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기사가 박스 하나를 건넨다. 알라딘에서 보낸 택배. 그런데 최근 책을 주문한 적 없는 나로서는 어리둥절하다. 갸우뚱. 혹시 누가 생일선물을 늦게나마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설레는 마음에 택배를 풀어 보니 다소 생뚱맞은 책이다. 그것도 3권이나. 근신-반성-갱생의 시간을 보내는지라 책을 사지 못하는 나로서는 웬 떡이나 싶었다. 그런데 박스 안에 든 송장을 보니 주문자가,

 화이부동 님이다.

 책을 보아 하니 최근 화이부동 님이 관심을 가지시던 건축 분야 책이 한 권 있다. 얼마 전 화이부동 님에게서 책을 선물받은 적이 있기에 실수로 당신 읽을 책을 최근 배송 주소로 보냈나 싶었다. 좋아 말았다는 생각을 0.03초 정도 했지만 그 나름 유쾌한 일이 아니던가. 어짜피 화이부동 님께 책을 보내드릴 예정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바, 그리고 주문하신 책이 안 와 슬쩍 스트레스 받으실지도 몰라 화이부동 님께 문자 메시지를 보내 드렸다. 블로그 방명록보다는 아무래도 문자 메시지가 빠르니까. 잠깐 후에 도착한 답문은 기가 막혔다.

 "자일님께 보내 드린 것 맞습니다."

 어라랏 이게 아닌데. 사실 책을 읽어 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집에서 먼지 뒤집어 쓰며 굴러다니던 책을 마땅히 읽을 분에게 보내 드렸을 뿐인데, 두 번에 걸쳐 새 책을 보내 주시다니. 지난번에 썼다가 오류로 인해 결국 사라져 버린 혼잣말이 반복되었다.

 "이이이건 반칙입니다!"

 책을 공으로 손에 넣은 것은 흐믓한 일이지만 이리 되면 살짝 부담이 된다. 아무리 호혜의 원칙에 따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책을 선물하신 것일 테지만, 사실 무언가를 공짜로 받으면 마음 한 켠은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라는 경구를 속담으로 남기지 않았는가? 그나마 원래 니나노 님과 포로리를 염두에 두고 회사에서 나온 책을 챙겨 두고 있던바, 화이부동 님께 보내드릴 게 없지 않지만 보내는 사람 마음과 받는 사람 마음은 화이부동 님의 선물을 대하는 내 마음을 볼 때 꽤나 다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화이부동 님 고맙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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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 님의 글을 읽고 나서 마침 내게 월러스틴의 책이 몇 권 있기에 보내 드렸다. 본사 왕래하면서 반품 창고에서 언젠가는 건질 만하기도 했거니와 과연 내가 지고 있는다고 해도 그 책들을 언제 읽을까 싶어 마땅히 읽을 만한, 읽어야 할 분에게 드리는 게 책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글에 달린 니나노 님의 "분서갱유할 서적 목록"이라는 말에 화이부동 님에게 무한한 연대(!)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아내들이 남편이 무차별적으로 책 사 들이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것은 구십구 프로 이해하지만 입은 툭 나온다. 책을 수백만 원어치 사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화이부동 님이 "분서하면, 저도 분신을"이라 답글을 단 데 대해 아내는 "분신은 뭐람"이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내 입장에서는 니나노님이 유생을 생매장한다는 뜻인 '갱유'를 언급한 데 대해 맥락은 알지만 지나친 언사라고 투덜거리는데, 아내는 뜻밖에도 그에 맞서는 화이부동님의 나름 저항 행위인 '분신'을 갖고 뭐라 한다. 한술 더 떠 "마누라들도 맞서서 된장물품들을 사제껴야 해."라고도 한다. 흠. 가재는 게 편이 맞나 보다. ^^;

그래서,

남편들이 잃을 것을 용돈뿐, 얻을 것은 책이다. 만국의 남편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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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구매 리스트를 열어 보니 못 보던 버튼이 있었다. 해당 책의 중고 판매분 등록 여부를 알려 주는 버튼인데, 아쉽게도 활성화가 돼 있지 않아 일일이 해당 책의 페이지를 거쳐야만 하지만, 그동안 늘 바라던 기능이기에 훗훗 했다. 그런데 구매 리스트와 보관 리스트 같은 원래 서재에 고정된 리스트에서만 작동하는 듯. 내가 만든 마이 리스트에서는 중고책 재고가 있음에도 그 버튼은 뜨지 않았다. 좀 아쉽긴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인가 싶어 보관 리스트에서만 작동하는 데 만족.

그런데... 알라린 중고샵 자체가 아내가 늘 말하듯 광화문 교보문고 한구석에 헌책방이 들어선 것 같은 모양새인데, 여기에 한술 더떠 진열된 새 책 옆에 중고책이 몇 권 있다고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듯한 모양새가 아이러니하다. 중고책의 현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에 소비자 처지에서는 좋긴 한데, 이 뭔가 어색한 '시츄에이션'을 뭐라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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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전쟁 상세보기
아리카와 히로 지음 | 대원씨아이(주) 펴냄
책을 둘러싼 전쟁과 사랑의 이야기를 그린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도서관전쟁』. 미디어의 검열을 강화하는 법률인 '미디어양화법'이 시행된 지 30년. 그 검열과 검열권의 무력에...

'도서관 전쟁' 시리즈라는 일본 원작의 라이트 노벨이 있나 보다. 그런데 작품의 배경이 독특하다. 가상의 일본에 국민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체를 검열하겠다는 '미디어양화법'이라는 게 생긴다. 방송, 신문, 잡지 같은 각종 미디어에서 비속어, 막장 스토리, 음란물은 물론 정부를 비판하는 일련의 것들을 싸그리 단속하겠다는 법이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그러한 법이 공표된 지 30년 후, 홍위병 마냥 미디어양화법에 따라 도서 검열을 일삼는 '양화대'가 있고, 그들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맞서는 이들이 있다. 특이한 점은 이들은 도서관을 근거지 삼아 양화대와 맞서 싸우는 '도서대'이다. 말하자면 사서들이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총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내전 상태. 하지만 양화대와 도서대는 총 들고 설치긴 하지만, 해방기 좌우익 '완장'들의 그랬던 것처럼 국가 권력의 방조 또는 무능 아래 지네들끼리 싸움질한다. 하지만 늘 미디어에 맞닿아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은 동화책 한 권 보려 하다가 이들의 싸움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 4권짜리 '도서관 전쟁' 시리즈는 라이트 소설답게 이 심각하디 심각한 상황 속에서 남녀의 로맨스를 중심 삼아 이야기를 펼치는 듯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양화대와 도서대 간의 대립은 꽤나 흥미롭다. 특히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는 바람에 이 법이 통과되고, 법이 집행되고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돌이키기엔 늦었다는 상황 설정은 웃어 넘길 수만 없다. 멀지 않은 과거에 표현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던 사전 검열이 있었고, 최근에는 정부 시책에 반하는 글을 인터넷에 썼다고 잡혀 가는데다, 일사부재의의 원칙 따위는 무시하고 미디어법을 강행 통과하는 '대한민국'을 볼 때 이는 소설 속 이야기라고 치부하기 힘든 제법 그럴 듯한 상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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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김성근이 책을 냈나 보다. 아웃사이더 시절과 달리 빵빵한 팀에 가더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데만 무게중심을 두는 듯하여 야구를 거의 보지 않음에도 늘 눈쌀을 찌푸리게 하던 그였기에 책이 나오나 보다 했다. 최근 연예인 책 발간 러시도 그렇고. 그런데 책 표지의 한 가지에 시선이 머물렀다. "박태옥 말꾸밈"

한마디로 김성근이 구술하고 박태옥이라고 하는 작가가 글을 정리했다는 말이다. 말이 좋아서 '정리'이지 실상 대필이라는 말이다. 정지영의 '마시멜로 이야기' 대필 논란 이후 차츰 '스토리텔링' '정리' 등의 이름을 달고 대필 작가가 공식적으로 책에 이름을 올렸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이 글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마당에 어짜피 대필은 필요하다. 다만 정지영의 예처럼 거짓말하거나 아닌 척한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부리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대필 작가가 양지로 나온 것이다. 바람직하다면 바람직한 변화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대필 작가는 음지에 있고, 유명인(과 출판사)는 자기가 책 썼네 하고 떠벌리거나 최소한 침묵한다. 거기에 "의외로 글 잘 쓴다" 하는 홍보성으로 의심되는 낯뜨거운 리뷰도 종종 보게 된다. 지인이 대필하기도 했거니와 그 사람 일정상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또한 대필 작가가 양지로 드러났다 하더라도 원작자가 얼마나 책에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원작자가 거칠더라도 초고를 쓰거나 정식으로 대필 작가와 인터뷰하면서 구술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필 작가가 취재해 혼자 다 써 놓고선 원작자가 쓱 훑어보고 오케이하는 건도 있다. 심지어 원작자는 보지도 못하고 매니저나 기획사에서 오케이하는 건도 있다고 들었다. 대필 작가도 없이 편집자가 자료를 여기저기서 긁어다 뚝딱 책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뭐...


둘.

한 출판사가 자사에서 발간하는 시리즈의 모니터 요원을 선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7권이 나왔는데 이 책들을 비롯해 앞으로 나올 시리즈를 모두 소장할 수 있으며, 각종 오프라인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혜택의 댓가로 각 권마다 서평을 작성해야 하고, "시리즈 홍보에 힘써"야 한단다. 일종의 공식화된 서평단이라 할 수 있는데 흔한 일이기도 하지만 좀 씁쓸했다.

모니터링의 사전적인 뜻은 "방송국이나 신문사 또는 기업체로부터 의뢰를 받고 방송 프로그램이나 신문 기사 또는 제품 따위에 대하여 의견을 제출하는 일."(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다. 즉 이 경우만 보면 책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출하는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서평을 쓰는 것으로 모자라 홍보에 힘쓰라 한다. 이러면 모니터링 요원이 아니라 홍보 요원 아닌가?

사실 서평단도 실제로는 출판사에게는 홍보의 도구일 것이다. 그것도 아주 유용한. 일간지 북섹션이 나는 것도 좋지만, 온라인 서점이나 블로그에 서평 한번 잘 올라오면 큰 돈 안 들이고 홍보를 할 수 있다. 독자 입장에서도 공짜로 책을 얻을 수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서평 원고료를 사전에 책으로 받는 것뿐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좋게만 보면 얼마든지 좋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됐든 댓가가 오가기에 순수한 리뷰라고 보기 힘들다. 책을 제공받고 썼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사람도 많다. 얼마 전 전문 리뷰어를 표방하는 블로거가 비싼 휴대폰을 제공받고 쓴 리뷰를 두고 말이 많았다. 그는 휴대폰을 제공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단점이나 문제점이 될 만한 것은 뒤로 몰면서 실상 칭찬 일색의, 리뷰가 아니라 홍보 자료를 올렸다. 리뷰와 서평이 다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리뷰는 비평적 접근이 요구된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크리티컬'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댓가로 받았기에 비평이 아니라 홍보를 하게 되는 것,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의 글을 보고 구입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나도 일전에 알라딘에서 주최하는 서평단 모집에 참여해 몇 편의 서평을 쓴 적 있다. 알라딘에서 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정작 글을 쓰는 데에는 모종의 자기검열이 작동했다. 좋거나 나쁘거나의 우열을 가르기 힘들다면 좋게 쓰는 게 그러한 서평 쓰기의 문제점이었다. 제공받은 책으로는 서평을 쓰지 않는다는 가오 선생의 말이 이해되었다. 알라딘 서평단의 모집 방식이 바뀌면서 나는 미련 없이 서평단에 새로 응모하지 않았다.[각주:1]

서평단 혹은 홍보단 자체를 나쁘게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은 유력한 마케팅 방식이다. 하지만 모니터링하라고 해놓고선 홍보하라고 하는 출판사나, 어찌됐는 댓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거나 나쁜 점을 은연중에 숨기는 리뷰어는 그것의 장점을 퇴색하게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덧.
난 애드센스나 TTB2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힘 안 들이고 공돈 버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엄연히 그것은 자기 블로그를 광고의 도구로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 알량한 몇 푼 버는 데 그치지만, 그로 인한 폐해는 블로그 구동 시간만 느리게 할 뿐이다. 블로그가 느려질수록 구독자는 더 이상 찾지 않거나 RSS리더로 대충 보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1. 고백하자면 지인의 부탁으로 서평을 쓴 적이 있다. 다행히도 부탁받고 쓴 글인지 모르는 지인의 동료에게서 "반드시 좋게 본 것 같지는 않지만"이라는 말이 나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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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거대한 전환 - 10점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길

홍기빈이 한겨레에 연재되는 '고전 다시 읽기'에서 자신이 지금 <거대한 전환>을 번역한다고 광고한 게 한 3년 전쯤인가? 그때 몹시 열받았다. 몇주 전에 8천 원짜리 박현수의 구 번역본을 무려 2만 원 주고 헌책으로 구입했기 때문이다. 대우학술총서로 민음사에서 나온 <거대한 전환>의 구 번역본은 헌책방 계에서 그동안 레어템으로 통하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운 좋게 구입했다 했는데, 새 번역본이 나온다니... 으하하하. 물론 박현수 본은 번역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아 예전에 읽을 때 좀 고생한지라 새 번역은 기대할 만했다. 게다가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폴라니 전공자인 홍기빈이 한다니. 하지만 해가 지나도 번역본은 나오지 않았다. 홍기빈은 공부하는 사람치곤 딴따라 기질이 얼굴을 물론 글에도 쓰인 사람인지라 그러려니 했다. 사실 이 칼 폴라니의 역작은 쉬이 변역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어설프게 나올 바에야 제대로 하는 게 훨 낫지 않겠는가? 그러다 작년에 참여사회연구소를 끼고 홍기빈이 번역본을 가지고 세미나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제는 나오겠지 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역시 그 해에 출간되지 못하고 올해 여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왔다. 책을 구입하기 전에 본사에 들렀다가 마침 계간지 편집팀에 있길래 잠깐 훑어봤는데 역시 기대할 만했다.

무려 657쪽이나 되는 홍기빈의 새 번역본은 차례만 훑어봐도 우선 풍성해 보였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발문이 14쪽, 프레드 블록의 해제가 29쪽, 루이 뒤몽의 프랑스어판 서문 26쪽, 그리고 옮긴이 해제가 30쪽. 이러한 부록(여기에 구 번역본에도 있는 로버트 매키버의 발문 6쪽 포함)을 빼도 500쪽이 넘는데, 계간지 편집자는 박현수 본이 완역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글쎄, 지인을 통해 캐나다에서 구매한 영어본(보스턴 Beacon Press)은 문고판에 대략 300쪽 정도였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쪽수가 늘어나는 것(구 번역본은 381쪽)과 과거의 빡빡한 조판을 고려할 때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차례 대조만 해 봐서는 누락된 부분은 없어 보인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 보면 그 말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을 듯.

대학 때 경제사회학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교수가 복사해 준 영어본 의 일부를 저본 삼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참고해 가며 떠듬떠듬 읽으면서 칼 폴라니에게 매료됐다. 그때 이후로 칼 폴라니에 대해 쭉 관심을 가져왔지만, 한국 땅에서 칼 폴라니는 좀체 인기가 없었다. 그의 책은 모두 절판. 나도 사회학과에서 경제사회학 수업을 듣기 전에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당시 학과 교수들에게 물어봐도 거의 대부분이 그의 이름을 모를 것을 확신할 정도로 그는 경제학계에서 그야말로 '듣보잡'이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우꼴들에게 사탄의 배후로 낙인찍힌 칼 마르크스가 차라리 나아 보일 정도. 그러다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식자층에서 칼 폴라니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단체로 약 먹었나 싶을 정도로 이전에 비해서는 꽤 많이 언급됐다. 그런데 이제는 새 번역본까지 나온다니. 상전벽해요, 격세지감이다. 나야 돈 삼만여 원이 더들긴 하지만 그 정도는 투자할 만한 게 바로 칼 폴라니의 역작 <거대한 전환>이다.

책 내용 자체에 대한 리뷰는 내가 논술 교재(?)용으로
예전에 썼던 글인 '시장의 신화를 벗겨 내다'로 대신해도 될 듯하여 여기서는 구 번역본과 새 번역본을 비교삼아 좀 끼적거리려 한다. 일단 두툼해진 두께와 함께 신 번역본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표지에 쓰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이다. 이제껏 블레이크를 시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림까지 그렸다니. 헛, 천재일세. 그런데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을 표지에 썼다는 것은 이 책을 아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폴라니는 이 책에서 블레이크의 시구를 인용해 자기조정적 시장을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라 칭했다. 산업화로 등장한 기계 때문에 제분소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이 스스로를 조정하다 못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요즘의 세태를 볼 때 블레이크의 저 시구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적확한 묘사이다. 또한 이 책의 내용은 그것에 대한 상세한 해설이다. 또 하나 드러나는 특징은 제목의 변화이다. 원제인 'Great Transformation'을 두고 박현수가 '거대한 변환'이라 한 반면, 홍기빈은 폴라니의 다른 팸플릿에 이 책의 두 장을 번역해 실은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에서 '거대한 변형'이라 했다가 새 번역본을 내놓으면서 '거대한 전환'이라 바꿔 칭했다. 이에 대해 홍기빈은 '옮긴이의 말'에 그 사연을 밝힌다.

글자 그대로 옮긴다면 '변형'(變形)이 적당하겠으나, 이 책에서 폴라니가 이 단어를 사용하는 맥락을 그렇게 옮기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라틴어에서 왔지만 그리스어 '변태'(metamorphosis)의 동의어이며, 굼벵이가 나비로 변하는 것과 같은 급격하고도 완전한 변화, 도저히 그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변화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또 이것이 바로 폴라니가 19세기 초나 1930년대의 급격한 사회적 형식의 변화를 'great transformation'이라고 부른 의도이기도 하다. 도저히 그전의 상태에서는 예측은커녕 상상하기도 힌든 바향으로 하루아침에 온 세상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 당시에 벌어진 사건이었으니까. (중략) 그런데 이 책에 수록된 루이 뒤몽의 프랑스어판 서문을 보면서 '전환'(轉換)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뒤몽도 이 책의 제목을 글자 그대로의 'transformation'으로 보기보다는 독일어 'Unwandlung'이나 프랑스어의 'retournement'처럼 '반전'(conversion)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나도 용기를 내어 이러한 의미에서 '변형'이 아니라 '전환'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야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변환'이라는 말을 새 번역본에도 그대로 썼으면 하지만, 루이 뒤몽과 홍기빈의 주장도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이며(정확히는 그런 것도 같고...이지만... ^^:), 구 번역본이 참조했다고 하는 일역본 역시 '대전환'(大轉換)이라는 제목을 채택하고 있다. 사실 '변환'이든 '전환'이든 이 자본주의의 빗나간 창조물인 자기조정 시장은 단기간에 인류에게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대표적인 게 허구적 상품, 이른바 토지, 자본, 노동을 상품화한 것이다. 지금의 우리야 돈 주고 땅을 거래하고, 돈을 빌리며 이자를 지불하고, 노동의 댓가로 임금을 받지만, 인류가 이것을 일상화하는 데에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급격한, 또한 대규모의 변환/전환을 남 다른 시선(시장 따위는 우연적 산물이며, 절대적인 준거도 아니다!)으로 찬찬히 설명하는 게 바로 이 책 <거대한 전환>이다. 하지만 경제학에 대한 기초적 개념은 물론 서구 근대 정치/사회의 변화사를 기본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선 쉽사리 진도 나가기 힘들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이따금 펴 볼 때도 당황스러울 정도라서 솔직히 구 번역본을 사고서도 여태 완독은 하지 못하고 중요하다 생각되는 장을 골라 읽었을 뿐이다. 역자 스스로도 "영어권 독자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는데, 최소 학점만 이수한 나는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잠깐 훑어본 바로는 번역의 질은 구 번역본보다 좀 더 읽기 쉬워 보이니 다행이다. 또한 영어본 말미에 실린 폴라니의 추가 설명을 각 장의 뒷부분에 옮겨 배열한 것도 이 책의 난해함을 덜어 내며 읽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자, 이제는 본격적으로 읽는 일만 남았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http://camelian.tistory.com2009-07-20T14:37:10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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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 피렌체편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 피렌체편 - 8점
김태권 지음/한겨레출판

<팝툰>에 김태권이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를 연재한다는 말에 덜컥 정기구독을 할까 했다. 아무래도 잡지를 매달 사 보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다소 목돈이 들고 꽂아둘 데가 없어 처분할지언정 볼 만한 잡지는 정기구독을 유혹한다. 하지만 아내는 그 만화는 어짜피 단행본으로 나올 거라며 정기구독을 말렸고, 나는 군소리 없이 아내의 말에 수긍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렀고, 나는 그 만화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그러다 신간 뉴스레터에서 접한 김태권의 새 책 소식. <십자군 이야기> 3권의 발간을 오매불망하는지라 김태권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가져다주는 기대감도 있는데, 거기에 그동안 내가 잊고 있던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를 단행본으로 엮은 거라니. 구매를 도저히 튕길 수 없었다.

문제는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라는 아주 드라이한 제목. 도대체 '르네상스 탐정 바사리'라는 제목에서 풍기던 '포쓰'는 어데 가고, 저런 '로마법 대전' 같은 딱딱한 제목이 남았단 말인가.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를 통해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궤적을 좇아간다는 애초의 콘셉트는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라는 제목에 짓눌려 버렸다. 이러나 저러나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점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이것이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미술사 책도 아닌, 위트와 유머로 기존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만화인 마당에 저런 제목을 단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책을 팔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팝툰에 연재할 때 서점에 가도 잡지가 온통 래핑된 탓에 정작 만화를 보지 못했는데 막상 단행본을 구매해 만화를 보니 재미가 없었다. 아, 실망. 만약 미리 봤으면 구매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래 김태권의 만화는 재미없었다. '창비주간논평'에 연재하는 '20세기 연대기' 또한 매주 챙겨 보기는 하지만 재미없다고 투덜거린 적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나름 유머를 구사하려 하지만, 잘해야 피식 웃게 하는 데 그친다. 혼자 재미있어하고 혼자 즐거워한다고나 할까? 사실 그에 매료되게 했던 <십자군 이야기>도 그자지 재미있는 '만화책'은 아니었다. 그의 재능은 만화를 재미있게 구성하는, 시쳇말로 '빵 터지게' 하는 능력이 아니라 역사와 시사를 넘나들며 기득권층의 위악성이나 문제의 심각성을 밝혀 내고 그것을 사정 없이 비꼬는 데 있다. 다만 비꼬는 기법이 기존의 만화(특히 웹툰) 문법을 따르지 않는 데서 어색함을 유발하고, 이것이 그의 만화를 재미없게 만드는 원인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장기를 잘 살렸지만, 재미있는 만화책이 되려면 저자 스스로가 좀 더 유머를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그랬다간 그의 장기마저 사라지기 십상이다.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는 분명 만화책이다. 그런 점에서 재미없는 만화책은 사장되어야 할 것이나, 만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말 또한 사장되어야 한다. 만화는 텍스트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저자의 주요한 서술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빵 터지게 하는 재미가 아니라 연속적인 이미지에 텍스트를 담아 내는 행위이다.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는 '미술지식만화'라는 레테르를 붙이고 있다. 즉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지식을 만화라는 텍스트로 전달하는 책이라는 말이다. 널리고 널린 게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인지라 그림을 자체를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림만 본다고 그림의 맥락을 아는 것은 천재가 아닌 양 쉽지 않으며, 설사 안다 해도 일부만 보거나 오해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려 해서인지 그림을 설명한 책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런 책들의 대부분은 '어렵다'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미술사학자 또는 미학자가 자신이 배운, 자신이 가르치는 언어로 설명한 대부분의 책은 그림을, 미술사를 잘 모르는 이들이 읽기에는 여전히 어렵다. 그런 점에서 만화라는 친숙한 서술 방식으로 독자에게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이 책의 가치는 높은 편이다. 저자 스스로도 학부에서 미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서양 고전을 배우는지라 스스로도 욕심이 나고, 또한 그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만화라는 서술 방식을 적용했다 해도 단순히 미술가와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참 재미없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바사리라는 실존 인물이 시간 이동을 해 전대의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탐구/조사한다는 접근 방식은 매력적이다. 14세기의 세계를 책으로만 본 얼토당토 않는 20세기, 21세기의 인물이 섣불리 14세기로 가는 것보다는 실제로 르네상스 미술가들을 열전으로 펴낸 바사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은 탁월하다. 그런데 출판사는 왜 제목을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라는 밀전병 같은 제목으로 밀어 버렸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책 자체가 재미없는 만화라는 점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평범 속에 비범을 가둘 때 작자는 스스로의 창의성을 잃어 버리기 쉽다.

덧.
TTB리뷰에 링크된 다른 리뷰
를 보니 잡지 연재분과 단행본은 꽤 다르다 한다. 어쩐지 탐정이라 하기엔 어딘가 어정쩡해 보이더니. ^^: 내가 긍정적으로 보았던 애초의 콘셉트는 아마 실패였나 보다. 그렇다면 제목의 변경은 이해가 간다. 내용이 바뀌었으니 제목도 따라서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제목은 너무나 심심하다. 거기에 애초의 콘셉트가 실패한 것도 애석하도다.
http://camelian.tistory.com2009-07-14T00:04:56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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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안티쿠스에서 메일이 왔다. 고전, 역사, 종교, 신화 등을 주로 실은 괜찮은 인문-교양 잡지였다. 하지만 정기 구독이 끝나고 곧이어 잡지가 사실상 폐간되는 바람에 잊고 살았는데 간만의 소식을 받았다. 혹시 재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감에 메일을 열어 봤는데, 아쉽게도 재간에 대한 소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실망 그 자체의 메일은 아니었다.

안티쿠스는 창간호부터 16호까지 전 권을 웹사이트에서 PDF로 제공한다. "과월호를 찾으시는 분들과 절판된 호의 내용이 궁금하신 회원 여러분을 위해"라는 메일의 문구를 볼 때 실상 폐간했음에도 과월호를 찾는 사람이 꽤 있나 보다. 그렇다고 이것을 다시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안티쿠스는 PDF로 공개했다. 당연스레 무료로. 고해상도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개인용 프린터로 출력해 보는 데에는 큰 무리 없을 듯하다.

발행인이 굴지의 인쇄-출력 업체의 사장 부인이었던 관계로 어느 정도 독자만 붙어 줬더라면 계속 나올 수 있었을 듯한데, 그 '어느 정도'를 채우지 못해 끝내 폐간됐다고 들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협소한 한국의 인문학 시장은 늘 아쉽다. 그래도 혹시나 찾을지 모르는 독자를 위해 선뜻 PDF로 제공해 무료(물론 웹사이트에 회원 가입은 해야 한다)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전 발행인의 결단은 그나마 그것을 메워 준다 싶다. 그런 힘으로 한국의 인문학은 그나마 버티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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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상세보기
김두식 지음 | 창비 펴냄
『불멸의 신성가족』은 사법을 주된 탐구 대상으로 삼고, 사법을 통해 우리사회 전체의 모습을 분석하고자 시도하였다. 본문에는 일반적으로 사법 하면 떠올리는 판검사, 변호사, 경찰, 민형사 소송 경험자는...

책이 나오기 전에 제게도 <불명의 신성가족>의 가제본이 전달됐습니다. 읽지는 않고 대충 훑어보기만 했는데, 부제에서 일단 어렴풋이 제목이 뜻하는 바를 유추할 수 있었죠. 또한 '김두식'이라는 저자명에서 이 책은 그의 전작인 <헌법의 풍경>이나 <평화의 얼굴>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표지가 없었기에 그동안 6권이나 진행된 '우리시대 희망찾기'라는 시리즈라는 점은 방기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받아들고서도 시리즈임을 알 수 없었죠. 뭐 제가 꼼꼼이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 가장 크겠지만, 기존 6권과 표지 디자인이 확연히 다릅니다. 또한 상징성 가득한 제목의 콘셉트도 다르죠. 익숙한 책등이 아니었다면 시리즈의 일부임을 한참 후에나 알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이 제목으로 인용한 엥겔스의 저작은 저 또한 읽어 보지 않아 내용은 모르나, '신성가족'이라는 단어가 전해 주는 느낌은 명료합니다. 거기에 부제에 기재된 '사법 패밀리'라는 용어로 볼 때 이 책의 성격은 제목만으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죠. 여기에 저자의 전작을 읽어 본 이들이라면 띠지의 문구를 보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불멸'이라는 수식어가 걸립니다. 그만큼 '사법 패밀리'가 그들만의 철옹성 안에서 스스로를 게토화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무언가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불길함을 전해 주는 듯합니다. 이는 책의 결말에서도 드러나더군요. '억지로 찾아본 희망'이라는 중제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문제 투성이의 '신성가족'을 어찌해 보지 못하고 "시민들이 두려움의 장막을 걷고 법조계를 향해 말 붙이기를 시작"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나마도 "해체될지도 모릅니다"라는 도망가는 듯한 뉘앙스로 말이죠. "외형적으로는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고 하지만, 저자는 '의사소통의 부재'와 '원만함'이라는 여전한 문제점을 제시하며 스스로 "방법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시민의 희망이다"라는 말은 줄 하나 댈 사람 없는 85.5%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억지로 찾아본 희망"에 불과하지요. 책을 읽으면서 손이 오그라들고 가슴이 미어터지는 와중에도 그래도 마무리에 가서는 제아무리 '불명의 신성가족'이라 할지라도 뭔가 흔들어 볼만한 '껀수'를 제시하겠지 하는 제 바람은 여지없이 휴지통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자의 위치나 시리즈의 특성을 볼 때 어쩔 수 없겠구나 했던 애초에 느꼈던 한계점이 확인받는 것 같아 조금 불쾌했습니다.


검사 생활이 짧았기에 그저 로스쿨 교수일 뿐인 '신성가족'의 외곽에서 맴도는 저자는 애초에 '법당밖에서 빙빙 도는 종교 전문 기자'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몇 안 되는 내부고발자들의 구술을 정리하는 책의 콘셉트 상 대안적인 결론을 낼 수 없었을 겁니다. 이건 인정해야죠. 본격적으로 사법 시스템 내의 문제를 내부 고발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일 테니까요. 게다가 저자 스스로가 꾸준히 면접하고 정리하고 기술해 나가면서 신영철 대법관 사태 같은 현 시점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을 신속하게 다루었다는 점 역시 장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동안 '신성가족'의 지배에서 고통받아 온 사람들을 통해 알게 모르게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에 그친다는 단점으로도 비칩니다. 생생한 내부고발자의 증언에 손이 오그라드는 분노를 야기할 수는 있지만, 정작 하경미 씨처럼 '개고생'을 해야 그나마 대들어 볼 수 있음을 확인할 때 독자는 스스로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시대 희망찾기'라는 시리즈 명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이러한 사법 패밀리들의 문제점은 사법 제도를 통째로 바꿔야 뭔가 개선의 여지가 있습니다. 미국처럼 사법시험이 아닌 로스쿨로 변호사를 양성하고, 일률적인 성적순이 아니라 공모로 판사와 검사를 선발해 양성하고, 추첨으로 된 배심원이 실질적인 판결을 하는 등 개선할 방향은 있습니다. 문제가 가득하긴 하지만 이미 로스쿨이 개교했고, 국민참여 배심원 재판도 시범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기의 시도를 접하지 않고 문제점만 고발하는 것은 열심히 분노해 온 독자를 허탈하게 하지 않나 싶군요. 그럴 바에는 나름 법 전문가가 굳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저자가 말한 문제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기자가 진행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의구심이 듭니다. 거기에 저자 스스로 "우습다"라고 실토한 정년 보장이 되고서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서두에서 밝힌 말은 짜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소 지엽적이지만 아쉬운 것 중 하나가 브로커들을 '신성가족의 제사장'이라 칭한 점은 재미있는데, 그것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신성가족'이라는 상징 가득한 제목 덕분에 딱딱한 고발서에 그쳐 보이지도 않죠. 하지만 딱 거기서라는 게 걸립니다. '신성가족'의 내부와 외부에서 똬리 틀고 있는 각종 군상들을 '신성가족'이라는 이름을 두고 저마다 상징화해 묘사했다면 조금은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표지의 이미지도 아쉽습니다. 굳게 닫힌 '신성가족'의 폐쇄성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자물쇠 모양의 이미지는 그리 보이는데 그 콘셉트와 제목의 서체는 어색해 보입니다. '신성가족'에는 좀 더 견고한 느낌을 준다면, '불멸의'에는 기왕 캘리그라피를 한 것 무언가 바스라 트리는 색깔과 서체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리 쓰고 보니 맨 불평만 가득하군요. 앞서 말했지만 읽는 내내 두 손이 오그라드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저 역시 85.5%에 속하는지라 나도 저리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함께 가능한 저 인간들과는 엮이지 않는 게 좋겠구나 수십 번 다짐하면서도 책 자체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재미있게 읽는다 말하면서도 "이거 참 씁쓸하구먼" 하는 속내는 끝내 감출 수가 없군요.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사내 인트라넷에 내부자 리뷰로 쓰였기에 TTB리뷰에 링크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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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점에 갔다가 익숙한 제목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첫 직장에서 만들던 잡지에 실렸던 연재물의 제목이었는데, 그 연재물을 묶어 단행본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 연재는 초등학교에서 만들기 같은 수작업 활동을 슬라이드 쇼 형식으로 지면에 담은 것인데, 내 스타일에는 다소 안 맞았다. 뭐 그래도 하라면 해야 하지 않나. 물론 첫 기사는 컨셉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는 비운의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그 후로 좀 했나 싶었는데 막상 목차를 보니 내가 작성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은 꼴랑 3개이다. 헛헛.


사실 출판사에서 자사 발간 잡지가 있으면 여러 모로 유용하다. 가장 좋은 것은 다량의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거다. 1-2년 정도 연재한 기사를 잘 가다듬으면(이게 편집 아닌가) 단행본 한 권을 뚝딱 만들 수 있다. 광고로 가득찬 잡지가 아닌 담에야  잡지 대부분은 적자이다. 그럼에도 출판사가 잡지를 내는 이유는 이러한 콘텐츠 확보 때문이다. 물론 적자를 감당할 수 없으면 폐간 또는 휴간하지만...


4년 반 동안 월간지를 만들었다 보니 그동안 직접 쓰든 편집하든 내가 관여한 기사를 엮어 내놓은 책이 몇 권 된다. 그것을 정리해 봤다. 이중 단행본 편집까지 관여한 것은 두 권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거드는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손으로 만든 책은 한 권도 없다.



'더이상' 잡지를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단행본을 만드는 일도 아니라서 내 손으로 만드는 책이 과연 나올까 싶다. 게다가 책이 아닌 콘텐츠의 묶음을 고민하는 지금의 나로서는 더더욱. 그래서 저 책들을 보면 조금 짠해진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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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축구의 전술, 알고 봐야 제대로 보인다! - 8점
이형석 지음/싸커라인(Soccerline)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을 드나들다 <현대축구의 전술, 알고 봐야 제대로 보인다!>라는 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접했다. 평소 축구 전술에 관심이 많던지라 낼름 구매했다. 정가 1.3만원이라는데 배송료 포함해 1만원이면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서점과는 유통 계약을 맺지 않고 웹사이트 직판과 옥션에서만 판매하는 게 흠이라면 흠.

예정된 날짜에 받아 본 책은 충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조금 놀라게 했다. 한 명이 디자인, 일러스트, 편집을 도맡아했다는 이 책의 디자인은 HWP로 편집한 듯 무척이나 심심하고 또 심심했다. 애당초 올 컬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책에선 축구장의 녹색 그라운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마치 해외 전지훈련을 나갔다가 녹색 잔디의 전용 구장이 아니라 맨땅 공설 운동장을 보고 당황한 느낌. 게다가 도중에 문단 하나를 통째로 날려 먹은 페이지가 있는가 하면 가독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타이포그래피, 빡빡한 여백의 설정 등, 책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보지 않은 이가 며칠 밤을 캐고생하며 HWP로 낑낑 됐을 뻔한 장면이 눈에 선했다.

한국 축구계나 출판계나 그 빤하디빤한 좁고 열악한 환경을 고려하면 사실 이런 책이 팔려 받자 얼마나 팔릴 것이며, 이런 책을 과감히 펴낼 출판사가 어디 있겠나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태생 자체를 축복해 줘야 하는 소중한 결실일 게다. (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 않은가. 심히 아쉽다.) 사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봐도 축구에 관련된 책 자체가 별로 없는데다, 그마저도 선수 가이드북, 에세이집이나 칼럼집에 불과할 뿐 전술 등을 다룬 축구 전문 서적은 가뭄에 콩 나 듯하다.

열악한 디자인에 비하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좋은 편이다. 전반부의 '축구 전술의 역사'와 '현대 축구의 이해' 편은 축구 전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내용을 적절히 채웠다. 우리가 흔히 뉴스나 해설로만 접해 실제로는 관념적으로 안다고 믿는 '압박 축구'와 '카테나치오' 같은 개념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어지는 포메이션 시스템별 전술의 상세한 해설과 시스템 간 대결 구도에 대한 설명은 포메이션이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한다. 특히 관념적인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맨유나 바르셀로나 같은 팀의 실제 사례를 거론하며 해설하는 점에서 좀 더 이해가 쉽다. (문제는 팀 간 구분이 잘 되지 않는 단도 일러스트.)

이런 축구 전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을 설명한 다음에는 홀딩-앵커맨으로 구성되는 중앙 미드필드진의 필수성, 로테이션 시스템, 유럽 3대 리그의 차이점 같은 축구팬이라면 가질 만한 질문 10가지를 두고 앞서 설명한 이론을 바탕으로 답해 준다. 특히나 해외 언론 등을 통해 유입되었다가 원개념이 이상스레 변해 버린 용어를 사용하면서 발생한 축구 전술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켜 준다.

제목도 제목인데다 마무리 글에서 밝히 듯 저자 스스로 '알고 봐야' 함을 강조한다. 그저 리모콘 들고 맥주캔 부여 잡고 편한 자세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숱한 경기의 연속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차츰 발전해 온 복잡한 전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볼 것을 주문한다. 그럴 때 비로소 박지성이 재계약을 한다 만다, 주전에서 밀렸나 안 밀렸나 같은 가십은 휴지통으로 밀어 넣고 축구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덧. 알라딘에 등록돼 TTB리뷰로 발행한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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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예수전 - 10점
김규항 지음/돌베개
대학에서 일반 교양으로 들었던 '서양사의 이해' 과목의 기말고사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예수의 죽음을 (신학적, 종교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 사회적인 이유를 들어 논하라."

칠판에 적힌 문제를 확인하자마자 속으로 '아싸라비야'를 외쳤다. 그리고 그야말로 일필휘지(日筆揮之)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답안지 앞뒷면을 빼곡히 채워 가며 답을 썼다. 총 소요 시간은 약 20분. 다 쓰고 나서는 점검해 보고 그럴 일은 없었기에 바로 답안지를 제출하고 퇴실했다. 속했던 동아리가 해방신학의 영향 아래 예수 복음을 하나의 운동으로써 삶과 사회에서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동아리이다 보니, 그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은 입회한 이후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공부하고 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하의 악필을 자인하는 나로서는 100명이 넘게 듣는 교양 수업에서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듯하다. 점수는 생각보다 안 좋았다. 결석으로 까먹은 점수도 좀 있었지만.

김규항의 <예수전>은 그런 동아리 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아주 식상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는 2천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율법 지상의 유대교 사회를 밑바닥부터 뒤흔들었고, 그 때문에 당대 기득권 세력의 견제를 받아 그야말로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돼 죽었다는 것. 김규항은 이런 예수라는 한 사내의 삶, 언행, 죽음 따위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그의 본 모습을 전(傳)한다. <예수전>에 드러나는 예수의 대척점은 교리의 대상이 되면서 우리에게선 죽어 버린 신이다. 그 신은 부자들의 신이며, 율법의 신이며, 타협의 신이며, 피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신이다. 하지만 김규항은 가난한 이들의 신이며, 율법을 깨 버리는 신이며, 불의에는 비타협적으로 맞서는 신이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에 현재했던 신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또한 예수는 신 이전에 한 인간이라 말한다.

이렇듯 <예수전>에 나타나는 주요 내용은 해방신학 관련 책 좀 읽어 봤거나 하다못해 이현주 목사의 <예수와 만난 사람들> 같은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에게는 아주 식상하겠지만, 반대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되뇌이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여기는 대다수의 기독교인에게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게다. 하지만 무엇이 2천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참 모습일까?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예수에 대한 신앙 또한 그렇게 믿을 게다.

김규항은 이런 예수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대본으로 마르코 복음을 골랐다. 4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였기에 종교적 첨가가 가장 적어 예수의 본 모습을 좀 더 전하는 복음서, 마르코 복음 말이다.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저본으로는 가톨릭에서 나온 <200주년 신약성서>를 썼다. 이 번역본에서 예수는 반말을 하지 않는다. 반말도 존댓말도 없던 언어로 말했던 예수의 이야기를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엄격한 한국 사회에서 올곧게 전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개신교회에서 강변하는 유일신을 강조하는 '하나님'이 아닌 보편자의 모습을 한층 더 살리는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즉 어떻게 하면 2천년 동안 오해로 가득 찬 예수의 본 모습을 제대로 까발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말이다. 평소 김규항의 언행에 학을 띈 나로서도 그의 선택에는 십분 공감한다. 그가 전하는 예수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로 공감한다. 문제는 기득권화한 교회와 불화한 채 살다 보니 예수의 복음을 점차 잊고 살아가는 내 모습일 게다.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발견한 것은 북디자이너인 안상수 선생의 몇 가지 디자인 시도이다. 파란색 합지 양장 커버에 안상수체로 제목 '예수전'을 뚫은 노란색 커버의 조화는 책의 만듦새에 관심이 생긴 내게는 재미있는 시도였다. 또한 본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끝맞춤 정렬이 아닌 왼쪽 정렬로 일관해 텍스트의 흐름을 변화를 준 시도 또한 생각해 보게 하는 시도였다. 물론 그것이 가독성을 더 떯어트릴 수 있다. 하지만 당대의 율법에 맞섰던 예수를 생각하면 양끝 맞춤의 틀에 사로잡힌 우리네 시각에 변화를 주는 그러한 시도는 유의미한 것이다.
http://camelian.tistory.com2009-05-13T11:25:13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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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드라마신화드라마 - 6점
최복현 지음/풀로엮은집(숨비소리)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라는 시리즈 제목에서 드러나는 그리스 신화의 계보도 부록이다. 이 계보도에는 카오스를 시작으로 제우스에게서 만개되는 신들과 인간들의 복잡하게 꼬인 계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사실 그리스 신화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를 비롯한 여러 구전, 필전되는 여러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힌 집단 창작물이기에 신화에 드러나는 군상들은 굳이 그들의 기행이 아니더라도 복잡한 관계 덕에 좀체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국전지 커다란 종이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신과 인간 들의 계보도는 그리스 신화를 좀 더 쉽게 접근하도록 이끌어 준다.

아쉽게도 이 책의 장점은 이 계보도 부록에서 끝난다. 본문은 평이한 서술로 그리스 신화의 주요 부분을 서술해 주고 있지만, 그것이 딱히 불핀치가 쓰고 이윤기가 번역한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쉽게 읽힌다고 보기 힘들며,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같은 천병희 선생의 원전 번역작보다 권위가 있다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사실 다만 이 책처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다일 뿐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에도 부록으로 신들의 계보도를 꽤 상세하게 제공한다. 물론 그리스 신화를 개작된 문학 작품으로 볼 필요도, 머리 싸매 가며 원전을 파고들며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대중 저술가가 쓴 어중간한 서술은 장점이 없다.

실제 내용 측면에서도 저자는 그리스 신화는 펠라우고스 신화, 오르페우스 신화, 호메로스가 전하는 신화, 헤시오도스가 전하는 신화, 네 가지가 얽힌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저자의 서술은 우리가 익숙한 후자 두 신화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렇다고 그리스 신화를 다룬 다른 책과 차이점도 없다. 저자 스스로 좀체 다른 해석을 내린다거나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보지 못하고 그저 이야기를 전해 줄 뿐이다. 신화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명한다는 인문학의 본 목적을 이행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더군다나 기존 그리스 신화 관련 책자를 분명 참조해 가며 서술했을 텐데도 참고 문헌이라 밝힌 책이 한 권도 없다는 것은 글쎄... 수십 종의 관련 서적이 난무하는 강호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행위이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그럴듯한 부록만 남는 책이다. 평이하게 쓰인 탓에 대중교통 이동 중 같은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좋긴 하지만...
http://camelian.tistory.com2009-05-13T10:51:190.3610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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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을 닮은 방 1 - 8점
김한민 지음/세미콜론

혜성을 닮은 방 2 - 8점
김한민 지음/세미콜론

혜성을 닮은 방 3 - 8점
김한민 지음/세미콜론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가 있다. 일반적으로 대개 대사의 비중이 높고 예술성을 추구한 '고급' 만화로 여긴다. 휙 보고 마는 종래의 만화와 달리 방대하고 굵직한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인물 간의 대사나 복잡한 상황 전개를 묵직하게 풀어낸 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세미콜론이나 시공사 같은 몇몇 출판사에서 펴냈는데 <300> <와치맨> 같은 영화화한 작품이 국내에도 출간되면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았으나, 기존 만화의 전달 방식과는 다르기에 국내에서는 대체로 시덥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일단 그래픽노블의 특징은 '코믹'하지 않다. DC코믹스나 마블코믹스 같은 'comic'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출판사에서 기획해 세상에 선보였지만, 이들은 만화답지 않게 전혀 웃기지 않는다. 이들은 대체로 어둡고 음습하고 우울하며 또한 잔인하고 마초적이다. 내러티브나 인물의 묘사도 앞서 말한 것처럼 복잡하기 그지없으며 방대하다. 게다가 대체역사라든지 (어딘가 있을 법하지만) 가상 현실을 다루면서 현실을 묘사하지도 현실을 초월하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만화의 테두리 안에서 출발했지만, 그래픽 노블은 사실상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구현한 소설, 즉 그림 소설로 보는 게 외려 적절하다. 사실 그래픽 노블도 직역하면 '그림 소설'이다. 하지만 문학 하는 사람들은 그래픽 노블을 장르 소설의 범주에 넣지 않고 그저 고급스러운 만화로만 여길 뿐이다. 물론 그래픽 노블과 만화의 경계는 상당히 모호하기에 소설로만 보는 것도 쉽지는 않다. <코르토 말테제> 같은 것은 그럭저럭 소설의 범주로 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지만 <땡땡>이나 <아스테릭스>는 어째야 하나? 답은 없다.


DC코믹스나 마블코믹스가 절대 다수이고 이따금 유럽 작품들이 번역돼 출간되긴 하지만 국내작은 손에 꼽을 만하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게 바로 김한민의 <혜성을 닮은 방>이다. 새만화책에서 나온 그의 데뷔작 <유리피데스에게>를 무척 감명 깊게 읽은데다 후속작인 어린이 그림책 <웅고와 분홍 돌고래> 역시 재미있게 본지라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혜성을 닮은 방>은 그의 이름 석 자만으로도 작품을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전작에서 드러나는 끊임없이 타자와 겪는 불통을 딛고 소통하려는 갖은 노력은 이 책에서 폭발해 버렸다. 게다가 '혜성'이라든지 '소우주', '에코', '그림자'처럼 우리가 일상에 쓰는 언어와 다르게 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선 작품 안 세계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작품 안 인물들의 묘사나 언행 패턴 역시 독자 따위는 무시할 정도로 복잡하고 생경하다. 그나마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면 독자로서는 그나마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할 수 없었을 듯. 아니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기에 텍스트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것일까?


전 3권으로 구성된 <혜성을 닮은 방> 시리즈는 혼잣말을 누군가가 몰래 기록해 그것을 도서관에 집적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한 명의 관찰자는 주인공인 혼잣말의 대상을 몰래 뒤따르며 그의 혼잣말을 녹음한다. 혼잣말은 한 사람의 사유인 동시에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유산이며 또한 세계를 가동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혼잣말은 기본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거나 거부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혼자만의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누군가 엿듣는다면? 그것은 소통을 역으로 거부하는 일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혼잣말 대신 대화할 것을 요구하거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소통'이다. 하지만 자폐증을 겪는 주인공은 쉽사리 소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역으로 타자가 그와 소통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일방적으로 소통하려 하면서 외려 불통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이는 그의 전작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고립된 자아와 불통하는 세계의 대립의 결정판이다.

전작의 고대 그리스의 한 폴리스, 정글 같은 단일하고 좁은 세계와 차원이 다른 작가가 새롭게 창조해 낸 복잡 모호한 가상 세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관찰자는 얼핏 그 밖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는 애당초 소통할 수 있을까? 그 역시 불통스러운 관계를 맺는다. 관찰자는 자꾸 개입하려 하지만 연구소라는 모종의 집단은 그것을 방해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소통과 불통, 자아와 타자, 그리고 세계의 대결을 전혀 흥미지진하지 않게 이야기한다. 알 듯 모를 듯한 모호한 개념 설정이 반복되는 가운데 적지 않은 인물들이 얽힌 창조된 세계 한가운데에서 독자는 갈피를 잃기 십상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앞서 말했듯 그래도 그림으로 이 모든 게 설명된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매력이 드러난다.

저자는 애당초 자신이 설정한 세계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 모른다. 말하자면 독자와 불통하려든다는 건데... 하지만 그림이라는 하나의 단초를 제시하면서 또한 소통의 장치를 마련하기도 한다. 텍스트로만 되어 있으면 독자 스스로도 제멋대로 작품을 이해하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왜곡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그림 소설'이라는 한국 출판계에서는 독특한 방식은 적절한 표현 방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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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특별판 - 전10권 - 8점
김만중 외 지음/민음사

올초에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 200권 돌파 기념으로 10종 특별판을 내놓았다. 인터넷서점에서 제공하는 이미지를 보자니 들쭉날쭉한 판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끄럼틀 지붕 박스, 그리고 책을 고른 기준의 모호함 따위의 이유로 '얼씨구 씨잘데기 없는 데 돈 썼네'라고 넘어갔다. 그리고 후배가 그것을 살까 말까 물어봤을 때 이 같은 이유로 분명 후회할 거라 했다.

어제 민음사 대표인 장은수 씨의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저 특별판의 아주 일부만 흘겨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강의의 핵심은 책의 정의, 그리고 물성(物性)이었는데, 강사는 그러한 정의와 물성을 파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 특별판은 그러한 실험의 일환이라는 거다.

박스 세트라는 상품이 가져다주는 고정관념은 일단 들쭉날쭉한 판형에서 파괴된다. 컬렉터가 아무리 꽂아 두는 것을 좋아한다 해도 쫙 '가오'가 난다 해도 시리즈가 똑같은 판형으로 일률적으로 꽂아 두는 것은 인류가 수백 년째 고수해 오고 있는 '지난' 시대의 방식이다. 물론 나는 가오를 중시하기는 하지만, 발상이라는 것은 전환해 봐야 하는 거고 고정관념은 깨 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 밖에도 이 시리즈는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서모컬러 잉크를 사용한다든지, 잉크가 번지지 않는 초고가 용지를 쓴다든지, 고전의 전형적인 텍스트 배치 방식을 바꾼다든지, 자수 기법을 도입해 수제작 장정을 하는 등 다채로운 디자인 방식을 도입했단다. 자세한 것은 민음사에서 제공하는 동영상을 보면 된다.

동영상 내려받기(마우스 오른쪽 버튼 눌러 '링크를 다른 이름으로 저장' 누르기)

대체로 이 특별판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나처럼 들쭉날쭉한 판형부터 문제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싼 가격에 낱권 판매를 안 한다는 사람에 심지어 책에 쓸데없는 인테리어질한다는 사람도 있다. 책의 선정 기준이나 여전한 오탈자 문제야 출판사를 탓할 만하다. 하지만 책이 이러한 꼴로 나오게 된 맥락을 이해하지 않은 채 그저 돈질한다고 하는 비판은 당최 이 특별판, 나아가 이 출판사의 실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아주 당연하게도 이 책은 일반 대중을 위한 책이 아니다. 북리펀드로 책을 되파는 사람이나 도서관에서만 빌려 읽는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책을 소장할 만한 자산으로 보고, 수집 가치가 있다 싶으면 과감히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물론 척박한 한국의 출판 시장에 이러한 자는 아주 극소수이다. 하지만 애당초 2000세트 한정판이라 한 것은 그런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게 잡아도 2000명을 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특별판 발행을 최종 결재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인지 모르지만 이 책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다. 모든 컨텐츠가 디지털로 전환할 것을 강요받는 이 시기에, 오로지 책만이 가지는 여전한 가치를 지키고 높이는 이 시도의 결과는 앞서 말한 대중의 불평과 출판사의 적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실험이라는 점에서는 이것은 분명 자산이 될 것이다. 적어도 한국 땅에 이렇게 북디자인을 놓고 적극적으로 실험한 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칭찬은 했는데... 저 시리즈를 살 요량은 없다. 값도 비싸고 둘 데도 없고 문학에도 별 흥미가 없다. 산다 해도 다른 책 살 돈 2달치를 떼려 박아야 하는데 그러기도 쉽지 않다. 다음주에 구경이나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Posted by En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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