면 속이 뒤집어질 게다.

아내와 이야기하다가 조금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알라딘이라는 인터넷서점에서 중고샵을 운영한다는 것은 광화문 교보문고의 한켠에 헌책방을 들인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물론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다르니 이런 비교는 억측이라 해도, 세계 최대의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도 중고샵을 운영한다고 따지면 나로서는 더 할 말은 없다. 다만 그 모양새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기고 때로는 안쓰럽다는 것이다.

싸고 편하고 안전하게 책이나 음반을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은 분명 알라딘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하지만, 점점 중고샵을 빤질나게 드나들면서 점점 부정적 모습을 보게 된다. 당분간 구매는 줄이겠지만 언제든 중고샵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캐는 내 모습은 익숙해 보인다.

'책 또는 그 밖의 무언가 > 섭씨 233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불온하지 않다!  (0) 2008.07.31
책 만드는 데 요구되는 책임의식  (0) 2008.04.19
알라딘 중고샵 개장  (0) 2008.02.22
서준식의 <옥중서한> 재발매?  (0) 2008.02.17
책 더미  (0) 2007.10.03
Posted by Enits
,
다음은 한국출판인회의가 2007년 02월 15일부터 2008년 02월 21일까지 교보문고, 영풍문고, YES24, 인터파크 등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10곳의 도서판매 부수를 집계한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입니다.

 1위.시크릿(론다 번ㆍ살림 BIZ/2007년06월)
 2위.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외ㆍ한국경제신문사/2007년12월)
 3위.즐거운 나의 집(공지영ㆍ푸른숲/2007년11월)
 4위.리버보이(팀 보울러ㆍ다산책방/2007년08월)
 5위.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지성ㆍ다산북스/2007년10월)
 6위.20대 공부에 미쳐라(나카지마 타카시ㆍ랜덤하우스코리아/2008년01월)
 7위.몰입(황농문ㆍ랜덤하우스코리아/2007년12월)
 8위.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이원복ㆍ김영사/2007년12월)
 9위.1% 행운(잭 캔필드ㆍ흐름출판/2008년01월)
10위.사랑을 믿다(권여선ㆍ문학사상사/2008년01월)
11위.사랑하기 때문에(기욤 뮈소ㆍ밝은세상/2007년12월)
12위.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ㆍ열린책들/2007년07월)
13위.무지개 원리(차동엽ㆍ동이/2006년11월)
14위.이기는 습관(전옥표ㆍ쌤앤파커스/2007년04월)
15위.1일 30분(후루이치 유키오ㆍ이레/2007년10월)
16위.감사의 힘(데보라 노빌ㆍ위즈덤하우스/2008년01월)
17위.구해줘(기욤 뮈소ㆍ밝은세상/2008년01월)
18위.신화는 없다(이명박ㆍ김영사/2005년05월)
19위.에너지버스(존 고든ㆍ쌤앤파커스/2007년01월)
20위.해커스토익 Reading-뉴토익(DAVID CHOㆍ해커스어학연구소/2006년02월)


20위 안에는 자기계발서와 실용서, 그리고 소설만 있다. 그나마 한국소설은 공지영의 책 단 한 권이다. 그런 마당에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과학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위치하는 일은 가당치도 않다. 그나저나 18위에 있는 책 한 권이 몹시 거슬린다. 아니다. 그보다 더 높은 순위에 없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Posted by Enits
,



얼 마 전 알라딘에서 중고샵 베타 테스트를 하더니 오늘 정식으로 열었나 보다. 알라딘에서 매집하는 책은 정가의 25%라는 상당히 박한 가격이지만, 이 정도는 일반 헌책방의 매입가에 비하면 나쁘진 않다. 낫배드. 재미있는 건 헌책사랑의 개인 책방처럼 개인이 판매자로 등록해 팔 수도 있는데, 이른바 오픈마켓. 이때는 가격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면 된다. 물론 40%라는 기준율은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고 물품 리스트가 펼쳐져도 일반 상품과 달리 저자 표기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보고 알거나 클릭해 물품의 세부사항을 읽어야 한다. 특히 음반 같은 경우에는 뮤지션이 누군지 한눈에 알 수 없다. 그리고 보관함에 넣거나 마이리스트로 정리할 때 판매자가 노출되거나 분류할 수 있는 항목이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아무래도 배송비나 규모 있는 구입가 설정 때문에 한 판매자로부터 복수의 책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다. 실제로 나부터 그러고 있다.

대 충 올라오는 중고 책/시디/디비디를 보니 실용서/자기계발서나 에세이류가 많다. 아무래도 한번 찍 보고 말거나 자신이 읽기보다는 남에게 선물하는 요즘 독서 풍토의 탓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책은 아무래도 소장하기보다는 한번 읽고 말거나 아니면 그저 책장에서 자리만 차지할 테니 말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읽을 사람에게 주거나 아니면 헌책으로도 파는 게 나으려나? 그것에 대해선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하지만 거꾸로 이를 이용하면 (내 기준에서) 제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까운 책을 저렴한 값에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숨책 같은 헌책방을 뒤비거나 헌책사랑의 개인 헌책방에서 이따금씩 책을 샀는데, 아마도 이제는 알라딘 중고샵을 종종 애용하게 될 듯하다. 혹시 아나 주인 잘못 만난 대박을 만나게 될지. 지금도 몇 가지가 눈에 띄지만 이달 구매 예정액을 초과해 섣불리 구매하기가 난감하다. 젠장, 중고는 언제 누가 먼저 채갈지 몰라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트랙백 : http://blog.aladdin.co.kr/trackback/usedshop/1924158)

'책 또는 그 밖의 무언가 > 섭씨 233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만드는 데 요구되는 책임의식  (0) 2008.04.19
알라딘 중고샵을 보며 드는 생각  (0) 2008.03.17
서준식의 <옥중서한> 재발매?  (0) 2008.02.17
책 더미  (0) 2007.10.03
지도책..  (0) 2006.10.17
Posted by Enits
,
서준식 선생의 <옥중서한> 출간이 늦어지자 재발간하기로 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게시판에 누가 문의했다. 언제 나오냐고... 다음은 그에 대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답변이다.

먼저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작년 가을부터 여태 기다리고 있다오.

옥중서한 마무리작업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 원래 지난해 12월에 나온다 했다.

이달 중으로 완료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중입니다.
=> 이달 중에는 안 나온다는 이야기다. --; 오늘이 1월 31일인데 인터넷 서점에 신간으로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야간비행 측으로 부터 관련 파일을 전혀 건네받지 못한데다가 추가되는 내용이 있어서 작업이 늦어지는 점 양해부탁드리겠습니다.
=> K모씨에게 육두문자가 튀어나가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모르므로 일단 판단은 접어 둔다. 하지만 저자가 절판의 강수를 두게 만든 데는 아직도 삐쳐 있다. 덕분에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무척 애쓴다. 설마 저 두툼한 책을 가득 채운 텍스트를 일일이 손으로 옮겨 치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그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아무튼 봄이 되기 전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오는 게 어디냐 싶은 게 본 마음이다. 다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기에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을 따름이다.

'책 또는 그 밖의 무언가 > 섭씨 233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라딘 중고샵을 보며 드는 생각  (0) 2008.03.17
알라딘 중고샵 개장  (0) 2008.02.22
책 더미  (0) 2007.10.03
지도책..  (0) 2006.10.17
책과 가용공간은 반비례  (0) 2006.09.17
Posted by Enits
,


The Left 1848-2000 -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원제 Forging democracy (2002)
제프 일리 (지은이), 유강은 (옮긴이) | 뿌리와이파리

"방문객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꽂아 두십시오. 집안의 정체성과 품격이 확 드러날 것입니다. 온 가족이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좋은 일입니다." - armarius.net BBS의 모 글 답글 중에서

볼드로 처리한 '집안의 정체성과 품격'이라는 말을, 248*176mm 크기에 1028쪽 양장본이라는 책의 외적 형태와 접목시키면 자연스레 '가오'라는 말로 치환된다. 외양이나 내용이나 '가오' 잡기에 딱인 책이다.

<본 얼터메이텀>에 제이슨 본이 책으로 목을 때려 무기로 쓰는 장면이 나온다는데, 이 책은 한손에 잘 잡히지도 않으며 일단 두 손으로 힘껏 던지기만 해도 사람 잡기에는 충분한 무기가 될 듯싶다.

저 것 내기로 한 출판사나, 죽어라 교정 본 편집자도 그렇지만, 번역한 사람은 무슨 배짱으로 시작했을까? 여튼 만든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가오' 잡는데는 이만 한 게 없다. 고로 가오 잡는 것 중시하는 가오이스트들은 반드시 서가에 꽂아 둬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자 컬렉션이다.

일단 사긴 했는데... 다 읽을 수 있을까?
Posted by Enits
,
컴퓨터를 두고 뒤를 돌아보면 책이 한가득 쌓여 있다. 얼추 오육백 권 정도? 그보다 더 될지도 모르고, 아직 ALURRE님이 친정집에 쌓여 있는 책을 아직 가져오지 않았기에 가뿐히 내 예상치를 넘을 게다. 120cm짜리 책장 세 개를 주루룩 이어붙여도, 그래서 80cm짜리 책장 두 개를 긴급히 주문했어도 아마 이 책들을 다 꽂아 넣기란 불가능할 듯싶다. 책 위에 쌓아 놓고 앞에도 꽂아 두고 하면서 아니면 박스에 넣어 구석에 쳐박아 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걸 언제다 정리해 두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분야별 크기별로 분류해 꽂아 두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 책들을 묶어 놓은 노끈이나 과연 풀 수 있을까? 기획 때문에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필요해서, 책세상 문고판과 비슷한 사이즈라 함께 묶어 놓은 비디오테이프를 찾느냐 책더미를 뒤져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창 걸렸다. 이 마당에 읽을 책을 고르기란 서울 바닥에서 이 서방 찾은 일과 뭐가 다를까 싶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었느냐 하는 질문에 나도 ALURRE님도 답하지 못한다. 이래저래 사 모으고 선물받았던 책이 쌓이다 보니 어느덧 수백 권의 더미로 남았을 뿐이다. 그래도 신기한 건 생각보다 겹치는 책, 즉 둘 다 가지고 있는 책이 그닥 많지 않다는 게다. 대략 20권 정도. 이 정도 책 규모에 이 정도 권수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서재를 결혼시키지 않다는 입장 앞에서, 공부하는 데 관련된 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당에, 복수의 책은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쉽게 자신의 책을 남에게 내놓지도 못할 듯싶다.

한편 더미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시디와 디비디... 과연 얘네들까지 정리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들을 모두 정리하다 보면 아마 올해 중에는 집들이는 꿈에도 못 꿀지 모른다. 문제라면 더 문제는 책, 시디, 디비디의 증식 속도는 전보다 더디긴 해도 절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는 것. 다음 이사 때는 100% 포장이사를 해야 할 판이다. 안 그래도 이번에 이사하면서 전체 짐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책을 4층집 두 곳에서 가지고 내려와야 하다 보니 사람을 한 명 더 써야 했다. 그리고 뭔 책이 이렇게 많아, 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그래도 한가득 쌓여 있는 책을 보면 희뭇한 웃음이 입가에 머금는다. 기획을 하고 글을 쓰고 할 때 어떻게든 도움이 될 테니, 정 할 것 없을 때 위로해 주고 벗이 되어 줄 테니. 십여 년을 떠돌고 더부살이 할 때는 책을 가지고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는데, 배따지가 불렀다 싶을 정도로 책을 쌓아 두고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짐을 풀고 분야와 크기에 맞도록 분류해 두지 않으면 종이뭉치에 불과할 테니 하루 속히 정리해야겠지.

'책 또는 그 밖의 무언가 > 섭씨 233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라딘 중고샵 개장  (0) 2008.02.22
서준식의 <옥중서한> 재발매?  (0) 2008.02.17
지도책..  (0) 2006.10.17
책과 가용공간은 반비례  (0) 2006.09.17
'땡땡'이 왔어요  (0) 2006.09.17
Posted by Enits
,
오늘 도착한 <비잔티움 연대기> 세트와 덤으로 주는 <역사의 원전>.
절대 <역사의 원전>을 공짜로 받으려고 산 게 아니다?! ㅋㅋ
일단 서가에 꼽아 놓으면 뽀대는 나겠다.
그런데 왜 한숨이 나오지?
Posted by Enits
,
평소 알라딘은 잘 들르지 않게 되는데 포노와 사이트 합병한다는 이야기에 그냥 둘러보다가 발견한 것은 바로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 지도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게 지도책, 그것도 세계사 지도책이라. 사계절에서 나온 <아틀라스 한국사>와 <아틀라스 세계사>도 나를 매혹시켰는데, 이번에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는 정말 매혹적이었다. "520장의 섬세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사의 현장들"라는 카피는 내게 마구마구 구매욕구를 뽐뿌질했다. 게다가 아날학파의 거두 조르주 뒤비가 책임감수했다는데.
 
 
책이야 땡기지만 문제는 예약구매자에게는 3만원짜리 쿠폰을 준다는 이벤트가 무색할 정도로 비싼 가격. 무려 12만 원. 여기서 잠깐 한숨 뱉고... 12만 원이 여느 집 애 이름은 아니지만, 이런 것을 비싸다는 이유로 패쓰하면 지름신의 화신은 지하철 선로를 문질러 광내야 할 듯. 정말 사고 싶다. 쿠폰이긴 하지만 3만원이면, 앞으로 포노와 통합되는 바람에 천상 알라딘을 이용하게 될 나로서는 9만 원이란 것인데... 그리고 기본적으로 10% 할인이니 정작 내가 지불하는 금액은 78,000원이다. 흠... 이 정도면 대략 65% 값에... ^^; 이만 하면 싸게 주고 샀다 싶은데....
 
 
항상 문제는 있는 법. 그것은 바로 생각의나무의 전례인데. 연초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각각 35,000원에 샀는데, 원래 이 책의 가격이 10만 원을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재고가 쌓이니 나중에 염가로 내놓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도 똑같은 처지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 물론 세계사 지도책이다 보니 역사교사들에게 어느 정도 팔릴 듯하지만 12만 원을 우습게 알고 살 사람이 과연이 몇이나 될까 싶다. 설마 또 내년 정도에 35,000원 정도에 나와 버리면? 아마 생각의나무를 사색의나무로 만들어 버릴지도.
 
아, 그리고 엄마박쥐 허선수 시켜 사 온다든 지도책은 어이 되었노? 이 글 안 보면 말고. ^^;
Posted by Enits
,

지도책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중학교 사회과부도로 한글을 깨우쳤다, 라고 말하면 조금 오바이긴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책은 그림책이 아니라 사회과부도였다. 즉 지도책이다. 그만틈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지도책을 좋아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그 지도책을 보고 세계 각국의 나라와 수도를 다 외워 주위로부터는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내 머리는 지도에만 특화됐는지 다른 분야에서는 통 신기를 발휘하지 못하는 반쪽짜리였다.
 
내 지도에 대한 사랑은 나이가 먹어 가도 여전했다. 나는 늘 사회과부도와 전국지도책을 좋아했다. 그냥 지도책을 보고 있으면 즐겁다. 하는 일 없을 때 지도책을 보며 뜬금없이 지하철 노선을 짜기도 하고, 이 지역은 뭐가 있을까 궁금해한다. 그러다 보니 서울의 3단계와 대전의 지하철노선 계획을 대부분 예측하기도 했다. 요새도 지도책을 보며 신분당선과 신안산선이 서울 도심을 어떻게 통과할지 따져보곤 한다.
 
그렇게 어렸을 적부터 지도를 봐 왔기에 나는 처음 가는 곳을 갔다 오면 반드시 지도로 오간 길을 복기한다. 요새야 인터넷으로 제법 정확한 지도를 제공하기에, 게다가 버스노선까지 지도에 표시되기에 어렵지 않게 나는 돌아다닌 길을 제법 정확히 복기한다. 이는 방향감각이 다소 둔함에도 내가 길치가 아닌 길을 잘 찾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실 지도와 지리는 다르다. 지도에 대한 관심은 지리의 대한 관심으로 100% 전이되지 못했다. 아마 전이가 제대로 됐으면 나는 아마 지리교육과나 지리학과로 진학했을 게다. 그렇다면 아마도 지금은 지리교사나 지리정보원 연구원 등으로 일하고 있겠지. 물론 백수로 놀거나 다른 일을 택할 확률이 더 높다. 왜냐하면 교사는 성격상 내키지 않는 직업이었으며, 지리학과는 별로 없었다.
 
부동산과 교통 문제로 전국지도책은 잘 나오나 세계지도책은 쓸 만한 게 나오지 않는다. 아마 고등학교 지리부도가 가장 좋은 세계지도책일지도 모른다. 세계지도책 하나 장만해야 하는데... 그래서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가 땡긴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지도가 아닌 과거의 지도다. 물론 과거의 지도 또한 몹시 매력적이다. <로마인이야기>를 보며 당시 지리적 현황을 지도에 복기해 보고 싶지만 쓸 만한 지도는 없다.

'책 또는 그 밖의 무언가 > 섭씨 233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준식의 <옥중서한> 재발매?  (0) 2008.02.17
책 더미  (0) 2007.10.03
책과 가용공간은 반비례  (0) 2006.09.17
'땡땡'이 왔어요  (0) 2006.09.17
작은책  (0) 2006.06.20
Posted by Enits
,
나 는 본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교 이후로는 책을 즐겨 읽지 않았다. 그러나 난 지금 책 만드는 일을 한다. 그것도 매달 한 권씩. 흔히 생각되는 일간지 혹은 주간지 기자와 달리 월간지 기자는 Reporter라는 말 대신 Editor라는 말을 쓴다. 자기가 직접 쓰기보다는 남의 글을 편집하는 일이 더 많다. 그렇게 나는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단행본을 만드는 일을 할지는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점점 더 책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닥 벗어 날 생각이 없다는 것 또한 깨닫고 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나는 책과 친해져야 할 사명을 부여받는다. 아니 받고 있다. 그리고 받았다. 아직 블로거 친구분들에 비하면 택도 없는 독서량이지만 한계독서량의 곡선은 덜 가파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독서량이 늘고 있다. 물론 독서량보다는 구매량이 더 높은 수치로 높아지는 게 문제라면 문제. 그래도 슬슬 독서량이 늘면서 이전에는 없던 책 읽는 즐거음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역설적으로 고민을 주고 있느니 바로 점점 좁아지는 방이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짐(짐이라고 해 봐야 옷가지를 제외하면 책과 시디다)을 한데 모으니 책장 하나가 필요해 주문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책장은 금세 거의 가득찼고 조만간 포화상태를 넘어 겹쳐 꽂아야 할 듯. 책장이야 하나 더 사면 된다. 문제는 책장 하나 더 들어올 때마다 좁아지는 방이다. 원래 혼자 살 생각으로 얻었던 집을 처음 생각과 달리 친구랑 동거하기로 했으니 내 짐을 둘 공간은 결국 내 방밖에는 없다. 막상 짐을 들여다 놓으니 좁아 침대를 포기해야 했는데, 책장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내 방이 좁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친구 보고 들어오지 말라곤 할 수 없는 법. 뭐, 그냥 좁으면 좁은 대로 살다가 친구가 먼저 나가거나 아니면 계약기간을 1년을 채우고 다른 데로 이사 가는 방법밖에 없다. 책장을 좀 더 내다보고 넓은 것으로 사야 할까, 아니면 덜 좁아 보이는 좁은 것으로 사야 할까.
 



'책 또는 그 밖의 무언가 > 섭씨 233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준식의 <옥중서한> 재발매?  (0) 2008.02.17
책 더미  (0) 2007.10.03
지도책..  (0) 2006.10.17
'땡땡'이 왔어요  (0) 2006.09.17
작은책  (0) 2006.06.20
Posted by Enits
,


 
며칠 전 비다님 블로그에서 괜히 땡땡 이야기를 꺼냈나 보다. 문뜩 땡땡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든 생각.
 
'아, xx가 땡땡 펴낸 출판사에 있지.'
 
메신저로 xx에게 직원가로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그런 책을 사 보는 사람도 있군 하던 xx도 내가 살 의향을 보이자 적극적으로 나온다. 담당자로부터 xx% 할인을 해 주겠다는 말을 전한다. 하지만 땡땡 전질이 24권이다 보니 도합 20만원이 넘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직원가로 산다고 해도 만만치 않다. 그때 문뜩 든 생각.
 
'아, 만화책 좋아하는 '누'를 꼬시자.'
 
간악한 자일 씨는 거북이 티를 찬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반땡 하기로 하고 지불액의 절반을 '누'에게 넘겨 버렸다. 흐흐...
(*참고로 '누'는 동아리 후배이자 직장 후배이다.)
 
어제 주문하자 마자 오늘 책이 턱 하고 도착했다. 간악하긴 하지만 착한 속눈썹의 자일 씨는 선택권을 '누'에게 넘기는 아량을 베풀었다는데...
 
그런데... 반땡 12권도 집에 가져가기엔 너무 무겁다. ^^;
그리고... 어제 커피드리핑세트에 이어... 더위 먹었나 보다.

'책 또는 그 밖의 무언가 > 섭씨 233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준식의 <옥중서한> 재발매?  (0) 2008.02.17
책 더미  (0) 2007.10.03
지도책..  (0) 2006.10.17
책과 가용공간은 반비례  (0) 2006.09.17
작은책  (0) 2006.06.20
Posted by Eni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