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상세보기
피터 박스올 지음 | 마로니에북스 펴냄
최고의 고전과 문제작을 집대성한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 . 다양한 분야의 책 중에서도 소설 문학의... 인류의 정신적 지도를 그려온 1001편의 작품들을 망라하였다. 이 책에서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

알라딘에서 사은품으로 온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1권>.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을 국내 발간작 중심으로 추려 사은품으로 제작했다는데... 맨 뒤편에 나온 체크리스트를 보다가 문득 발견한 사실.

'이거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1권' 아냐?'

아이작 아시모프의 <나는 로봇>(이 책에 이미지도 쓰인 우리교육에 나온 번역작은 <아이, 로봇>인데...)부터 존 밸빌의 <바다>에 이르는 101권의 책은 모두 소설이다. 앨런 무어의 <왓치맨>은 만화로도 보는 사람이 많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래픽 노블'이라는 소설의 한 유형으로도 보기에 소설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 사은품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1권>이라 해야 옳다.

그런데 원작인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은 어떨까? 국내 비발간작도 꽤 되는 1001권의 목록을 일일히 확일할 수 없지만, 대충 훑어보니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1001권>이라 해야 옳을 듯.

이쯤 되면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국어 교과서 편집자 맞나?) 나로서는 눈쌀이 찌뿌려진다. 젠장 문학만 책인가? 문학 가운데서도 소설만 책인가? 투덜투덜. 가뜩이나 작년에 만든 교과서 심사본에 문학 작품이 적다는 불평을 듣고 기분이 언짢은데(문학=국어는 아니잖소!) 뭐 이래?

책 소개에는 "소설 문학 작품 1001편을 담았다" "소설이 왜 주목받는지, 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는지에 대한 대답이 효과적으로 담겨 있다."라는 문장이 적혔지만, 글쎄... '책'이라 해 놓고 '소설'만 이야기하는 책은 한마디로 눈꼴시렵다. 원제 자체가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이라 하지만, 번역해 내놓으면서 출판사에서 '편집'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일단 소설과 책을 구분 못하는 피터 박스올이라는 '문학' 교수에게 육두문자를 퍼부어야겠지만...

사족: 내가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인문학의 한 축인 문학의 영향력과 위상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소설(문학)=책으로 놓은 사고방식이 마음에 안 들 뿐이다.
Posted by Enits
,
디자인하우스에서 나온 <리얼 아틀라스 리얼 월드>라는 책이 있다. '지도, 통계를 만나다'라는 부제답게 각종 통계를 바탕으로 세계지도를 '조작'해 보여 준다. 가령 인구 통계를 바탕으로 하면 우리가 흔히 보는 세계지도와 달리 중국과 인도가 드립다 커진다. 기계 수출량 통계를 바탕으로 하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된다. 이런 식이다. 똑같은 세계지도가 통계에 따라 변하는 아주 일관된 패턴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들춰 보는 맛이 있는 책이다. 특히 나처럼 지도에 환장한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만한 이 책의 머리말을 보다가 이맛살이 찌뿌려졌다. "마케도니아의 독립하기 전 유고슬라비아"이라는 문구인데 이 단어에는 아주 친절하게 원문이 적혀 있다. 'the Former Yogoslav of Macedonia'.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역도 이런 오역이 다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전공과 상관없는 전문 번역자의 작품이다. 편집자도 모르고 패스해 버린 듯.

엠블 시절 '알아봤자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시덥잖은 이야기 #1'이라는 글을 올린 적 있다. 그 글은 바로 the Former Yogoslav of Macedonia에 관한 내용인데, 요약하면 이것은 '구 유고슬라비아(였던)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 번역해야 한다. 과거형인 '마케도니아의 독립하기 전 유고슬라비아'과는 아주 다른 현재형의 말이다. 자세한 내막은 링크된 글을 참조하면 될 것이고, 중요한 것은 오역도 오역 같지 않은 게 나왔다는 것인데... 거참.

책에 홈페이지 주소도 공개돼 점잖게(라고 하지만 공개적으로 망신 좀 주려고)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오역을 지적하려 했더니. 거참.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디자인하우스 브랜드 사이트'라는 셀렉트바에는 단행본 출판부의 사이트 따위는 없다. 기껏 있는 게 '디자인하우스 북스'라고 영어로 된 배너인데, 이것을 클릭하면 당사의 쇼핑몰 가운데 책 부분과 연결된다. 그냥 단행본 출판부의 게시판 같은 게 없기만 했으면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다. 게시판은커녕 홈페이지도 없는 출판사가 한가득인데 그런 것으로 태클걸기엔 사람이 좀 쪼잔해 보인다. 그런데 쇼핑몰과 연결시키는 행태가 좀 짜증났다. 아니, 부아가 치밀었다. 소통을 원하는 이에게 책 팔 생각을 하다니. 홈페이지를 뒤져 보니 편집장(친하지는 않지만 사실 아는 사람이다)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별자리가 어떻고 하는 자기 소개는 있는데 독자와 소통할 공간은 없다. 양심이 있는 것인지 의례적인 것인지 이메일 주소는 있지만, 그쪽으로는 따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꼬우면 오역하지 말던가. 나 또한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만든 책이 어디인가에서 씹히면 기분 참 나쁘다. 그리고 TTB리뷰와 링크시키려다 애초에 내가 설정한 블로그 원칙과 위배되는 관계로 그냥 글만 올린다.
Posted by Enits
,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2009) 상세보기
열린책들 편집부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09년 개정판이 나왔다. 2008년 판이 일찌감치 품절돼 구매자들이 이리저리 수소문하게 했다는데, 그때마다 열린책들의 대답은 "2009년 판을 기다리세요"였단다. ^^;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알라딘의 설명을 보니 다음 같은 부분이 눈에 띈다.

이번 2009년판의 변화된 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2008년 10월 개정된 <표준국어대사전>의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여, 수정된 사항을 모두 반영했다. 둘째, 저작권 및 제작 관련 내용을 대폭 보강했다. 셋째, 순화해야 할 출판 편집 용어에 대해 논의하는 '새 이름을 지어 봅시다' 난을 마련하여, 책에서는 온갖 말을 벼리면서도 정작 업무 중에는 부적절한 용어들을 무분별하게 쓰는 세태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10.9사태'라고 일갈했던 지난해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 반영했다니 2008년 판을 가진 나도 지갑을 열게 만드는구나. 맨땅에 헤딩하듯 일일이 찾아 헤매며 고생했을 열린책들 편집자들의 노고가 눈에 선하니 이 얼마나 착한(?) 행위인가? 게다가 정가 5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사실 2008년 판은 3500원이라 무려 42.85% 인상했다 ^^;). 사실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지만 내부용으로 만드는 책을 조금 여유 있게 찍어 시중에 내놓는 만큼 비싸게 가격을 책정했다가는 욕만 먹겠지.
Posted by Enits
,
양극화 시대의 일하는 사람들 상세보기
이병훈 지음 | 창비 펴냄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의 다섯번째권으로 출간된 이 책에서는 날로 심각해지는 노동양극화를 직시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환경미화원에서 변리사까지 28명의...

얼마 전 <우리시대 희망찾기>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을 펼쳐들었다가 놀랐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우리시대 희망찾기' 씨리즈는 희망제작소가 [삼성로고]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집필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리즈를 기획한 박원순/이회영이 쓴  발간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삼성은 '우리시대 희망찾기의 연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연구기금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어랍쇼? 민간 싱크탱크라는 데에서 민주주의, 교육개혁, 국가 재정, 시민사회, 양극화, 환경 갈등을 연구해 논한 책이 삼성의 돈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다른 것은 둘째치더라도 태안 앞바다를 기름으로 뒤덮어 놓고도 50억원 외에는 못 내놓겠다는 후안무치 삼성의 돈으로 환경 갈등을 다루는 책을 만든다... 이것을 뭐라 설명해야 하나? 자기를 까는 책에도 기꺼이 돈을 내놓는 삼성의 대인배스러움을 찬양해야 할까? 영혼을 팔아서라도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내겠겠다는 희망제작소의 결연한 의지를 칭송해야 할까?

1월 29일자 한겨레에 김기원 교수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성 돈 안 받는다고 학회가 문 닫는 건 아니며, 삼성이 교수들에게 보내주는 해외여행 안 간다고 인생이 비참해지지도 않는다"
- <[삶과경제]나훈아를 본받자> 중에서
이 말을 거꾸로 하면 꽤 많은('무척 많은'이겠지만 --;) 학회는 삼성의 돈으로 운영되며, 꽤 많은(역시 '무척 많은'이겠지만 --;) 교수는 삼성의 돈으로 해외여행을 간다는 말일 게다. 그러고 보니 인문학 교육을 통한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인 '성 프랜시스 대학'도 삼성 돈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교육기회 균등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고른기회 장학금'도 이건희가 사재 출연(사법 처리를 면하는 조건으로 출연한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좀 더 알아봐야겠다.)한 돈이 종잣돈이다. 아, 이놈의 세상에는 삼성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구나.

물론 삼성의 돈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크다. 노숙인들이 재활하고, 가난한 집 아이가 학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그런데 그것이 과연 삼성이 선한 뜻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내놓은 '눈먼' 돈일까? 악랄한 삼성에게서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 돈 마른 공공 영역에 투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설득력 있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라고 양잿물까지 마셔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김 교수의 말처럼 "삼성과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생존을 걸지 않아도 될 땐 최소한 자존심을 지키자"라는 그의 주문도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럼 점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현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개혁의 전망을 모색하는" 데 굳이 삼성의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연구 성과가 아무리 좋을지언정 판권에 박힌 삼성 로고가 있는 한 우리 시대에 희망은 폭풍우 앞에서 켠 촛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Posted by Enits
,
시사인에 실린 '2009년 인문·사회출판 지형도는?'이라는 기사가 널리 회자된다. 올해 어떤 책, 특히 인문/사회 분야의 책이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은 제법 즐거운 일이다. 도저히 인문/ 사회 분야 전문 출판사라 할 수 없는 출판사가 리스트업되긴 했지만(맛이 갔다고 해도 목록에 빠진 출판사도 있는데...)대체로 올해의 인문/사회 분야 출판 시장의 경향성을 대충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정말 가오 선생 말처럼 저 책들이 2009년에 나올 수 있을까? 바짝 말라 붙다 못해 쩍 갈라진 저수지 밑바닥 같은 인문/사회 분야 출판 시장의 정황상 저 책들의 반이라도 독자의 손에 전해질 수 있을까? 이런 책이야 나오면 나올 수록 좋다지만 그 책들이 경기탓, 정확하게 말하면 독자탓에 사장되어 버리는 것보다 나쁜 건 없다.
Posted by Enits
,
테르미도르 파는 이제 왕당파에 대하여 자기들의 보수적 공화주의가 공화주의 원칙에 얼마나 철저한가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테르미도르 파는 군주주의에 반대하는 것만큼 민주주의에도 반대하였다. 테르미도르 파의 공화국은 자유주의적이고 부르조아적이었으나 민주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 정책은 상퀼로트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물리치는 동시에 왕당파의 왕정 복고도 거부하면서 부르조아적 규범 안에서 혁명을 안정시키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오른편에서는 왕당파의 공격을 받고 왼편에서는 서민 계급의 압력을 받았다. 이 공격과 압력을 적절히 배제하면서 부르조아적인 정치 체제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테르미도르 파의 정책은 시종 안정성이 없고 늘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다. 그 정치 체제가 쿠데타를 반복하다가 혁명의 본질적 획득물인 1789-1791년의 성과를 확보하기 위하여 드디어 나폴레옹에게 인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거기 있다. 이렇게 본다면, 테르미도르 파의 공화주의적 이념이라는 게 결국 '1891년 입헌 군주 정치'의 이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794년 여름에 뒤를 돌아다볼 때 국왕은 이미 시해되고 없었다. 거기서 결국 군주정을 회복할 수는 없고 공화정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말을 바꾸면, 테르미도르 파의 이상은 국왕 없는 입헌 군주주의였다. 이 모순에 해결의 길을 제공한 것이 바로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e이다.
- 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1789-1871> 125쪽


Posted by Enits
,
일전에 헌책으로 샀던 노명식 선생의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1789~1871>라는 책을 읽는데, 제아무리 역사는 좋아해도 워낙 숫자에 취약한 뇌를 가졌기에 정신 없이 진행되는 프랑스 대혁명의 사건이 너무 복잡해 아놔~ 해 버렸다. 숨가쁘게 진행되는 혁명의 과정이 재미있기에 망정이지 마구 튀어나오는 익숙지 않은 프랑스어 단어에 뇌가 꼬일 뻔해 책을 집어던졌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1980년에 나온 책치고는 잘 읽힌다는 생각도 든다.

'테르미도르 9일의 반동'으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종식되는 부분까지 읽었는데 이때까지 일어난 혁명의 주요 사건만 정리해 본다. 혁명이 순식간에 일어나 루이 16세의 목을 잘랐다고 알고 있었는데(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후 루이 16세가 2단 분리되는 데는 3년 반이 걸렸다), 생각보다 혁명은 여러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이제 총재 정부의 수립과 '영웅' 나폴레옹의 등장, 그리고 공화국의 몰락이다. 물론 책 제목처럼 파리꼬뮌까지 다룬다지만, 사실 내 관심사는 개판 오분전의 프랑스가 어떻게 세계사의 귀감이 되는 공화국을 수립하고 지켜냈는가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이 합법적으로 권력을 쥐는 과정을 분석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적용될 단초를 살펴보는 것이다.
Posted by Enits
,
출판사 들어오면 상당히 많은 일본어 비스무리한 용어에 고개를 갸우뚱하기 마련이다. 짬밥이 먹어 가면서 차츰 알아가지만 끝내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모르는 말도 많다. 가령 '누끼'라고 해야 할지, '눗기'라고 해야 할지 긴가민가 하는 것처럼. 게다가 이것의 정확한 뜻은 무엇이며 어원은 무엇인지 뭐라 바꿔 쓰면 좋을지에 이르기까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일은 수도 없이 많다.

팀 선배가 작성한 것을 무단으로 전재해 본다. 선배도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취합해 정리한 것일 텐데, 이런 것이야말로 '편집'이 아니던가? ^^;

소통을 위해서는 이런 일본어식 용어를 써야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왜 쓰이냐, 무엇을 말하느냐일 것이다.



Posted by Enits
,
오래 전에 사두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펼쳐 보지 않았던 헌책을 꺼내 펴 보았다. 면지에 적힌 84년의 기록. 학교, 학과, 학년, 그리고 두 개의 이름(아마도 사 준 이와 받은 이인 듯). 그리고 이어지는 누리끼리한 바랜 종이들...

책은 저자 서문에서부터 밑줄이 한 가득이다. 책을 죽 넘겨 보니 적으면 1/3, 많으면 2/3 정도 밑줄이 그어져 있다. 그것도 모나미 173 볼펜을 자 대고 쭉쭉 그은... 아마 저학년들이 학습을 열심히 하려고 티 낸 흔적이겠지. 이따금 붉은 색 볼펜으로 중요함을 강조한 부분도 있고, 동글뱅이나 연번이 쳐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정도로 밑줄을 그어 놓으면 무엇이 중요한 부분이고 무엇이 덜 중요한 부분인지 어떻게 알까나? 책의 원 소유주의 집요함은 책의 마지막 문단에까지 밑줄을 쳐 놓는다. 밑줄이 안 그어진 속표지와 미주뿐. 차례에도 동글뱅이가 쳐져 있다.

초심자들은 책을 읽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을 때 일단 그어 놓고 본다. 그러다 보면 줄은 한 면을 가득 채우기 일쑤다. 왜냐면 다 모르는 내용이 줄줄이 나오는데 뭐가 중요한지 뭐가 덜 중요한지 알 수 없기 때문. 그리고 나름대로 성심성의를 부린다고 자 대고 밑줄을 긋는다. 초심자들이 그렇다면 중급 이상들은 안 그런다는 말. 한 면에 그치지 않고 길게는 한 챕터를 다 읽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밑줄이 서너 줄을 넘을 것 같으면 밑줄 대신 박스를 친다. 그리고 의문점이나 더 생각해 볼거리가 있으면 여백에 뭐라 적어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다 노트에 옮겨 적는다. 당근 노트는 삼공노트이다. 옮겨 적은 것들은 다른 책을 읽으며 해결한다. 그리고 책을 다시 읽는다.

그런데 그다음 단계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Posted by Enits
,
필자나 역자는 물론 출판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의 결정체인 '책'에게 '50% 세일'이라든지 '7천 원 균일가'라든지 하는 말은 가혹한 세상살이의 징표이다. 엄청난 출판 시장의 불황기에 결국 출판사들은 언 발에 오줌 놓기 형식으로 덤핑을 시작했다. 이미 예견했던 바. 하지만 막상 그리 접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게로 달아 팔아도 시원찮을 책이 있으면, 고이고이 서가에 모셔 두고 틈틈이 꺼내 볼 책도 상존하는 법. 괜찮으나 도무지 안 팔리는 책만 내놓는 모 출판사도 결국 제살 깎아 먹기의 대열에 나섰다. 그 출판사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16만 원짜리 책을 전부터 탐냈는데, 마침 30% 할인으로 나오기에 접수할까 했더니 결제가 전처럼 5% 할인으로 되는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시스템 오류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기다렸더니 아예 5% 할인으로 수정됐다. 헛. 이럴 수가. 거기에서 나오는 적잖은 적립금을 산울림 박스 세트 사는 데 쓰려 했는데... 흑흑.

아무튼 10% 할인해 주는 다른 인터넷 서점이 있어 그쪽에서 주문했다만, 왠지 그 출판사들의 괜찮은 책이 아른거린다. 그 책이 아니면 그 책만큼의 다른 책도 사랑해 줄 텐데... 사실 그 책은 한정판이기는 하지만 16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아무도 쉽게 사려들지 않을 테니 품절되는 일은 생각만큼 일어나지 않을 텐데.

요즘 같은 세상 책 한 권 못 살 형편이라 꼭 필요한 책도 덜덜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실탄으로 싼값에 사 들이는 인간도 있을 게다. 물론 나라고 전자였던 적이 없을까? 대학 시절 지지리 책 안 읽던 데는 어려운 책만 읽어야 할 것 같은(혹은 읽으라고 강요 아닌 강요을 받은) 강박도 강박이었지만, 살 돈도 꽂아 둘 공간도 언제나 넉넉지 않았던 연유가 살포시 숨어 들어 있다.

괜히 안쓰럽다.
Posted by Enits
,


내 아무리 핑크 플로이드의 팬일지라도 정규 앨범 14장을 묶은 CD 16장짜리 박스 세트가 나왔을 때 꿈쩍하지 않았다. 다시는 수입되지 않는 한정판이라고 쇼핑몰이 뽐뿌질하고 실제로 각종 포스터와 스티커 등이 포함된 패키지라 군침이 날지라도 14장의 앨범 중 2장을 빼곤 이미 가지고 있으니 딱히 사야 할 메리트가 없었다. 물론 눈먼 돈 22만원이 난데없이 생기면 고민 좀 하겠지만...

그런데 예약 판매를 시작한 산울림 전집 17장짜리 박스 세트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내가 가진 산울림 앨범은 2집과 3집, 그리고 3장짜리 컴필레이션이 달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요작 2~3장만 더 가졌어도 유혹에 견뎌 보겠는데, 1집을 중고로도 구매하기 힘든 마당에 전집 박스 세트라니... 게다가 엘피 미니어쳐에 150쪽 양장 부클릿이라니... 재발매를 하는 로엔(듣보잡 음반사인 줄 알았는데 YBM서울음반의 새 이름이란다.)에게 절이라도 할 태세이다. 하지만 17.8만원이라는 가격은 만만치 않다. 한 달 용돈 탁탁 털고 점심을 한 달 내내 라면으로만 먹으면 가능한... 하하...

경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대박 고가 상품은 꾸준히 나온다. 줄줄이 글이 길어지지만 그냥 지워 버렸다. 아씨바 욕 나온다.
Posted by Enits
,

현 직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근무 조건은 도서구입지원비 지급이다. 일정 한도 안에서 도서 구입비의 60%를 지원해 준다. 몇 가지 제한 조건이 있긴 하지만, 책값의 40%만 더 지출하면 책을 꽤 많이 살 수 있다. 입사 초기 팀장은 이것을 설명하면서 자기는 읽든 안 읽든 한도액을 꽉 채워 산다고 했다. 책 지름질을 좋아하는 나로서 마다할 리가 있나? 1월부터 지금까지 한도액을 꽉꽉 채워서 때로는 1-2천 원 정도 초과하면서 책을 사들이고 있다. 물론 지원비가 나온다 하지만 엄연히 40% 만큼의 비용은 지출해야 하는 만큼 아내는 도끼눈을 뜨지만 아내의 책까지 일정 정도 지원비로 사면서 입막음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왠지 이 한도를 안 채우면 손해 볼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다 언제까지 지금 회사를 다닐지 모르지만 서가를 채울 수 있을 때 팍팍 채워 놔야 나중에 놀아야만 할 때 덜 괴로울 듯싶다. ^^;


사는 건 둘째치고 이 책을 다 읽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한 달 내내 꼬박 읽어도 감당하기 힘든 양을 매달 사들이는 통에 사실 만화책을 제외하곤 책은 그저 꼽아 두는 용도로 쓰는 건 사실이다. 특히 알라딘에서 중고샵을 개장하면서 초반에 중고의 특성상 한정 상품이라는 데 혹해 마구잡이로 사들이기도 해 더 문제이다. 이 속도로 가다간 내년에 이사를 가야 할 때 이삿짐센터 사람들로부터 한소리 들을 하지만, 재작년 비로소 처음으로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기까지 그동안 언제라도 거처를 옮길 수 있도록 가능하면 짐을 주려야 했는데다 학비와 생활비를 근근이 조달하느라 책 한 번 제대로 못 사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책은 살 수 있을 때 사 놔야만 할 듯하다. 하지만 원칙은 필요한 법. 에세이 류처럼 한번 툭 읽고 마는 책은 가급적 제외하고 인류사의 고전이나 개념 정리 사전 같은 두고두고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 그리고 일단 꽂아 두면 집안의 품격을 높이는 가오 지향의 책을 주로 사려 한다. 물론 그것은 바람일 뿐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는 책을 사면 서평이라도 쓰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서평을 쓰기는커녕 제대로 읽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매달 두세 편 정도는 꼬박꼬박 서평을 쓰려 노력한다. 비록 쓰지 못하더라도 읽으려 노력하지만, 펴 보기만 하고 끝내 읽지 않은 책이 무척 많다. 그래도 그렇게 책으로 채워져 가는 서가를 보면 위는 굶주려 있어도 배가 부른 듯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가뜩이나 출판가 불황이라는 말이 많은데 책 만드는 사람,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사 줘야 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3개월 된 아이도 나 닮아 책이 좋은지 거처인 안방보다 책 먼지 가득한 서재방을 더 좋아한다.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대견하다. 아마도 점점 내가 읽는 책보다 아이가 읽을 책이 많아지리라. 그리고 아이가 제법 크면 나랑 서로 자기 책을 사겠다고 싸우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거기에 아내도 한몫 거들겠지. 생각만 해도 흐믓하다.



합계를 내 보니 171권을 샀고 그중 2권은 되팔았으니 결과적으로 169권을 산 셈이다. 참 징그럽게도 많이 샀다. 서가가 대번에 포화 상태에 이르었다. 그런데 이중 만화책을 빼면 한 30권쯤 읽었을까? 아니 20권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Enits
,

[국내도서] 위대한 도전이 낳은 인류의 명작 세트 - 전4권


예담에서 이번에 '위대한 도전이 낳은 인류의 명작 시리즈'를 내놓았다. 나처럼 가오 지향형 책에 잘 뽐뿌질 당하는 인간 만을 위한 책인데, 비행기, 범선, 자동차, 자전거의 '역사'를 다룬다는 이 시리즈 세트 가격은 25만원. 손간 허걱 하는 소리가 나온다. 가격부터 이 책을 팔려고 만든 책인지 의심이 들지만,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리뷰를 보니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와 같은 판형이라 한다. 가로 361mm 세로 267mm 320쪽 양장본. 나름 크다 생각하는 우리 집 서가에도 꽂지 못하는 그 거대한 판형 말이다. 램프의 바바 같은 웃음이 인다. 음홧홧홧홧.

하지만 탐/난/다. <조르주~>와 '세계문명 시리즈'는 비록 올바로 꽂아 두진 못하지만 이따금 폼 좀 내면서 읽기에 좋은 책 아닌가. 게다가 몇 년 뒤 아들과 함께 학습의 목적으로도 충분히 볼 수(아니다, 이 녀석 책을 자꾸 찢어댄다. ^^;) 있다. 하지만 세트 25만원 각 권 8~10만원은 만만치 않다. 그런데 발견한 사실 각 권 8~10만원인데 세트는 25만원? 8+8+8+10=34만원인데, 그러면 세트는 무려 9만원이나 깎아 판단 말이야? 얼마전 79%나 할인해 주던 알라딘 수입 앨범 파이어셀러 행사를 바빠서(실제로는 뒤지기 귀찮아서) 못 뒤지다 리스트에 모셔 둔 탠저린 드림 박스 세트를 날려 버린 것이 떠올랐다. 무려 9만원이나 깎아 주는데... 시간 지나면 분명 이 세트는 품절시킬 텐데... 어짜피 지를 땐 과감히 팍 질러야 하는데...

물론 세트가 25만원, 할인가 22.5만원은 도서지원비로 구매한다 해도 한도를 넘어서는 금액이다. 얼핏 두 달로 쪼개 살 수 있다는 말도 들은 듯하지만, 그러기엔 두 달 동안 다른 책은 못 산단 말이다. 육아나 아내의 공부 같은 이래저래 필요한 책도 이따금 있는 판에 그리 지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게다가 아직 못 지른 세트나 시리즈도 아직 많다. 게다가 내가 비행기 말고 다른 권에 관심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동양의 범선이 나오지 않는 반쪽짜리 범선에는 호기심이 날아가 버렸다. 자동차도 좀 왔다 갔다 하고, 자전거는 뭐 볼 게 있나 싶다. 흐음. 점점 안 사는 방향으로... 대신 다음 달에 비행기 하나 정도 사는 거... 아, 아내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 미리보기를 보니 참 간지난다. 가오용으로는 딱인데... 흐흐흐.
Posted by Enits
,


이달 초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 5권 구매를 완료한 데 이어 <일곱 개의 수정 구슬>을 끝으로 땡땡의 모험 시리즈 24권 전 권을 모두 구매했다. 아싸~!

몇 년 전 땡땡의 모험 한국어판을 발매하는 출판사에 후배가 들어가자 직원가로 싸바싸바 해 8권 세트 3종을 구매하기는 했지만, 그때에는 금액이 부담돼 함께 일하던 (당시 임신 중이던) 후배 한 명을 꼬셔 반반 부담으로 세트 3종을 사서 반씩 나눠 가졌다. 그때에는 한두 번 보고 말 생각으로 "네 아이가 태어나면 출산 선물로 다 넘기마"라고 했지만, 이 말은 식언이 되었다. 책 욕심도 났거니와 내게도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혹 들춰보는 땡땡의 모험은 너무 재미있었다. 허긴 먼 옛날 보물섬에 연재될 때에도 재미있게 봤으니.

그리 하여 전 권을 모두 모으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단 내게 없는 세트 한 종을 사고 그 다음달부터는 코르토 말테제와 함께 한 권씩 사들였다. 으하하.

땡땡의 모험은 좀 희한한 책이다. 첫 권인 <소비에트에 간 땡땡>은 볼세비키 치하의 소련에 대한 거의 적대적인 멸시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둘째 권인 <콩고에 간 땡땡>에서는 전형적인 서구 제국주의자의 시선으로 아프리카인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지극히 제국주의적이고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 하던 시각이 조금씩 변하더니 나중에는 전 세계의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좌빨'스러운 기운이 넘쳐났다. 오호호. 들리는 말에는 한 중국인이 작가인 에르제를 설득해 그를 '개종' 내지는 '회심'시켰다고 한다.


Posted by Enits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젠가 한 후배가 그랬다.

"인터넷서점에서 책 못 사겠어요. 뽁뽁이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요."

생태적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이 그리 내밀화한 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 정도는 가졌던 후배에게 에어캡(일명 뽁뽁이)는 필요하지 않은 거추장스러운 사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야겠다 말했다. 그런 후배에게 인터넷서점의 할인액을 이야기하는 건 아무 의미 없었다. 후배는 이미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반생태적으로 살아선 않아야 함을 이미 내비쳤기 때문이다.

책을 비롯해 시디, 디비디, 커피, 아이 용품 등을 거의 대부분 인터넷쇼핑몰에서 구매하는 내게 에어캡은 친숙하다 못해 내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접하는 물건이다. 상품을 안전하게 내게 가져다준다는 본래의 목적 말고도, 톡톡 터트리는 재미로 스트레스의 극히 일부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물건을 풀어 버리면 처치해야만 하는 쓰레기의 근원이기도 한다. 다른 비닐과 함께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수거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내 곁에서 치우는 것일 뿐,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따금 후배의 말이 머릿속에서 겹쳐져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인터넷쇼핑물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에는 비굴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기도 하다. 잠깐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실제로 불편한 건 나중 문제이다.

주문하는 상품에 따라 여전히 에어캡이나 에어쿠션으로 돌돌 말려 오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알라딘은 "흔들림없는 에이스포장"이라는 이름 아래 거창하게 랩 포장을 한다고 홍보한다. 마침 주문한 상품 가운데 그렇게 포장돼 온 상품이 있어 살펴보니, 책 두 권이 불쌍할 정도로 비닐에 압착돼 판지에 착 달라붙어 있다. 이 정도 상태가 유지된다면 업체 입장에서는 자랑할 만하다. 좀 더 다양한 판형과 두께의 책을 포장한 것을 봐야 확실히 안심하겠지만, 큰 문제가 예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확실히 에어캡이나 에어쿠션보다는 소요되는 비닐의 양은 줄어들었다. 에어캡이든 에이스포장의 비닐이든 실제로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 구매 패턴에 따라 예측되는 누적량을 보건대 확실히 내가 버려야 하는 비닐의 양은 줄어들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후배의 말로부터 10%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지도 않을까?
Posted by Enits
,